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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Jun 16. 2023

서울탐방 제8탄 : 석촌호수와 올림픽공원

2022년 10월의 기록 : 다시 만난 러버덕과 처음 만난 나홀로나무




1. 러버덕과 세 번째 만나다.


     위와 같이 러버덕에 대해 쓴 글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글에 대한 조회수가 갑자기 급상승했다. 무슨 일이지? 하고 찾아보니 러버덕이 다시 서울에 온다고 했다. 이건 무조건 가야 간다. 여태까지 두 번의 러버덕을 볼 동안은 항상 누군가와 함께 했지만 이번엔 혼자 갈 예정이다.


      나는 여태까지 러버덕과 두 번 만났다.


     한 번은 호주의 시드니에서, 여행 중에 우연히 길을 지나가다 만났고 또 한 번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서울에서 만났었다. 당시 석촌호수에 러버덕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일상생활을 보내다 행사가 끝날 때쯤에야 겨우 시간을 내서 갔더니 끝날 때 즈음 가서 그런지 팝업스토어에 남아 있는 물건이 없었다. 그래서 러버덕과 무려 세 번째 만남인 이번엔 행사가 시작하자마자 최대한 빨리 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행사가 시작한 첫 주말인 10월 첫째 주 주말에 바로 석촌호수에 갔다. 잠실역에서 내릴 때부터 두근두근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출구를 찾아가는데 지하 출입구부터 러버덕 전시에 대한 안내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지하를 빠져나와 석촌호수 쪽으로 걸어간다. 다행히 오늘날이 참 좋다. 저 멀리 호수에 떠있는 노란색 물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주말이긴 하지만 아직 전시 초기라 그런지 8년 전 두 번째 봤던 그때보다는 사람이 좀 덜 한 거 같았다. 그때보다 크기가 더 커졌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가? 여전히 다시 봐도 귀엽다. 해외에 나가지 않는 이상 다시는 만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서울에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번엔 전시 초기에 왔으니까 야심 차게 팝업스토어에도 줄 서서 들어가 봤는데 막상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그래도 들어왔으니 아쉬워서 스티커 하나를 샀다. 


석촌호수에 뜬 러버덕. (@잠실 석촌호수, 2022.10)
러더벅 굿즈샵 풍경. (@잠실 석촌호수, 2022.10)




2. 올림픽공원에 방문하다.



1993,94년경 방문했던 평화의 문과 2022년에 방문한 똑같은 장소. (@올림픽공원, 2022.10)


      최근 앨범정리를 하면서 옛날 사진을 들춰봤었다. 그래서 그런지 초등학생 때 분명 이 평화의 문에서 찍은 사진을 본 기억이 났다. 그래서 다시 찾아봤다. 아빠는 사진을 찍어주느라 사진에 나오지 않아서 엄마와 나, 동생 셋만 찍혀있는 사진이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선 공연 보러 다니느라 올림픽공원에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꼭 왔었다. 가족과 함께 왔던 이곳에 오늘은 혼자서 셀카를 찍고 씩씩하게 입장했다.


     입구에서 스탬프 종이를 받고 공원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내가 평소에 이용하는 출입구는 이쪽이 아니다 보니 낯선 길이다. 몇 년 전, 소마미술관에 온 적은 있지만 딱 거기만 보고 갔었는데 오늘은 내가 모르는 올림픽공원을 보리라 작정하고 왔다.


찾아보니 저 조각상 앞에서 찍은 사진도 있더라. 위치가 바뀐 것 같기도 하고. (@올림픽공원, 2022.10)


     오늘의 목표는 스탬프 투어를 곁들여 나홀로나무를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탬프 투어는 부수적인 것이다. 나홀로나무를 보러 가는 길에 스탬프 투어 장소를 몇 번이나 지나쳤지만 정작 스탬프를 발견하지 못해 도장은 딱 한 개만 찍을 수 있었고 그래서 스탬프 찍기에 집착하지 않았다.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더 나무들이 우거져있다. 이곳의 규모는 내가 흔히 다니던 동네 근린공원 사이즈가 아닌 거의 숲이다. 바람 소리만 들어도 공원과 다르다. 나무 사이를 가르는 바람 소리가 이곳이 숲이라는 걸 인지시켜준다. 바람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면 꼭 바다의 파도소리를 듣는 듯한 착각이 인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잠시 눈을 감고 서울의 공원 한복판에서 바다의 소리를 듣는다. 


     이번 주 들어 갑자기 쌀쌀해졌다. 마땅히 입을 가을 옷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봄에 더 잘 어울리는 분홍색 원피스를 챙겨 입고 롱 카디건에 가을 코트를 걸친다. 많이 걸을 수도 있으니 운동화를 신었고 가방의 짐도 최소화했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핑크뮬리. (@올림픽공원, 2022.10)


     조금 걸어 올라가니 핑크 뮬리가 심어져 있는 밭이 나온다. 지난달에 다녀온 경주는 지금 핑크 뮬리가 한창이겠구나. 사람이 많아서 사진은 대강 스윽 찍고 다시 걷는다. 한참을 걷는다. 이 길이 맞나 싶다. 지도 앱을 켜서 확인하는데 아무래도 원을 크게 돌아가는 길을 고른 거 같다. 대신 출구로 나갈 땐 빨리 나갈 수 있겠지.


     공원 내 어디선가 공사를 하는지 딱, 딱, 딱, 딱 이런 기계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려온다. 뭐야, 이 소리가 이 좋은 산책의 분위기를 망치잖아... 하며 쳐다봤는데 어라? 무대를 만드는 거 같네? 공연이 있나? 가만 생각해 보니 지금은 딱 10월 셋째 주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번 주 주말에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일명 GMF)이 있겠구나. 안 간지 한참 되었지만 페스티벌 초창기인 2008년부터 2016년까지 근 10년을 매년 출석했으니 나에게 결코 낯선 행사가 아니다. 


     매년 10월 중순의 주말을 항상 꽉 채워주었던 음악 축제. 잔디마당에서 공연을 보고 있자면 무대 뒤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게 보였는데 그게 이 길이었구나. 내가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는 거구나. 이제 목적지 근처까지 가까이 온 것 같다.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언덕이 나온다. 잠시 음악을 들으며 쉬기로 한다. 목적지가 있으니까 여기서 딱 한 곡만 듣자, 딱 한 곡만. 한낮과 잘 어울리는 노리플라이의 <눈부셔>를 재생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이곳이 좋은 건 벌써 알고 저어쪽에 이미 앉아있는 한 팀이 있었다. 나는 그들과 부딪치지 않는 선에서 조용히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곳에 한참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목적지가 있으니 다시 출발한다.


     뒤를 이어 이어폰에서는 권순관의 <긴 여행을 떠나요>가 흘러나온다. 좋다. 4분의 3박자 왈츠. 쿵 짝짝 쿵 짝짝. 그에 맞추어 가볍게 걷는 내 발걸음. 노래가 끝날 즈음, 저 멀리 나홀로나무로 유명한 그 나무가 보였다.


올림픽공원의 나 홀로 나무. (@올림픽공원, 2022.10)


     이곳에 오기 위해 포스팅을 찾다 보니 이곳을 ‘왕따나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무 이름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은 아마 별생각 없이 불렀겠지만 그건 왕따를 당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비슷한 거라도 당해봤다면 절대로 그 단어를 함부로 쓰지 못할 거다.



나 홀로 vs 왕따.



혼자 있다는 의미는 같아 보일지 몰라도, 본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왕따'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무리에서 내쳐져서 혼자 있는 느낌을 내포한다.

'나 홀로'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의지로 혼자 있고 싶어서 홀로 서있다는 느낌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더 주체적이다. 그래서 이 나무를 더 이상 왕따나무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목적지는 나홀로나무였지만 이 목적지까지 오기 전에 만났던 숲길도, 자그마한 동산도 참 좋았다.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졌던 길이나 야트막한 동산의 존재는 전혀 몰랐었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라 더 기억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고 이제는 언덕에 앉아서 느긋하게 나무를 바라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나타난 웨딩촬영을 하고 있는 커플이 눈에 들어온다. 어차피 내가 사진 컷에 걸려도 포샵으로 잘 지우겠지만 카메라 각도 상 왠지 내가 프레임 끝에 걸릴 법한 위치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게다가 사진사 아저씨(나보다 어릴지도 모르지만 죄송) 목소리가 너무 커서 에어팟을 뚫고 들어온다. 


     이곳은 건물 같은 것으로 막힌 게 아니라 뻥 뚫린 공간이라 그런지 말소리가 잘 퍼진다. 그것도 사람들이 하나둘씩 싱그럽게 대화하는 소리가 아니라 평화로운 오후 시간을 방해하는, 철저하게 목적성이 묻어있는 목소리. 물론 앞으로 몇 달 뒤, 누군가의 신혼집에 아름답게 걸릴 사진을 위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그들에게는 과거의 고생담으로 남을 그리고 미래의 어느 순간을 장식할 아름다운 유물이 되겠지만 그들과 전혀 상관없는 나에겐, 몇 년 동안 나홀로나무를 보러 와야지 생각했다가 드디어 시간을 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겐 그저 방해가 되는 소음일 뿐이다. 사진 프레임에 걸리지 않을 것 같은 선에서 자리를 슬쩍 옮겨 본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다. 올해는 꼭 와야지 싶어서 몇 번이나 오려고 했는데 막상 오려고 하니 날씨가 안 좋거나 여러 가지 일이 생겨서 이래저래 미루고 미뤄왔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갑자기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지만 올해가 가기 전 아직 초록빛이 남아있을 때 와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동안 올림픽공원에 공연을 보러 수도 없이 들락거렸지만 이렇게 좋은 숲길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이 근처에 살고 싶어질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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