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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May 06. 2023

서울탐방 제7탄 : 서울에서 프랑스어 만나기 (하)

2022년 9월의 기록 : 프랑스어시험 DELF 합격증을 찾으러 가는 길

     나는 10살부터 서울에 살았으니까 서울에 산지 30년이 다 되어 간다. 하지만 내가 서울에 오래 살았다고 해서 서울을 전부 다 알고 서울의 모든 곳에 가봤다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여 년간은 서울의 서남부 지역에 살았었고, 최근 들어서야 중심부 쪽에 살기 시작했다. 같은 서울이라도 사는 지역이 옮겨져서인지 이제야 서울의 다른 동네들이 눈에 들어오고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서울의 3 도심지 여의도, 강남, 광화문(종로, 을지로 포함)이. 개인적으로 여의도와 강남에서는 일해봤으니 광화문 쪽에서 일해보고픈 쓸데없는 소망을 로망으로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잠자는 시간 빼고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나는 사무직이라 출근하면 사무실 안에만 있지만 그래도 회사 위치에 따라 그 근처의 식당, 영화관, 카페 등 생활반경이 정해진다. 그래서 한 번쯤은 광화문 권역에서 근무해보고 싶은 것이다. 나에게도 관광지로만 여겨지는 이 동네를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걸어 다닐 수 있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동네로 만들고 싶어서.


날이 참 좋았던 2022년의 어느 가을날. (@ 을지로 청계천, 2022.09)


     오늘은 1년에 한 번 있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을지로에 왔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한 건강검진을 마치고 건물을 나와 길거리로 나선다. 날이  좋다. 어느새 가을 날씨가 되어버렸다광화문 권역엔 궁을 비롯해 오래된 관광지가 많아서 외국인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다이제 입국 제재가 조금 풀려서 그런지 오늘도 청계천에 들어서자마자 외국인들이 눈에 띈다. 


     그들 사이에 쓱 섞여서 신기하다는 듯이 관광객 마냥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자니 나도 여행자가 된 기분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 차가 넘쳐나는 도로 위에 서서 여행자의 기분을 좀 느껴보고자 권순관의 <긴 여행을 떠나요>를 들었다.


     오늘 나의 목적지는 프랑스대사관 문화과의 어학센터다. 지금으로부터 1년도 더 전인 작년 5월에 본 프랑스어 어학시험 델프DELF의 자격증 원본을 찾으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합격소식을 미리 확인했기 때문에 원본 자격증을 찾아야 된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냈다. 


     아날로그의 나라 프랑스 답게 델프DELF 자격증 원본이 나오는데 4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원본 서류가 도착해도 나에게 우편으로 바로 보내주지 않고 직접 지정된 장소로 찾으러 가야 한다. 그나마도 몇 년 전보다는 상황이 조금 좋아져서 합격증 사본을 먼저 이메일로 발송해 준다. 그래서 더더욱 원본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잊어버렸다. 5년 안에는 원본을 찾아가야 하는데 하마터면 이대로 5년을 넘길 뻔했다.


     몇 년 전에 델프DELF A1 시험을 봤을 때엔 프랑스 정부 기관 쪽에서 운영하는 어학기관인 알리앙스 프랑세스 회현점에 자격증 원본을 찾으러 갔었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체계가 바뀌어서 이제는 프랑스 대사관 문화과에서 운영하는 어학원에서 자격증을 찾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알리앙스엔 작게나마 도서관이 있었던 거 같은데 이곳도 프랑스를 느낄만한 시설-도서관이나 영상 체험 등-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광화문의 94빌딩 4층의 프랑스대사관 문화과로 향했다. 두근두근한다. 들어가는 문 입구 옆 벽에 에펠탑 모양의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누가 뭐래도 프랑스의 상징은 에펠탑이다. 프랑스와 관련된 장소에 방문하면 반드시 에펠탑 이미지나 조형물이 있다. 건축되었을 당시에는 그렇게 천대받던 에펠탑이 프랑스의 상징이 되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을 줄 그 누가 알았을까?  


프랑스대사관 문화과 어학센터 내부 풍경. (@ 프랑스대사관 문화과 어학센터, 2022.09)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에 원어민으로 보이는 남자분  분과 우리나라 사람으로 보이는 여자 직원  분이 앉아있다. 마침 여직원분이 전화를 받고 있어서  기다려야 했다. 내가 프랑스어를 조금만  잘하면 원어민이신 분한테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전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로비를 둘러봤다. 프랑스 스러운 것을 체험할 만한 공간은 로비에 있는 작은 서가가 다였다. 


     전화를  사람이 물어볼  많았는지 직원과의 통화가 한참이나 이어졌고 그동안 서가를 어슬렁거리면서 구경했다. 한참 뒤 통화가 끝나서 자격증 원본을 받고 다시 서가를 둘러봤다. 원어로  책은 내가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책이 없었다. 한글로 번역된 와인 관련 책을  뒤적이다가 방통대 교재인 읽기와 쓰기가 있어서 그거 보고 A2 다시 복습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리고 나니 별로 할 게 없어서 나왔다. 예전에 다녔던 알리앙스프랑세즈 회현점이 생각나서 검색해 봤는데 그곳에 있는 작은 도서관 같은 공간은 수강생들만 이용 가능한 공간인 거 같았다. 정작 알리앙스를  년 넘게 다녔는데 수업만 듣고 이런 건 하나도 누리지 않았네


    그때는 겨우 쉬운 단어를 읽고 간단한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도서관에 있는 자료들은 어려운 것들만 있을 거 같아서 아예 도서관에 들어가지도 않았었다. 지금 생각하니 아쉽다. 책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해도 좋으니 최소한 뭐라도 읽어보고 더 많이 접해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작게 마련되어 있는 프랑스어 서적 코너. (@ 광화문 교보문고, 2022.09)


    잠깐동안 프랑스 문화원 비슷한 곳의 방문을 마치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원서코너에 가니 작게 프랑스어 책(원서) 코너가 있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점에서의 코너 크기가 우리나라에서 현재 프랑스어가 차지하는 위상을 나타내는 것 같아 조금 씁쓸했다.


    최근에 들어서야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 배우는 외국어로서의 지위를 조금씩 얻어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영어나 중국어, 스페인어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많이 배우는 언어는 아니다. 몇 년 전 유럽여행을 갔을 때, 책에 흥미가 많은 나는 현지에서 서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죄다 그 나라 언어로 된 책들만 있어서 지루했던 찰나 어학 코너에서 한국어 교재를 발견했다.


     코너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아주 작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책도 몇 권 없었지만 나에겐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 마냥 반가웠다. 외국의 서점에 있는 한국어 책 코너도 수많은 다른 언어의 홍수에 밀려가지 않도록 외딴섬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겠지. 지금은 BTS와 다른 아이돌 덕분에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많이 늘어났으니 언어의 바다 한가운데에 떠있는 우리 한국어 섬의 구획이 조금 커졌기를 기대해 본다. 


     날씨 좋은 가을날,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외국인 관광객 마냥 청계천을 걷고 사진을 찍고 잠깐이나마 프랑스어를 맛본 하루였다.






     70,80년대에 대학교를 다녔던 분들에게 '독일문화원에서 책을 빌려 봤어' '프랑스문화원에서 영화를 봤어'하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창에 프랑스문화원을 검색했더니 프랑스대사관 문화과라는 곳이 나왔다. 이곳이 바로 내가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그 '문화원'의 기능을 하는 곳일까 싶었다. 


    하지만 여러모로 검색해 본 결과, 과거처럼 그 나라의 문화를 간접체험하기 위해 책을 빌리거나 영화를 보는 장소를 제공하던 문화원 같은 기능을 하는 장소는 없어졌다고 한다. 옛날엔 원서로 된 책은 물론이고 영상을 구하는 것은 더 어려웠기에 그런 장소가 소중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원서를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받아보거나 심지어 전자책으로도 바로 다운로드해서 볼 수 있다. 영상이야 인터넷으로 언제든지 볼 수 있고 가끔이긴 하지만 프랑스 영화도 극장에서 개봉하니 과거와 달리 해당 언어로 된 매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이런 장소가 없어진 것 같다. 모든 것이 곧바로 손에 잡히고 편리해진 대신 과거의 낭만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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