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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Sep 04. 2022

소설 <파친코>에서 현재로 흘러온 것

선자와 이삭의 자손들을 현재에서 만난다면?

     얼마 전 은행 창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요즘엔 모바일뱅킹이 되니까 웬만한 건 은행에 직접 오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날은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계좌의 통장 재발행과 유효기간이 만료된 카드를 재발급받기 위해 꼭 은행에 가야 했다.


     이 지점은 원래 고객이 많지 않은 편인 데다 그 시간에 손님은 나밖에 없었다. 오늘, 마침 이 시간에 여길 들른 건 운명이었을까? 업무를 한창 처리하고 있는데 입구가 있는 뒤쪽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엔↗화↘를 원↗화↘로 좀 바꾸고 싶은데요.



     분명 한국어가 맞다. 말하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한국어다. 그런데 이상하게 부자연스럽다. 가만히 들으면서 생각해보니 이 사람이 말하는 한국어는 높낮이가 크게 없는 표준어나 지역색이 강한 사투리도 아닌,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이 말하는 톤이 아니어서 이질적으로 느껴진 거였다. 분명 한국어를 말하고 있고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한 것도 맞는데 '엔↗화↘를 원↗화↘를'이라고 말할 때부터 한국어답지 않은 리듬이 들어가 있었으며 발음도 어딘지 모르게 또렷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바로 내 옆 창구로 배정받았다. 아저씨는 은행에 들어오면서 했던, 엔화를 원화로 좀 바꿔달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직원이 신분증을 달라고 하자 여권 주면 되지요? 하면서 여권을 건넨다. 아까 저 발음을 들을 때부터 일본 사람이 한국어를 하는 느낌이라 생각했고 여권을 낸다는 거 보니 혹시 일본 사람인가 했는데 역시 일본 사람 맞네 싶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여권을 건네면서 한마디 덧붙이기를, 자기가 재일교포라고 했다.


     어, 그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아... 그래서 한국어가 되긴 되는데 발음이 조금 이상했던 이유를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재일교포 아저씨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아저씨는 신분증으로 여권을 내밀었는데 거기에 주민번호가 없는지 직원이 처리가 안 된다고 했다. 창구 직원이 대응을 못하자 책임자급의 직원까지 나왔는데 어째 다들 좀 불퉁불퉁한 뉘앙스로 응대한다. 결론은 여권을 가지고 내국인 환전으로 처리하려니 여권에는 주민번호가 없어서 안된다는 것.


     그러자 아저씨는 자기는 한국사람이고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으며 재일교포라고 다시 한번 말한다. 우리 부모님 때부터 그렇게 살았다고. 그러더니 대뜸 창구 직원들에게 갑자기 지금 대통령이 누구냐고 묻는다. 다들 대답을 못하고 벙쪄 있는데 아저씨 왈,



 윤석열이죠?
그 사람한테 물어보라 하세요.
왜 우리가 주민번호가 없는지.



      이 질문으로 미뤄보아 아저씨는 오래전부터 한국 여권으로 뭔가 처리하려고 할 때마다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답답함을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이름을 빌려 호소하고자 했을 것이다.


     유튜브 채널 중에 오사카에서 부동산을 하는 사무실에서 운영하는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채널이 있다. 여행객을 대상으로  게하도 운영하고 한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부동산 중개도 하는 모양인데 유튜브 채널은 어째 먹방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아무튼 거기 직원 중에 한국어가 아주 유창한 마츠다상과 마츠다상보다는 한국어가  유창하지만 유쾌한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하시는 사장님 오오카와상이 있다.


     마츠다상은 한국사람 뺨치게 한국어를 원어민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구사하지만 일본 국적을 가진 일본인이었고 오오카와상은 태어나서  일본에서만 살아온,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교포라고 했다. 부모님이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에 가본  없이 집에서 쓰는 한국어를 듣고 자라면서 말을 배웠다고.


     그렇다. 이 아저씨의 한국어를 듣는 순간 경상도 억양의 한국어를 쓰는 오오카와상이 떠올랐다. 일본 사람이 한국어를 배우면 저런 톤으로 말하게 되는 건지 아니면 이 아저씨도 부모님 고향이 경상도 쪽이라서(실제로 경상도, 제주도 쪽에 살던 사람들이 일본으로 많이 건너갔다고 한다)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억양이 묻어 있었다. 낯선 나라 그것도 한때 지배국이었던 나라의 땅에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 그곳에서 살아가면서 그것도 국적을 지켜가면서 살기란 얼마나 어려웠을까.


     이야기가 잠시 샜는데, 환전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보자. 은행 직원들끼리 속닥거리는 걸 들어보니 주민등록번호 없이 외국인으로 등록해서 환전 업무를 진행하는 방법도 있는 모양이었다. 대신 외국인으로 처리하려면 현재 거주하거나 숙박하고 있는 주소를 써야 한다고 했다. 아저씨가 근처 호텔에 머문다고 하자 이 근처에 호텔이 3군데가 있는데 그중에 어디냐고 물어본다. 그러면서 아저씨가 처음에 신청서에 이름을 쓸 때 영어로 썼더니 아니라 이름도, 주소도 모두 한글로 써야 한다고 했다.


     아저씨는 말은 좀 해도 한글로 글쓰기는 어려우신 것 같았다. 그러자 직원은 그럼 주소는 영어로 써도 된다고 하고 머물고 있는 호텔 이름이랑 방 번호를 적으라 했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호텔 체크인이 3시부터라 아직 호텔에 체크인을 하지 않아서 (이때가 2시쯤이었음) 방 번호를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직원은 정확히 호텔 방 번호를 적지 않으면 해주지 않을 모양이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혼잣말로 남대문 가면 다 해주는데 여긴 왜 이러는 거야를 몇 번 외쳤지만 직원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결국 아저씨는 돈 다시 주세요, 남대문 가서 해야겠다, 하면서 돈을 받아가지고 은행을 나갔다.


     재일교포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건 처음인데 짠했다. 직원들도 미안하다는 말 같은 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이런 이상한 감정이 들었던 것은 일본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한국 여권을 가진 그 아저씨가 하는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일본어를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는 게,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대충 아저씨가 말하는 톤이나 분위기로 이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또 다른 일행인 아저씨 한 명과 같이 은행에 왔다. 같이 온 동행은 교포인지 일본인인지 모르겠지만(아마도 같은 교포일 거라 짐작된다) 둘이 같이 와서 27만 엔을 원화로 바꾸려고 했다. 그래서 은행 직원이 뭐가 안된다고 할 때마다 계속 그 내용을 통역해서 전달해주곤 했다. 그러니 직원들도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방금 우리가 한 말을 저 사람에게 전달하고 있겠다는 건 눈치를 챘을 거다.


    내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기분이 미묘했던 건 그 아저씨가 하는 일본어를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요즘 소설 <파친코>를 읽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재일교포 아저씨가 일본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닐 것이다. 부모님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거기에 살았기 때문에 거기서 태어나서 살아온 것이고 그러면서 국적을 지켜온 것이다. <파친코>에 나오는 선자Sunja와 이삭Isak부부의 자녀들이라면 저 아저씨 나이대가 됐으려나? 아저씨는 한 50대 정도로 보였으니까 그들의 손자뻘 정도 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가까이서 재일교포를 본 건 처음이었다. 나에게 재일교포란 실재하지만 텔레비전이나 저 멀리에 존재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서 은행일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와서 다른 곳으로 가려고 이동 중이었다. 그러면서 아까 은행에서 본 장면들을 곱씹으면서, 또 파친코의 주인공들을 떠올리면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은행에서 봤던 그 두 아저씨가 반대편에서 걸어오면서 내 옆을 지나갔다. 아직 체크인 시간 전이라 호텔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는 듯했다. 그들도 내가 아까 은행에서 옆에 앉아있던 손님이라는 걸 알려나 모르겠다. 그분들은 여행으로 왔다고 했는데 과연 어떤 사연을 가지고 오늘날 여기까지 왔을까? 내가 모든 걸 다 알 순 없겠지만 일본 땅에서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는데 느끼는 온갖 어려움들이 점철된 씁쓸하고도 뻔한 스토리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 하지만 재일교포 신분이라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여권을 가지고 있고 이걸 가지고서는 은행에서 내국인으로 환전 하나도 쉽게 할 수 없다는 사실. 모르긴 몰라도 이거 외에도 뭘 좀 하려고 하면 그때마다 제약이 많았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중간한 한국사람으로 여기고 일본에서는 당연히 조센징으로 취급하는, 그런 상태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얼마나 수많은 이야기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고 또 사라졌을까.






     나는 여전히 <파친코> 영문판을 하루에 한두 페이지씩 천천히 읽고 있는 중인데, 그러다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But when the mean remarks had utterly disappeared from his daily life, he realized how peaceful he could feel.


<Pachinko>, by Min-Jin Lee, p.253 (paperback)


     나는 당연하게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국인임을 의심받지 않고 내 명의로 어떤 일을 할 때 거침이 없다. 나에게 일상생활에서의 고달픔은 그 재일교포 아저씨들과는 결이 다른 것들이다.


     이 문장에서 지칭하는 'he'는 선자Sunja와 이삭Isak의 둘째 아들인 모자수Mozasu인데 이 한 문장으로 오늘 그 재일교포 아저씨의 난감함, 곤란함, 좌절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국적을 지키기 위해 평범한 하루와 지루한 일상생활을 보내면서 사소한 것들과 끊임없이 싸워나가야 하는 그들의 삶에 용기를, 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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