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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Apr 29. 2023

외할아버지의 5촌 친척의 소식을 듣는 삶

BGM <족보의 몰락>, 죠지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애

뭐 그냥 그렇지

엄만 어떻게 지내

아 그 얘기는 들었어

누나 애기 생겼다면서

기분이 이상해

남자야 여자야?

아직 모르지

요즘엔 딸이 아들보다 낫대요 엄마


이웃보다 멀어진 (이웃보다 멀어진)

너와 나의 가족 관계 (너와 나의 가족관계)

이종사촌 고모부 (고종사촌 이모부)

이름도 몰라 성도 몰라 얼굴도 몰라

아마도 족보의 몰락


이웃보다 멀어진 거 같아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서울 울산 대구 모두 다 뿔뿔이 흩어졌네

몸이 멀어지면 맘이 멀어지나 봐

그래봐야 차로 가면 금방일 텐데

말로만 내려갈게요 엄마

너무 바빠 이만 먼저 끊을게요 맘


이웃보다 멀어진 (이웃보다 멀어진)

너와 나의 가족 관계 (너와 나의 가족관계)

이종사촌 고모부 (고종사촌 이모부)

이름도 몰라 성도 몰라 얼굴도 몰라

아마도 족보의 몰락


이웃보다 멀어진

너와 나의 가족 관계

이종사촌 고모부 (고종사촌 이모부)

이름도 몰라 성도 몰라 얼굴도 몰라

아마도 족보의 몰락



<족보의 몰락>, 죠지






사랑 노래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연히 마주한, 가족과 관련된 노래를 소개한다.



     옛날이야 워낙 나이가 어릴 때 결혼하고 아이도 일찍 낳으니까 3대는 물론이고 4대가 함께 사는 집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엔 기본 수명이 길어졌어도 그만큼 결혼을 늦게 하고 또 아이를 늦게 낳거나 안 낳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수명이 늘었어도 3대는커녕 2대가 같이 살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나의 조부모대에서는 이제 외할아버지  분만 살아계신다. 친할아버지는 아빠가 고등학교  돌아가셨으니 나는 얼굴을  적도 없고 아마 아빠도 자신의 아빠에 대한 기억이 많이 희미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외할머니와 친할머니는   ,   간격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이제 80대 후반을 지나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이시다. 그 나이대 치고는 건강하신 편이다. 장사는 거의 되지 않지만 아직도 매일 아침, 몇십 년째 운영하는 가게 문을 여시고 간간히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다니신다. 그래서 특히나 건강에 대해선 자신감이 넘치신다.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며칠 전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아버지는 큰아들 내외와 함께 사시는데 얼마 전 소변 실수를 하셔서 병원에 가자고 했더니 괜찮다면서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동네병원에서 약을 타다 먹다가 며칠이 지나서야 결국 큰 병원에 갔는데 그 사이에 폐에 물이 차고 패혈증 비슷한 것도 왔다고 한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마침 외할아버지의 동생인 작은 외할아버지의 1주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작은 외할아버지는  작년 이맘때쯤 돌아가셨다. 두 분은 16 차이가 나는 형제지간으 할아버지의 큰 아들인 나의 외삼촌과 작은 외할아버지 나이 차이   안 나서, 나이 차이로만 보면 아들뻘이나 다름이 없고 실제로도 아들처럼 거의 키웠다.


     할아버지의 형제는 4남매였는데 할아버지의 아버지(나에게는 외증조할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당신의 형제뿐만 아니라 줄줄이 달린 자식들 다섯까지 되는 대가족을 책임져야만 했다. 그래서 그런지 성인이 되고도 작은 외할아버지 댁과 교류가 잦았다.


     할아버지가 건강에 대해 자신하시는 건 선대 할머니 두 분과 본인 포함 가족 구성원 7명 그리고 막냇동생까지 이르는 대가족을 무사히 책임졌다는 것에서 생긴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옆구리 부근에 총을 맞았는데 다행히 살아나셨다. 그래서 당신께서 6.25에서도 총 맞고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단골 레퍼토리다.


    하지만 이제 내 항렬에서는 사촌들하고도 거의 볼까 말까 한다. 요샌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서 마주치는 게 다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아도 그렇다. 우리 가족만 이런 건가?


      외할아버지가 당신의 입장에서 당숙이신 분(나와의 관계를 따지면 무려 7촌이다)이 거의 100살이신 아직도 살아계셔서 가끔 엄마한테 그분 얘기를 하시는 모양이었다. 당숙이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봤는데 정확히 어떤 관계로 얽혀 있는 관계인지 몰라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아버지의 사촌형제라고 나온다. 즉 나의 할아버지 입장에서 봤을 때, 당신(나의 외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형제들  한 분이 자식을 낳았는데 바로 그분이 당숙이 되는 것이다. 촌수로는 5촌이다. 


     나는 외할아버지의 아버지인 외증조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엄마를 통해 얼핏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할아버지가 어렸을 적,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한다. 아마 뇌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것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그 깡촌 시골마을에서 시내에 있는 병원으로 가기 위해 동네 친척 어른이 외증조할아버지를 업고 시골길 십리를 뛰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병원에 도착하시기 전 사망하셨단다. 여기서 이 외증조할아버지를 낳은 아버지인 외고조할아버지가 계셨을 것이다. 내 기준으로 이 외고조할아버지의 형제가 자식을 낳았을 때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그 분과 5촌 관계가 되고, 내 입장에선 7촌이 된다. 


     민법 상 8촌까지는 인척이라는데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당숙 되시는 분의 자제분이 우리 할아버지 나이 정도일 텐데 내 입장에서 촌수를 계산하면 8촌이다. 나이가 꽤 드신 노인일 텐데,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스치듯 지나가도 전혀 모를 그런 사이인 것이다. 8촌 분의 자녀의 자녀 그러니까 거기서 다시 2대를 걸쳐 내려오면 나랑 나이가 비슷한 30~40대 청년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 사람과는 10촌 관계다. 게다가 친가가 아닌 외가의 이야기다 보니 나와 성씨도 다르다. 이 정도면 남이다.


     아무튼 할아버지 입장에서 당숙인 그분이 현재는 서울에 살고 계신데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같은 시골 마을에 살아서 그런지 그분의 소식을 궁금해하시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서울에 자주 오시진 않지만 그래도 가끔 오면 그분은 잘 지내는지 꼭 만나고 싶어 하셨다. 몇 년 전에 실제로 한 번 만나셨다고 들었다. 그런데 최근에 그분이 103살을 끝으로 생을 마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사촌의 소식도 겨우겨우 듣는 판인데 할아버지는 5촌에 당숙에 뭐에... 친척들의 장례식장에 가도 평소에 접하지 않아 어려운 가족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들이 난무한다. 가끔 가족 모임에 가서 조용히 귀를 기울여 듣다 보면 어른들끼리 이 분이 그분이다, 누구누구의 아들이거나 손자라고 소개한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내가 그분들의 손자나 증손자, 고손자와 길을 스쳐 지나간다 해도 전혀 모를 그런 분의 안위를 외할아버지는 걱정하고 생각해 오셨던 거다. 그래서 이 노래가 떠올랐다.


      가족관계를 나타내는 단어의 정의가 어렵고 잘 와닿지 않는다. 이모, 고모, 사촌, 삼촌, 숙모 정도는 확실하게 알겠다. 하지만 그 외에도 등장하는 당숙이나 사촌 이모, 사촌 고모, 처제, 처형, 매형, 형부와 같은 용어가 지칭하는 사람과 나와의 관계는 매번 설명을 들어도 헷갈린다. 이럴 때는 형제자매가 많은 우리 엄마와 아빠가 서로 상대방의 형제자매와 배우자를 부르는 호칭을 떠올려보며 퍼즐을 맞춰보곤 한다.


     제사에 대해서, 한국의 오지랖 문화에 대해서 말이 많지만 나는 이런 식의 연결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너 결혼해라, 공부해라와 같은 말들을 강요하는 사이 말고 낯선 이 세상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그런 가족들이 많아지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숙소 근처랑은 상관없는 대릉원 일원 (노서리)에서 한 컷. (@경주, 2022.09)


     경주에 여행을 와서 숙소로 돌아가는 밤. 숙소 근처에 고분군이 있었는데 조명을 켜놓으니 멋있었다. 마침 쓸쓸한 저녁에 어울리는 죠지가 부르는 노래 모음을 듣고 있었다. 해가 거의 다 저물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그 시간에 딱인 목소리. 나는 지어진 지 천 년도 더 된 무덤을 바라보면서 죠지의 <족보의 몰락>을 들었다.


     공동묘지는 무서워하면서 고분군은 무섭지가 않다는 것이 좀 아이러니했다. 고분군도 따지고 보면 무덤이다. 하지만 오히려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버린 나머지 이미 고분군의 당사자들은 흙으로 돌아갔을 것을 알기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흔히 아는 묘지라고 하기엔 산처럼 크다 보니 작은 동산처럼 인식해서 그런 건지 전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초록색 잔디와 둥근 곡선이 뾰죡해져 있던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황리단길을 빠져나오면 어디든 고개를 돌리면 고분이 보였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다. 자연으로 돌아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우리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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