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의 결정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
내가 팀장직을 수락했다고 하자 그 사실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바로 그 '동갑인 동료와의 관계'였다. 나는 그녀와 직접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으므로 티타임을 가지기로 했다.
나는 그간의 내 심경과 동료도 본인이 어떤 기분이었는지와 같은 이야기를 나눌 거라 생각하고 그 자리를 만든 거였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여태까지 나는 그녀가 본인이 하던 일만 조용히 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른 업무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너무 티 나게도 도움이 될 것 같은 업무만 쏙 빼서 하고 싶다고 하는 거다. 이런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기에 일단 그냥 들었다. 내가 뭐 당장 팀장이 된 것도 아니고.
둘이 얘기를 나누고 오면 당연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그보다 더 큰 숙제를 부여받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느낀 건 중심점도 없이 이 업무, 저 업무 다 해보겠다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쨌든 업무분장은 막내사원과도 이야기해야 되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팀장님이 다음날 나를 부르신다. 막내사원까지 다 얘기한 다음에 팀장님과 다시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동료 직원은 어제 나한테 그렇게 얘기하고 나서 팀장님한테도 자기가 어떤 업무를 하고 싶다고 똑같이 얘기했단다. 아니, 이제 떠나는 팀장님한테 말해주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될 줄 알았나?
그때, 내가 의심으로 생각하고 있던 걸 팀장님이 확신으로 만들어 주셨다. 그 친구가 지금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다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걸 이런 식으로 표출하는 거라고.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사실 그런 거라고.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팀장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야.
나한테 찜찜한 마음이 남아있는 게, 이거 때문이었어. 그리고 저 사람은 다른데 이직할 곳도 없기 때문에 더 저렇게 발악하고 있는 거라고. 사실 나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지만 팀장님도 그렇게 말해서 소름 돋았다. 차마 입 밖으로 내기가 뭐해서 말을 안 하고 있던 건데.
그러니까 이게 그 친구한테는 마지막 발버둥인 거다. 당장 다른 곳으로 이직하기는 어려우니 이것저것 업무라도 익혀놔서 써먹으려고 하는 거다. 이 회사의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여기에서 군림하려고.
본인이 이거하고 싶다고 하면 이거 하고, 저거 하고 싶다고 하면 다 하게 해주는 게 회사야?
팀장님이 그렇게 말해도 듣지도 않고. 본인이 영어 빼고는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그러니 같잖게도 나한테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내라는 둥 그딴 소릴 지껄인 거고. 내가 알아서 할게. 그리고 자리가 되면 알아서 만들어지는 것들도 있어.
나는 쟤가 조용히 있으면 데리고 가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식이라면 막내사원도 그렇고 같이 일할 자신이 없다. 팀장님 왈, 힘들겠지만 차라리 다 나가고 새로 사람을 뽑는 것도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셨다. 막내가 조금 더 낫긴 하지만 동료와 막내사원 둘 다 다루기 힘든 편이라면서. 사람 보는 눈은 이렇게 비슷하구나.
그러면서 팀장님이 동료한테 업무분장은 팀장 권한이니 네가 신경 쓸 거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단 기를 눌러주고(?) 있지만 팀장님이 떠나는 마당에 씨알이나 먹힐까 싶다. 그리고 그 친구가 회사 내부적으로 친한 사람이 많으니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여론을 자기한테 유리하게 만들 수도 있는 거고. 머리 아프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