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감사를 받으며 벌어지는 일들
상장사도 아니고 내부회계제도에도 해당사항이 없는 회사라면 회계사들과 직접 만나는 일은 중간감사와 기말감사 정도밖에 없는 것 같다. 의도한 건 아닌데 내가 그런 회사들만 다녀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내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staff 회계사들과 나이대가 비슷하거나 내 또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연차가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사실 정확히 나이는 모르지만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매니저급이 나랑 나이대가 비슷할 것 같다.
보통 제일 위에 파트너(임원)가 있고 그 밑에 매니저급 그 밑에 인차지(in charge)라고 우리를 담당하는 회계사 그리고 밑에 저연차 꼬꼬마 회계사들 두어 명 정도가 같이 온다. 매니저랑 인차지는 보통 한두해 혹은 2,3년은 같은 사람이 오지만 저연차 회계사들은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퇴사하는 경우도 많고 또 다른 팀으로 가기도 한다.
나는 작년 기말감사와 달리 팀장이 되었으므로 공식적인 자리에 팀을 대표해 얼굴마담으로 참석할 일이 많다. 이전에는 그런 자리가 있어도 쫄래쫄래 따라가는 게 다였고 가서도 조용히 입만 다물고 있으면 됐는데 어렵다, 어려워. 그리고 내가 이 '팀장'이란 자리를 간절히 원했던 거라면 또 모르겠는데 이 자리를 별로 원하지 않아서 그런지 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번 기말감사만 잘 마무리하고 퇴사하자라는 개인적인 목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일단 작년 감사 같은 경우는 그동안 우리랑 손발을 맞춰서 2,3년 정도 같은 회계사들이 오기도 했고(매니저랑 인차지가 계속 같은 사람이었음) 전 팀장님이 워낙 문제 관리를 잘하시다 보니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올해 매니저와 인차지가 싹 바뀌어버렸다. 한 사람이 너무 같은 회사를 오래 맡으면 유착관계가 생길 수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인사이동도 있다. 그래서 보통 2,3년 주기로 바뀌긴 하는데 어떻게 보면 하던 사람이 잘 아니까 계속 맡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원래 담당자분이 해외지사로 파견을 나가게 되면서 바뀌었다.
회계사들도 처음 감사하는 회사를 맡게 되면 본인 지식여부와 상관없이 해당 회사의 매출구조나 산업구조 파악하느라 시간이 걸리고 이해 못 하는 것도 많아서 실무자들의 설명이 필요하다. 또 기존에 하던 사람은 ‘여기는 그렇죠’하면서 넘어가는 것도 좀 있다. 대신 더 이상 팔게 없으면 다른 것에 눈을 돌려서 그동안 안 보던걸 물을 수도 있다는 단점이...^^;
처음 감사업체를 맡게 되면 '여기는 왜 이래요? 왜 이렇게 처리해요?' 라며 모든 상황에 의문을 품는다. 그런데 그게 왜 하필 내가 팀장일 때 바뀌느냐고요. 팀장이라면 카리스마 있게 적당히 밀당도 하고 그래야 되는데 질질 끌려다닐까 봐 걱정된다.
전에 올렸던 글 중에 계열사 회의실에서 옛 동료들과(?) 작업하면서 그래 이 정도면 됐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같은 회계법인에 근무했던 그들과 재직 당시엔 노츠에서 이름만 알았지 이렇게 실체가 존재하는 줄 몰랐지. 이제는 더 가까이 실체를 접하는데 그들은 내가 같은 법인 소속이었다는 걸 모르는 이 상황이 그저 너무 재밌는 거다. 나만 아는 재밌는 상황.
그때 그렇게 한 회의실에서 일한 것만 해도 재미(?)랄까 나름 보람이 있었다. 전 팀장님이 이런 상황을 예견하려고 다른 팀원도 있었는데 굳이 나를 그 자릴에 데려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오싹해졌다. 그런 빅픽쳐를 그리셨단 말인가.
옛날부터 나랑 같은 법인에 다녔던 파트너분(이분은 성함이 워낙 특이해서 보자마자 기억이 났다)과 아마도 그 이후에 들어왔을 매니저와 그 외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하 호호 웃으며 밥을 먹었다. 연말이니까 송년회 얘기가 나오길래 본부나 팀단위로 모여서 할 거 같다고 했다. 옛날에 내가 다닐 땐 전체 송년회도 크게 하고 그랬었는데(난 안 갔지만 가수들 불러서 큰 행사장에 모여서 했음) 요즘엔 그렇게 안 하는구나, 여의도는 여전히 아직도 시위가 많군요 호호호 하며 혼자 속으로 웃었더란다.
내가 작년 말에 그렇게 그렇게 ‘진짜 이번 감사가 내 인생의 마지막 감사다 ‘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겨우 넘겼는데 올해도 그 대사를 반복하고 있다. 당시엔 실무자였지만 이번엔 책임자로서 참여하는 거니까 (반반이긴 함) 이번엔 책임자로서 아름답게 마무리(?)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