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빼놓을 수 없는 페퍼톤스 클럽투어 그리고 군산으로
<2014년 8월, 광주 페퍼토닉 여행기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버스를 타고 공연시작 전에 맞춰 공연장에 도착했다. 한 번 밖에 안 왔지만 익숙한 이 거리. 표를 받고 지하로 내려갔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남자들도 꽤 있어서 키도 작은 내가 뒤쪽에서 보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앞쪽 구석으로 가다 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게다가 가방을 놓을만한 선반도 있었다. 좋아. 그런데 배터리는 안 좋다. 아까 떡볶이집에서 보조배터리도 운명을 다했다. 짧은 시간 동안 충전을 했지만 그게 오래 갈리 만무했다. 공연 내내 배터리 때문에 마음 졸이며 공연을 봤다.
앨범이 나온 지 약 열흘정도가 된 시점이었지만 이번 5집의 노래 <Solar System Super Stars>에 나오는 가사처럼 '밥 먹고 일을 하고 지친 밤 쓰러져 잠이 들고'하느라 노래를 많이 들어보지 못해 가사를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 게다가 햇살밴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페퍼톤스의 노래는 날씨가 좋을 때 들어야 제격인데 요새 날씨가 너무 우중충해서 노래를 들어도 영 기분이 안 나는지라 많이 못 듣기도 했다는 핑계를 대본다. 그래서 무슨 노래인지는 알겠는데 가사를 정확히 모르니 재미가 초큼 떨어졌지만 그래도 좋았다.
생각보다 다른 앨범에 실린 노래들도 많이 해주고 게다가 여름날까지 들을 수 있었다. 기억은 다 나지 않지만 중간중간 장원리의 깨알 같은 드립들이 있었고(중간에 재평신 기타가 고장 나서 딜레이 되었다) 저엉말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검은 우주까지 들었다. 아래는 셋 리스트.
Solar System Super Stars
Chance!
[멘트]
행운을 빌어요
New Hippie Generation
FAST
청춘
[멘트]
검은 우주
POWERAMP!!
스커트가 불어온다
여름날
[멘트]
캠퍼스커플
풍년
[멘트]
Thank you
[밴드소개]
몰라요
겨울의 사업가
21세기의 어떤 날
Everything is OK (앵콜곡)
공연시간은 90분이었는데 중간에 기타 고장 같은 것들로 인해 딜레이 되어 거의 8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원래는 공연 끝나고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사 먹고 가려고 했는데 망했으! 그냥 터미널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다 내가 타야 할 버스는 10분 기다리라고 뜬다. 기다려서 탔다.
그런데 나보다 늦게 탄 여자 두 명이 버스카드를 댔는데 '사용할 수 없는 카드입니다'라는 멘트가 나오는데도 못 들었는지 그냥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버스 아저씨는 돈을 내라고 소리치는데 이 사람들이 자리에서 안 나오는 거다. 화가 난 아저씨는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를 멈추고 운전석에서 걸어 나와 거기 나오라고 지목을 했다. 결국 그 두 명이 나왔는데 계속 어리둥절한 표정이었고 말을 하지 않았다. 농아인가? 생각했는데 둘이 속닥거리는 걸 보니 일본어 같았다.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내가 기사님한테 '외국인인가 봐요' 했더니 그 두 명이 내가 자기들이 한 말을 알아들은 줄 알고 쳐다보길래 현금으로 내라고 얘기해 줬다. 그들은 무사히 현금을 지불했고 민망해진 아저씨는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큰소리로 항변을 했다.
그리고 조금 뒤, 다시 그 여자들이 나에게 일본어로 말을 걸었다. '광주역은 어디서 내려야 돼요?' 나도 여기 살지 않으니 물어보겠다고 하고 물어보니 누군가 이제 곧 내리면 된다고 알려 주었다. 어라? 그런데 왜 이 버스가 광주역으로 가고 있지? 난 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광주역과 터미널은 반대방향인데? 네이버 지도앱에는 분명 이 버스도 간다고 되어있는데?
이제 버스는 광주역에 다 와서 멈췄길래 기사님한테 물어보니 '이건 터미널에서 오는 버스인데?'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낭패였다. 외국인만 실컷 도와주고 난 버스를 잘못 탔다. 푸하하하하. 일단 광주역에 내렸다. 아무리 노선도를 봐도 어떤 걸 타야 될지 모르겠어서 상냥해 보이는 아주머니께 물어봤다. 하지만 그분도 잘 모르신다며 건너편에 버스가 더 많으니 그쪽으로 가라고 한다. 이쪽 정류장에 있는 버스들은 배차간격이 좀 길다면서.
하는 수 없이 길을 건넜지만 그래도 여전히 잘 모르겠는 데다 군산으로 가는 버스 출발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거리를 보니 그다지 멀지 않고 역 앞이라 택시도 많을 테니 차라리 택시 타는 게 더 빠를 거 같았다. 그래서 택시 바로 타고 10여 분 만에 터미널에 무사히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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