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방문 및 조사실 들어가기 실전 편
드디어 결전의 그날이 밝았다. 회사를 대리해 경찰서에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으러 가는 그날이.
하필이면 아침부터 대표님이 본사와 하는 중요한 미팅에 갑자기 참여하게 되질 않나(내가 하는 건 없지만 아니 사실은 참여할 뻔했지만 결국 안 했다. 하지만 그냥 앉아있는 것도 엄청 긴장됐다) 게다가 연 마감을 앞두고 매출 때문에 전화를 여러 통 돌리는 등 정신없는 오전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점심으로 후다닥 먹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원래는 겁대가리 없이 혼자 갈려다가 상사가 그래도 변호사님하고 같이 가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의견을 주셔서 회사에 일이 생길 때마다 자문을 구하는 변호사님께 요청드려 함께 가주시기로 했다.
강남경찰서에서 1시 반에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변호사님은 1시까지 사무실로 오시기로 했다. 1시에 맞춰서 오셨길래 사무실에서 물 한잔 드리고 간단히 상황 설명을 드렸다. 추적추적 비도 내리고 있었고 아무래도 늦는 것보단 일찍 가있는 게 좋을 거 같아 바로 출발했다.
강남경찰서는 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경찰서 로비에 도착해 경위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내려오신단다. 한참 뒤, 키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덩치로 위압감이 장난 아닌 경위님이 등장했다. 같이 오신 건지 아님 서울청에 근무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다른 한 분도 같이 내려오셨다. 경찰은 역시 2인 1조로 움직이는 게 원칙인 걸까.
2층에 조사실이 있다고 해서 이동했다. 담당 형사님은 지방경찰청에서 오신지라 드라마 같은 곳에서 나오는 형사님 개인 자리로 가지는 않았다. 대신 조사를 위한 자그마한 조사실이 여러 개 모여있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회사에서 회의실이 필요하면 예약하고 쓰듯이 이곳도 조사실이 필요한 사람들이 예약해서 쓰는 시스템 같았다.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복도를 따라 미리 준비된 방으로 입장했다. 이미 조사를 위해 컴퓨터와 자료 등이 세팅되어 있었다.
앉자마자 두꺼운 사건 관련 서류철이 눈에 띄었다. 신원확인을 해야 돼서 신분증을 달라고 하신다. 아뿔싸. 신분증이 든 지갑은 두고 왔는데. 경위님이 신분증을 가져오라는 얘길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안나는 걸 보면 따로 얘기를 하진 않으신 것 같다. 너무 당연한,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앞으로 경찰서에 올 때는 (올 일이 없어야겠지만) 꼭 신분증 챙겨 와야지.
주민등록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셔서 얘기하니 곧바로 시스템으로 조회를 한다. ‘주소지가 서울시 OO구 OO로 맞아요?’하면서 바로 확인에 들어갔다. 그 주소는 올해 5월 말 이사해서 새로 옮긴 주소였다. 그 사이 변호사님은 미리 작성해 온 변호사 선임계에 사건번호 및 내 정보 등 필요한 사항을 적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전화로 물어봤던 몇 가지 질문을 똑같이 하더니 본격적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앞에 두고 앉아 조사가 시작되었다.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형사님과 앉아 있었기 때문에 형사님 얼굴은 모니터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다. 조사 시작 전, 조사 관련 안내문과 메모하라는 종이도 한 장 주더라. 볼펜은 챙겨 오지 않았는데 변호사님이 빌려 주셨다.
카페라면 배경음악이라도 잔잔하게 흐를 텐데 이 작은 회의실은 정말 숨소리와 타자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 타닥타닥, 타자 치는 소리 특히 이 키보드 모델이 소리가 큰 건지 별다른 소리나 소음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엄청 크게 들렸다. 마치 온 세상의 다른 소리는 다 진공상태로 흡수되어 버리고 키보드 소리만 가득 찬 세상 같은 느낌.
난 죄를 고발하러 온 고소인도, 죄를 지었다고 신고받은 피고소인도 아니고 단지 그 사이에 좀 끼었을 뿐인 참고인이다. 그런데 이 장소와 상황과 키보드 소리가 어우러져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데도 긴장감이 철철 넘쳐흘렀다. 나는 단지 참고인으로 엄연히는 회사라는 무생물을 대변하러 온 거지만 모든 자료에는 회사를 대신해 내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신분증은 안 갖고 왔지만 나오기 전에 혹시 몰라 명함을 들고 왔기에 명함을 전달했다. 내 신분에 대해서도 이 회사 직원이 맞냐, 직위가 뭐고 무슨 일을 하냐 등을 물어보고 본격적인 거래관계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