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만 보던 경찰서 조사실에서 조사받기
우리 회사는 설치가 필요한 거래처와 직접 계약하는 경우도 있지만 중간 업체와 계약하면 그 업체가 납품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는 후자 케이스였다. 그런데 계속 대금지급이 안되고 그마저도 대금지급조건을 할부로 변경한다고 해서 대신 담보라도 제공하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업체가 제공한 땅에 근저당권을 설정했을 뿐인데 그 땅의 소유주가 고소를 한 것이다.
고소인과 피고소인 그 둘이 정확히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우리한테 고소인은 근저당권 설정계약서에 도장 찍은 토지의 소유주일 뿐이다. 소유주도 동의했으니 근저당권 설정 계약서에 도장 찍은 거 아니겠냐고. 그래서 우리는 이러이러하게 장비 매매계약을 체결했으며 근저당권도 설정했으며 현재까지 얼마큼 받았고 나머지는 연체 중이라 했다.
다른 회사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영업부에서 정리해 온 내용을 서류만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무슨 거래관계가 있는지 자세한 히스토리는 모른다. 정작 중요한 건, 그 당시 이 프로젝트를 맡았던 영업사원은 이미 퇴사했으며 작년에 근저당권을 재설정할 당시 직접 거기까지 내려갔었던 팀장님도(이제는 전 팀장님) 얼마 전 퇴사하셨다. 그래서 내가 아는 건 겉핥기 정도에 불과했다.
형사님이 몇몇 사람 이름을 대면서 이 사람 아느냐는 것도 물어봤다. 그런 이름들을 서류상으로 본 적은 있지만 계약서에 이름이 쓰여있으면 대표겠거니 하는 걸 짐작한 정도다. 내가 그 사람이 정확히 누군지, 그들이 뭔 관계인지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렇게 30여분 내외로 조사를(?) 마친 뒤 마지막으로 진술한 내용을 쫙 출력하더니 나한테 확인하라고 보여줬다. 위쪽에 이 서류의 명칭이 있길래 ‘이거 브런치에 소재거리로 적어야지 우후훗’ 했는데 정확한 서류이름은 까먹고 말았다. 건네주신 서류를 찬찬히 읽어보는데, 이 조서라는 것은 모든 내용이 대화체로 기재되어 있었다.
경찰관) ABC사건, 고소내용 DEF에 대해 조사를 시작합니다.
나) 네.
경찰관) 참고인 OOO 씨는 A회사(내가 근무하는 곳)와 무슨 관계입니까? 그리고 재무팀장은 무슨 역할을 합니까?
나) 저는 A회사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고 재무팀장은 재무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합니다.
경찰관) ㅁㅁㅁ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나요?
나) 저는 이러이러하게 알고 있습니다.
경찰관) 혹시 P 씨에 대해서 아십니까?
나)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으나 여러 명의 이사진들 중 한 명인 것으로 알고 있고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조서를 다 읽어보고 문제가 없으면 필요한 곳에 지장을 찍었다. 책상 위에 물티슈가 놓여있던 게 우연(?)이 아니었다. 맨 손가락에 인주를 묻혀서 지장을 찍고 나면 손에 인주 묻으니까 닦으라고 놓은 거구나. 심지어 이 와중에 종이 사이사이 간인도 했다. 지장을 두세 번 찍고 나면 손도장이 흐려지기 때문에 인주를 몇 번이나 추가로 찍어가면서 지장을 찍었다. 그리고 변호사님도 사인하는 칸이 있어서 사인했다.
아까 경찰서에 오면서 원래 내 위에 상사가 같이 오려고 했으나 같이 올 상황이 안 돼서 변호사께 동행을 요청드린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변호사님 왈, 어차피 상사가 사무실에 있어도 같이 못 올 거라고 했다. 참고인은 회사를 대리하는 사람 즉 나 한 명으로 특정되어 있어서 그 외에는 변호사 아니면 올 수 없다고.
내가 조사를 받는 동안 변호사님은 내가 하는 말을 얌전히 듣고 서류를 제출하는데 사인해 주는 역할 정도만 담당했다. 그래도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면 뭐라도 되겠지 싶어 안심이 됐다. 녹취 부분은 미동의로 되어 있었고 나머지는 조서 내용에 대해 확인했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그렇게 하고 났더니 조사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