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받다

경위님과 통화를 하고 만날 약속을 잡았다

by 세니seny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회사 전화로 지역번호가 표시된 낯선 전화번호 하나가 뜬다. 일단 지역번호가 그 OO 경찰청이 있는 곳의 지역번호다. 이건 보통 전화가 아니라는 느낌이 온다. 여보세요, 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기는 OO 경찰청
ㅁㅁㅁ경위라고 합니다.


올 것이 왔다. 안녕하세요, 하니 무슨무슨 건으로 전화했다고 설명을 한다. 아마 내 윗 상사가 미리 전화받고 내용을 전달해주지 않았다면 이거 보이스피싱 아냐? 하며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전화로 들려오는 이 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전화가 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기에 대략의 얘기는 전해 들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전화로 이것저것을 묻기에 대답을 했다. 물어보는 내용이 이미 그들이 원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전화로 조사를 하는 건가 싶었다. 그랬더니 조서를 써야 하니 직접 만나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네? 그럼 내가 경찰서에 가야 한다는 말? 정확히 조사 대상은 자연인인 내가 아니라 법인인 회사고, 그 회사를 대신해서 자연인인 내가 가는 거지만.


얼마 전, 퇴직한 회사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송사에 휘말려 전에 전 직장이 있던, 차로 여섯 시간 떨어진 곳까지 왔다 갔다 하는 아빠를 본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아빠가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아빠도 피고소인 혹은 참고인 같은 건데, 전 회사에서도 변호사를 통해 대응하고 있는 데다 아빠가 잘못한 것은 없었기 때문에 잘 마무리될 것이라고는 했다.


하지만 재판이 열려서 출석일자가 정해질 때마다 그쪽 지방까지 내려가야 했는데 고소인 쪽에서 일부러 참석하지 않는 등 여러모로 시간을 끌기 위해 사람을 골탕 먹이고 있어서 곤란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고작 참고인이라고 해도 어쨌든 이 사건에 연관이 있다는 거잖아.


그렇다고 이제 와서 ‘참고인 조사 안 하겠습니다’라고 하면 오히려 우리가 피고소인과 무슨 연관이 있어서 그 사람들 편드는 거 아니냐 하는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 안 한다고 할 수가 없었다.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곳은 서울이 아닌 지방경찰청이었는데 경위님이 회사가 위치한 서울로 올라온단다. 그러면서 나에게 언제 시간이 괜찮냐고 묻는다.


나 이번 주 금요일부터 휴가 가고 연말이라 회사일로도 정신없는데 이러기 있기 없기? 다행히 내가 휴가 가기 전날을 콕 집어 얘기해 줬다. 그랬더니 회사 근처에 있는 경찰서를 알아보고 다시 전화한단다. 하필 회사 근처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게 그 유명한,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강남경찰서다. 난 이 근방에서 가장 큰 경찰서가 강남경찰서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전화가 와서는 강남경찰서에서 보잔다. 이로서 지난번 교통사고 자진접수 건 이후로 강남경찰서를 두 번이나 가게 되었다. 그래도 그때는 교통계만 있는 별관 건물로 갔는데 이번엔 본관일 것 같다.


전화를 끊고 상사한테 보고를 했다. 아까 전화로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도 이걸 중간에 끊고 상사한테 보고를 하고 다시 날짜를 잡아야 하는 건가 알쏭달쏭했다. 그런데 어차피 우리는 경찰에 협조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내가 상사한테 보고를 하든 안 하든 그 결론이 ‘참고인 조사를 안 받는다’는 아닐 것 같았다. 결국은 ‘참고인 조사를 받는다’인데 그럼 언제 할 건지, 시간과 방법 등을 정하는 문제가 남은 거 같아서 그냥 내가 한다고 말하고 보고 드린 것이다.


우리 회사는 아직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법무팀도 사내 변호사님도 없다. 그러다 보니 법률 이슈가 생기면 김앤장 같은 로펌을 이용한다. 하지만 로펌은 비용이 너무 비싸서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면 개인 변호사님에게 별도 자문료를 주고 필요할 때마다 이용하고 있다.


본부장님이 그날 같이 가주고 싶은데 휴가를 내서 어렵다고 하시면서 개인 변호사님께 동행 요청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아무 생각도 없이 참고인 조사에 당당하게 혼자 가겠다고 생각한 나. 경찰서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변호사님한테 연락을 드렸더니 다행히 그때 시간이 된다고 하셔서 같이 가주시기로 했다. 드라마 같은 곳에서나 듣던 선임계라는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고 한다. 고소인도 아니고 피고소인도 아닌 그저 참고인인데도 이 정도의 무게를 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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