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퇴사를 앞두고 흘러가는 평화로운 시간들

퇴사 선언 한 달 후 이야기

by 세니seny

퇴사 선언을 한지 딱 한 달 정도 되었고 마지막 근무일까지는 3주가량 남았다. 마냥 평화롭지만은 않지만 대체로 평화롭다.


이제 마지막 출근일자 및 서류상 퇴사일자도 정해졌고 몇 달 뒤 육아휴직으로 자리를 비울 팀원의 대체인력 채용도 완료했다. 다만 내 자리는 아직 채용 중. 당연히 내가 나가기 전에 후임이 입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거 피하려고 더 급하게 나가는 것도 있다.)


나는 원래도 다른 부서 사람들이랑 살갑게 지낸 편이 아니었다. 요즘 '조용한 사직'이라는 표현이 유행이던데 지난 3,4년간 내 상태가 딱 그거였다. 이런 건 민간인 사찰이라도 하는 건지, 어쩜 이런 상태를 나타내는 찰떡같은 용어를 만들어 낸 걸까.



코로나가 겹친 것도 있어서 이건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그랬겠지만 사람들하고 말하는 것 자체도 꺼려졌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에만 일하고 어차피 나도 언젠가, 그다지 멀지 않은 시기에 퇴사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하고 깊이 사귀는 걸 꺼려했다. 아마 그건 다른 사람들도 느꼈을 거다. 그러니 다가오지 않는 거지.


원래 퇴사한다고 하면 다른 직원들이 밥 먹자, 커피 먹자 하면서 약속이 많아지고 바빠지게 마련인데 그에 비해 나는 참 한가롭다. 내가 뿌린 씨 거두는 거지 하면서도 이상하게 서운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율배반적인 인간이다.


그런 와중에 본부 회식이 있었다. 코로나도 끝나고 또 조직개편이 있어서 올해 새로운 팀이 우리 본부에 합류한 것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만들어진 자리였다. 거기에 내 퇴사도 한 스푼 곁들인. 그래서 다른 사람들하고 평소에 얘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이왕 만들어진 자리니까 테이블 옮겨가면서 이 사람, 저 사람하고 얘기도 해봐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추세인 회식 시간 축소로 인해 테이블 옮길 새도 없이 저녁만 후딱 먹고 끝나버렸다.


그래도 그전에 한 테이블 옮겨서 얘기를 하던 도중 내가 ㅂㅅ같이 보여서 그랬겠지만 그동안 누가 봐도 나한테 기어오르는 팀원이 있었다. 그런데 어제 다른 팀 사람들도 다 있는 자리에서 큰 소리 나는 거 보고 다들 깜짝 놀랐다면서 나를 위로해 주더라. 그래, 누구라도 알아주면 된 거 아니겠어. 그러니까 아무도 걔의 마음은 알아주지 않는 거겠고.


그리고 평상시에 싸웠거나 사이가 안 좋았던 사람은 정작 나의 퇴사 소식을 듣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입사할 때부터 함께 근무해 온, 평상시에 나와 별다른 사건사고가 없었던 분이 생각지도 못하게 본인이 맡고 있는 부서를 대표해서 선물을 주셨다.


그동안 자기 팀원들이 힘들게 했을 거라며 내가 퇴사하고 긴 여행을 간다고 하니 고심해서 여행용으로 쓸만한 작은 가방을 골라 오신 거다. 정말 전혀 전혀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괜히 더 미안하고 더 잘해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울컥했다.


남은 3주는 좀 여유롭게 보내볼까 했는데 회계팀은 퇴사를 하려면 마감을 해야 한다. 안 그럼 욕먹습니다. 이제 마지막 마감도 한 번 남았고 몇 가지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도 정리하려면 바쁠 거 같다.


이제 진짜 십몇 년 해온 마감의 끝이 보인다. 어휴, 지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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