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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지금의 이 여행이 또 다른 여행으로 이어지기를

나는 언젠가 순례자의 길을 걷고 남미에 갈 것이다

by 세니seny

벌써 6월 9일. 나의 최애 유월, 2024년의 6월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나는 7월생이라 나의 연력, 내 1년의 마지막달은 유월이다. 올해의 마지막을 아주 호화롭게 유럽여행으로 가득 채우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사람에겐 불만이 생기곤 한다.


날씨가 구려.

스페인에서는 날씨가 좋다 못해 너무 더워서 힘들었다.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포르투갈로 넘어왔다. 포르투갈에서 첫 번째 도착한 도시는 요즘 핫한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는 포르투였다. 그런데 날씨가 좋지 않았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서 우산도 없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질 않나. 다행히 비는 맞지 않았지만 포르투의 험난한 언덕 때문에 날카로워져 있던 신경이 비로 인해 무너져 버렸다. 오늘 가는 곳도 날씨가 중요한데 칙칙한 데서 사진 찍게 생겨서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다.


현금 바꾸려고 일부러 역무원한테서 표를 샀다. 표를 산다고 하자마자 왕복이나 편도냐 물어보더니 사우스코리언이녜. 이런 데서 국적을 물어보는 건 아무래도 통계를 집계해야 돼서 물어보는 것 같으니 오해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대답해 주면 된다. (통계 때문이 아니라면, 이유를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봐봐, 나 보자마자 South Korean이냐고 묻잖아. 나 차이니즈 아니라고…!


바르셀로나 호스텔에서 만난 중국인 여자애가 나를 보자마자 중국어를 시전. 서양인은 몰라도 같은 동양인들끼리는 그래도 얼추 서로 어느 나라 사람인지 잘 맞춘다. 내가 한국사람이라 그랬더니 ‘호호호, 난 너 중국인인 줄 알았어.’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는 한국인으로 자주 오해받아… 호호호’ 아하, 그럼 너도 한국인으로 오해(?) 받는다는 게 더 좋다는 걸 알고 있는 거구나?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속으로 생각했고 그 뒤로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시간에 맞춰서 열차가 들어오길래 탑승했다.


P20240609_095603219_404510BF-B4E8-49FE-8AC9-BE7F8B347AA0.JPG 기차는 풍경 보는 맛으로 타는데... 날이 흐려서... (@포르투, 2024.06)


날이 흐리니 기차를 타서 창문 밖 너머 풍경을 볼 마음이 안 나서 핸드폰으로 순례자의 길 정보를 찾아봤다. 한 번 오기도 어려운 이베리아 반도에 왔으니 그 유명한 순례길을 걸어봐야 했건만... 여행 스케줄에 순례자의 길을 조금이라도 구겨 넣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대신 포르투갈에 있는 순례자의 길이 리스본부터 시작하긴 하는데 리스본에서 포르투로 가는 구간은 걷는 사람도 많지 않고 길이 그렇게 예쁘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할 거면 포르투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그래서 나도 포르투에서 해보고 싶어서 어떻게든 포르투 일정을 더 늘려보려고 했지만 리스본에 예약해 둔 어학원 일정 때문에 불가능했다.


내 여행의 최초 계획은 모든 여행을 마치고 포르투에서 아웃이었는데 그렇게 하니까 비행기 스케줄이 노답. 이제야 생각해 보니 꼭 포르투로 아웃 안 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그대로 이베리아 반도를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았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러니까 세비야에서 리스본으로 넘어온 다음에 거기서 포르투로 가고 다시 스페인의 마드리드로 이동해서 마드리드로 아웃했으면 항공편 선택지가 더 많았을 것이다.


어차피 같은 EU니까 국경 들락날락해도 상관없고 돈도 같은 유로 쓰니까 환전 문제가 걸릴 것도 없다. 단지 나는 같은 나라를 한 번에 끝내야 한다는 이상한(?) 욕심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다. 아오, 이 멍청아! 유럽여행을 몇 번을 왔는데 이러고 앉았니. 나도 이렇게 장기여행을 해본 건 첨이라 그렇다고… 변명해 봅니다… 다음엔 더 잘할 거야.


이상하게도 지금 어설프게 배우는 포르투갈어로 인해 분명 언젠가 시작하게 될 스페인어 공부가 앞당겨질 거 같다. 그리고 포르투 쪽 코스를 걷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리스본 쪽 순례자의 길을 잠깐이라도 걸어본다면…


나중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진짜로 지금은 아무 계획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순례자의 길에 오게 될 것만 같다. 그리고 결국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정복해(?) 아니 기초라도 익혀서 더 먼 미래에는 남미를 여행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이 펼쳐졌다.


나는 현재 하고 있는 여행에서 다음 여행을 준비(?)한다. 직접적으로 다음 여행지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식으로 미래 여행의 씨앗을, 나만 아는 힌트를 여기저기 뿌려둔다. 그러고 나면 어느새 그 씨앗들이 새싹이 되고 잎이 나고 무럭무럭 자라 나무가 되어 있다.


그러면 나는 과거에 구상했던 여행지로 다시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에서 일어나는 이런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 이번 여행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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