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ggage룸의 이름 모를 친구와 바닷가에서 만난 친절한 할아버지
어제 니스에 왔지만 오자마자 앙티브와 칸에 다녀왔다. 그래서 니스 2일차인 오늘에서야 니스를 둘러보는 니스 여행.
오늘의 목표는 아침 8시부터 움직이는 거였지만 조금 늦어져서 8시 반이 지나서야 숙소에서 나왔다. 어제 내가 정작 일본어로 열심히 설명해 준 친구는 오늘 아침 인사 한마디도 안 하고 떠났다.
어제 짐 찾으러 갔을 때 luggage룸에서 나한테 대화를 시도하려고 했던 동양계 여자애(아마도 중국/대만/홍콩 셋 중에 하난 거 같지만)한테 살갑게 대해줄 걸 싶었다.
사실 짐을 보관하는 luggage룸에 누가 있으리라 생각도 못했고 보통은 짐만 넣어놓고 나오거나 짐을 찾고 바로 떠나는 곳이라 길게 대화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꾸 말을 붙이려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말을 자르고 나온 거였는데 곱씹을수록 생각이 났다. 그냥 거기서 대화가 끝나더라도 대화를 좀 받아줄걸. 미안해, 이를 모를 친구야. 나는 아직도 이렇게 닫혀있나 봐.
아침 푸짐하게 잘 먹고 짐 야무지게 여며서 체크아웃하고 출발. 같은 길로 돌아오는 코스가 있었지만 그건 좀 뻔하니까 동네길로(지름길?) 가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로 내려오기로 했다.
동네길이라 그런지 다들 출근하고 어딘가로 향하는,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모습. 어제 날씨를 체험한 후 옷을 가볍게 입었는데 그러길 잘했다. 이제 더 아래로 내려갈 텐데 이제야 여름옷 가져온 효과가 있겠네.
니스 바닷가를 한눈에 보기 위해 전망대 같은 곳으로 올라가는 길. 그래선지 달동네처럼 오히려 동네를 지나 계단으로 올라간다. 아오 힘들어. 꼭 서울대 대학로 혜화동 뒤쪽에 전망대 올라가던 느낌이 들었다. 어디나 이런 동네는 느낌이 비슷하나 봐. 서울에서 에어비앤비를 꼭 운영해보고 싶다.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어느새 꼭대기 도착. 우와아 바다 색깔이 넘 파래. 꼭 내 귀걸이 색깔 같은 느낌. 의도하고 이 귀걸이를 한 건 아닌데 잘했네. 조금씩 계단을 내려오는데 어디선가 몰려오는 중국인들. 어디서 단체로 온 모양이다. 풍경을 바라보며 페퍼톤스의 <비키니> 한 곡을 겨우겨우 듣고 서둘러 내려온다. 내 시간을 방해하다니. 아쉽지만 내려가서 산책하면서 봐야지.
해변가는 자갈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회색빛이었다. 몽돌해변 느낌. 그리고 마침 의자가 놓여 있어서 잠시 앉아서 쉬면서 일기 쓰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에 다른 의자도 있는데 체격이 나보다 작은 듯한 동글동글한 인상의 귀여운 현지인 할아버지가 굳이 같은 의자에 앉더니 프랑스어 할 줄 아냐고 물어서 "un peu"라고 하고 내 할 일을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이 의자에 일부러 앉은 게 나한테 말을 걸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니스 좋지? 하면서 4,5,6월 좋다고, 얼마나 있냐, 여행 좋아하냐, 맨날 이거 봐서 좋겠다, 어디서 왔냐 등등 영어랑 프랑스어를 섞어가며 조금 대화했다. 안 그래도 대화를 하다 내가 먼저 일어나게 되면 "Au revoir" 하면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께서 먼저 "Bonne journee!" 하면서 자리를 뜨셨다. 어제 그 luggage룸 친구한테도 대화를 안 이어가서 미안하다고 반성중이었는데 할아버지한테 또 그래버렸네. 난 틀렸어.
자자, 이제 나도 가볼까.
의자에서 일어나 서서 바다를 보며 음악을 들은 뒤 (페퍼톤스 2집 7,8번) 할아버지가 말한 꽃시장에 가보기로 했다. 오전만 하는 곳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말해줘서 그제야 생각나가지고 가봤다.
시장은 작지만 귀여웠다. 딸기냄새도 너무 향긋하고 체리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나는야 오늘 다시 짐을 들고 떠나야 하는 사람. 한국 가서도 집에 꽃을 꽂아놓고 싶지만 나는야 백수. 당분간은 의식주에 직접 필요한 게 아니면 돈 쓰는 걸 자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