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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장소에서 같은 노래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BGM <사랑이 있었네>, 노 리플라이

by 세니seny


지나치는 계절 속에

빈 하늘을 바라볼 때

한숨 섞인 노래 속에

사랑이 있었네


허전한 손을 만질 때

먼지 섞인 길을 갈 때

가만히 말을 잃을 때

사랑이 있었네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고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아도

놓쳐버렸던 그 꿈들로

적당히 밤을 채워 가


누군가를 기다릴 때

웅성이던 인파 속에

일부러 길을 헤맬 때

사랑이 있었네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고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아도

놓쳐버렸던 그 꿈들로

적당히 밤을 채워가


어디쯤 흘러온 걸까

어디쯤 놓쳐버렸나

어딘가 손 내밀려 해봐도

끝내 그 손을 놓쳤네


어디쯤 흘러온 걸까

어디쯤 놓쳐버린 걸까

어딘가 떨쳐내려 해봐도

두 손 꼭 쥐고 살아왔네


햇살 가득 들어온 방

가보지 못한 여행지

다시 길을 걸어갈 때

사랑이 있었네

사랑이 있었네


<사랑이 있었네>, 노 리플라이 (No reply)




이 글은 2024년 10월, 도쿄 여행 중 작성한 글입니다.


첫날은 김포에서 오후 출발 비행기를 타는 바람에 숙소에 도착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여정이었던, 어찌 됐건 날짜로 세자면 오늘은 도쿄여행 3일 차다.


이번 여행 숙소는 돈을 아끼기 위해 중심가에서 좀 벗어난 곳을 선택했다. 크게 보자면 아사쿠사 지역인데 강을 건너야만 아사쿠사역이 나온다. 그래서 지하철로 오갈 때는 반드시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한다.


P20241024_214324906_3F6DB4A6-AB1D-44C8-8426-F8EAC8363518.JPG


집, 아니지 숙소로 돌아가는 길. 노리플라이의 <고백하는 날>이 추천에 떠서 듣고 나니 좀 더 듣고 싶네, 이 목소리. 그래서 추천에 뜨는 노래 중에 이상하게 이 노래에 손길이 가서 틀었다.


이 숙소를 고른 장점 중 하나는 오며 가며 스카이트리를 볼 수 있다는 거다. 일명 스카이트리 맛집. 그 곳에 올라가서 보는 풍경도 분명 멋있을 거란 걸, 그동안의 수많은 여행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P20241024_212944211_9A151344-647A-4678-9344-C6240EFD6A7C.JPG 스카이 트리가 보이는 다리. 매일 걸어다녔다. (@도쿄, 2024.10)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도 이렇게 바깥에서 바라보는 것도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삿포로 여행 중, 하루 종일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밤에 숙소 창가에서 불빛이 화려하게 빛나는 관람차를 바라봤을 때 너무나 행복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걸 직접 타보니 조금 아쉬웠던 것과 비슷한 느낌일거다.



그런데 분명 지금과 비슷한 시기에 이 노랠 들은 거 같았는데 언제였더라? 인간의 촉은 꽤 정확하다. 하지만 노래를 들은 장소는 다르다.


일 년 전엔 서울에서, 일 년 후 지금은 예상치도 못했던 도쿄에서 같은 노래를 듣는다. 거의 열흘을 머무니까 장기체류라고 우기고 싶지만 그저 잠시 머물러 가는 가난한 백수 여행자일 뿐이다. 좋은 노래는 어디서 들어도 좋지만 그 많은 노래 중에 왜 이 노래가, 여기서 떠올랐는지 생각해 봤다.


노래 가사 중 ‘어디쯤 흘러온 걸까’라는 가사가 있다. 우연히도 이 노래를 집 앞 천변에서 처음으로 들었다. 바로 물이 흐르는 곳, 말이다.


1년 전의 나는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것보다 더 대단한 결단을 내렸다. 퇴사하고 아예 직업/직종을 바꾸겠다는 것. 하지만 앞으로 반년은 더 버텨야 자유의 몸이 될 수 있기에 마음은 아팠고 괴로웠다.


그때도 지금도 10월 말에 들어선 날씨. 아마 밤 이 시간대쯤 서울은 분명 쌀쌀했는데 위도 상 조금 남쪽으로 내려왔을 뿐인데 도쿄도 비슷하게 가을로 진입했지만 겉옷 없이 다닐만하다. 이제부터가 더 추워지겠지.


P20241024_214343685_A7D15B81-7988-433E-9C44-C76902B5FEA1.JPG 도쿄의 스미다 강 한 컷. (@도쿄, 2024.10)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스미다 강으로, 도쿄를 관통하는 강이 흐르고 있다. 이 구간의 강폭은 작아서 1킬로미터도 채 안 되는 것 같아서. 지하철 아사쿠사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숙소를 가려면 매일 여길 건너 다녀야 한다.


강이건 천이건 물이 흐르는 장소다. 그리고 삶은 흐른다. 장소라는 공통점에다 이 노래를 처음 듣고 울컥했던 시점의 날씨까지 비슷해버려서 이 노래가 이 낯선 장소에서 불려와진거다.


강을 건너는 열차를 바라보며, 불빛이 들어온 강물을 바라보며, 그렇게 서서 다른 장소에서 하지만 같은 노래를 여전히 혼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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