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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후 네 번째 맞는 크리스마스 (상)

시판 감바스와 직접 원팬파스타 해 먹기

by 세니seny
독립 4년 차,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생일과 같은 기념일에는 나에게 무얼 해줄까?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백수인 나에겐 돈이 드는 선물은 주기 어렵다. 매해 이맘때 샀던 어드벤트 캘린더도 올해는 사지 않았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은 바로 맛있는 음식 해 먹기였다.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실은 별 거 없다. 메뉴는 작년과 동일하게 감바스. 감바스는 밀키트를 사서 해결한다. 마침 12월 초였나, 밀키트를 검색했더니 조금 저렴한 대신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을 팔고 있었다. 어차피 그 유통기한이라는 게 크리스마스 근방인 제품이어서 나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곁들여 먹을 음료 아니 술도 미리 사두었다. 무거운 레드 와인보다는 가벼운 화이트 와인이 좋을 거 같아 화이트 와인으로 준비. 와인은 여전히 잘 몰라서 이마트 갔다가 세일하는 제품으로 겟.


힘이 없어서 그런 건지 요령이 없는 건지 그동안 와인 딸 때마다 너무 고생을 했다. 꼭 음식을 다해놓고 나서 와인을 따려고 하면 안 따져서 개고생을 했단 말이지.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아 미리 따놓자 싶어서 이리저리 병을 살펴봤다. 어라라? 이상한데? 알고 보니까 이건 코르크 마개가 있는 병이 아니라 그냥 음료수처럼 돌려서 따는 형태였다. 그래서 허무하게 해결.


그런데 달랑 감바스에 와인만 먹으면 너무 배고플 거 같은데 뭘 더 하지? 냉장고를 뒤져서 밀키트나 냉동식품을 하나 더 추가해? 뭔가 아쉬운데. 말하자면 식사메뉴가 없는 느낌. 그래, 원팬파스타를 하자. 그게 딱이야.


감바스가 오일 베이스니까 평소 원팬 파스타로 간단하게 만들어먹는 오일파스타를 하면 겹치겠지? 그럼 토마토 아님 크림파스타인데 보통 토마토 파스타는 원팬파스타로 하는 걸 잘 못 보기도 했고 평범한데...

그렇담 역시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평소 잘 먹지 않는 크림 파스타로 가야겠어. 크림파스타에 꼭 필요한 치즈는 없었지만 우유가 있었다. 다행히 양파도 있어서 최대한 이걸로 해보기로 했다.


먼저 냉동 감바스를 꺼내서 해동한다. 자연해동하는데 한 30분 정도 걸릴 거 같으니 그 사이에 원팬파스타를 먼저 시작하자.


*크림 원팬파스타 1인분 재료*

파스타 면 1인분, 양파 반쪽, 생마늘이든 간 마늘이든 약간, 버터 약간, 우유, 후추, 액젓, 페퍼론치노(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음)

원팬파스타를 알고 나니 신세계가 펼쳐졌다. 해 먹기 너무 간편해서 주 1회 정도로 자주 해 먹었는데 어떤 날은 성공하고 어떤 날은 물이 너무 많아서 실패했다. 이상하네, 똑같이 레시피 보고 한 건데.


유튜브로 검색할 때마다 나오는 레시피가 달랐는데 레시피마다 물 양이 조금씩 달랐는데 실패한 날은 물 양이 많은 레시피를 보고 해서 그런 거였다. 지난번에 치즈 없이 크림 파스타를 시도했다가 맹맛 파스타가 된 적 있어서 걱정됐다.


일단 둥글고 깊은 팬에 100원짜리 동전만 한 파스타 면을 넣고 냉장고에 얼려둔 마늘큐브를 꺼내서 툭툭, 한 3칸 정도 꺼내서 넣었다. 우유는 보통 종이컵 기준으로 환산하는데 집에 종이컵이 없다.


그런데 내가 독립했다고 하니 한 친구가 기념으로 보내준 그릇 세트가 있었는데 거기 딸려온 컵이 일반 머그컵보다 작은, 딱 종이컵 사이즈였다. 이게 계량할 때 참 좋더라. 그걸로 우유 두 컵을 붓고 물을 반 컵정도 부었다. 일부러 조금 모자라게 넣고 나중에 너무 졸았다 싶으면 물이나 우유를 더 붓기로.


그리고 버터를 숟갈로 한 3,4스푼 펐나? 넉넉하게, 넉넉하게. 그리고 액젓도 티스푼으로 세 숟가락 넣고 페퍼론치노도 한 두어 개 꺼내서 부셔서 넣었다. 페퍼론치노는 레시피에는 없었지만 크림파스타는 아무래도 느끼하니까 조금 넣어주면 좋을 거 같았다.


오늘은 마침 양파가 집에 있길래 양파도 반쪽 썰어서 넣어주고 마지막으로 후추를 뿌린다. 레시피에는 통후추를 쓰라고 되어 있었으나 보통 집에 통추후 많이들 갖고 있나요? 나만 없나요? 통후추는 아니지만 어쨌든 후추맛은 날 테니 일반 후추를 후추춧, 후추춧 뿌렸다.


나 같은 요리 초보들이 레시피 보고 좌절하는 포인트 중 하나는 내가 없는 재료들이 나올 때이다. 아니, 다들 그런 것들이 항상 집에 구비되어 있는 거냐고요? 페퍼론치노는 필수는 아니지만 집에 있었다.


올해(2024년) 이탈리아 갔을 때 사 온 건데, 역시 이탈리아라 그런지 슈퍼에서 이걸 너무 당연한 듯하면서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그래서 아주 좋은 여행 기념품이 되겠다 싶어 냅다 작은 병으로 두 개 사 온 건데 더 사 올걸 후회 중이다. 쓸모가 많다.


요새는 여행 가도 써서 없어질만한 것들 즉 일상에서 쓸만한 걸 기념으로 사 온다. 과자나 젤리, 요리 재료, 잼, 치약 등.


그걸 쓰면서 여행 생각이 나기도 하고 결국은 다 쓰고 없어지기 때문에 자리도 차지하지 않는다. 또 실제로 유용하게 쓰인다는 점이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아무튼 그렇게 재료를 다 때려 넣고 불을 켠다. 이제 끓이기만 하면 된다. 이게 끓는 동안 밑반찬 준비를 한다.


오늘 저녁 식탁은 이탈리아식이 되었다. 엄마가 준 검은색 올리브와 이럴 줄 알고 준 건 아니겠지만 마침 옛날식 샐러드 일명 사라다-각종 과일을 숭덩숭덩 썬 다음 마요네즈를 두른 것-가 있길래 이걸 오늘의 샐러드로 하자 싶어 접시에 덜었다.


평소 쓰지 않는 원형 테이블도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가져다 두고 앉을자리 세팅도 해놓는다. 그 와중에 원팬파스타가 끓고 있는 프라이팬을 중간중간 잊지 않고 저어주었다.


원팬파스타는 잘 됐을까요?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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