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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해외 본사에 방문할 뻔했던 이야기 (상)

그것도 무려 두 번이나... 그 첫 번째 이야기

by 세니seny

나는 본사가 외국에 있는, 정확히는 일본에 본사가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보통 이런 회사에 다니면 회사에 외국인(현지인)이 한 명쯤은 있다는데 우리 회사는 100% 한국인들만 일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 외국계 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외국인 있어요?' '회사에서도 영어로 말해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외국계 같지 않은 우리 회사 같은 곳도 있답니다.


어떤 부서는 일본에서 열리는 행사 참석을 위해, 본사 교육을 위해 그 외 기타 사유로 본사(일본)로 출장을 간다. 다른 부서는 몰라도 내가 속해있는 지원 부서에서는 본사에 갈 일이 없다고 보면 된다. 지원부서에서 출장을 가려면 높은 직위가 되어야 갈 수 있다.


지원부서 중 특히 재무팀의 경우 출장으로 본사에 오라는 건 뭔가 안 좋은 일로 불려 가는 모양새(예 : 실적부진)가 강하다. 그래서 오히려 상사는 출장 오라고 해도 싫어했다. 이런 상황이니 나도 본사에 갈 일은 없겠거니, 하고 지냈다.




코로나 이전 시기의 일이다.


본사와 지사와의 유대 강화를 위해 본사방문 프로그램이 신설되었다. 출장이라던가 어떻게든 본사에 방문을 할 기회가 있는 직원이나 그 부서는 제외하고 그 외의 나머지 부서 직원 중에 아주 신참인 직원 말고 이미 회사를 어느 정도 다녀서 로열티도 있고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들을 몇 명 모아서 본사가 있는 일본 도쿄에 2박 3일간 출장 겸 연수를 가는 거라고 했다.

본사의 공장도 보여주고 본사 사무직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에도 간다. 여행이라고까지 하기엔 그렇지만 그래도 약간의 자유시간도 주어진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신설된 첫 해는 다른 부서에서 사람들이 뽑혀서 갔다. 그리고 그다음 해가 되었는데 당시 팀장님이 나를 추천했다.


본사 방문 프로그램에 가려면 대놓고 드러나있진 않지만 슬쩍 숨겨져 있는, 내부적인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1. 앞으로 업무상 출장이나 교육 등을 본사 방문이 어려운, 거의 없는 팀
2. 팀장급보다는 팀원급일 것 (직위 없는 사람)
3. 최소 1년 이상은 근무해서 약간의 로열티가 보장된 사람
4. 일본어는 못해도 상관없으나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함


스아실 우리 팀에는 나랑 나이와 경력은 같지만 회사는 나보다 훨씬 오래 다닌 직원이 한 명 있었다. 가려면 그분이 가야 마땅한데...? 이상해서 이유를 들어보니 그 친구가 영어를 못해서 고려대상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일본어를 필수로 써야 하는 다른 일본계 회사와는 달리 우리 회사는 영어로 소통을 하고 추가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일본어를 써도 상관이 없는 구조다 보니 일본어를 못해도 영어는 해야 한다.


여기서 내가 추천된 이유는?


1번은 우리 팀 특성상 팀원은 본사 갈 일이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2,3번 사항도 이미 3년 정도 근무한 상태였고 그해초에 우수사원상 비스무리한 것도 받은 상태라 나쁘지 않았다. 4번 항목도 나는 영어도 되고 일본어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를 추천하겠다고 하신 거였다.


그런데 정작 나는 가기 싫었다. 친한 사람도 없는데 혼자 뻘쭘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상상됐고 일본어를 그렇게 잘하지도 않는데 내가 통역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도 싫었다.


게다가 그 프로그램이 예정된 다음 주에 좋아하는 일본 가수의 콘서트가 당첨돼서 일본에 가려고 휴가를 내놓은 상태였다. 이번 주 이틀 빠지고 다음 주도 이틀 빠지면 내 일은 누가 하나? 소는 누가 키우나? 그리고 아무리 걔가 영어를 못해서 내가 가게 된다고 해도 그런 사정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한테는 모양새가 영 그렇잖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직접적으로 상을 주는 건 아니지만 나름의 보상 같은 의미도 있다. 회사 돈으로 본사 구경도 하면서 그 김에 공항도 가고 바람도 쐬고 오는 거니까. 나보다 훨씬 오래 일한 사람이 팀에 턱 하니 있는데 훨씬 적게 일한 내가 가는 게 눈치 보이는 거다. 그런 걸로 둘 사이가 이상해지는 것도 싫고. 그래서 다음 주에도 일본에 가야 할 일도 있고 그 친구 눈치 보이는 것도 있으니 이번엔 안 가겠다고 사정사정을 해서(?) 빠질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는 코로나가 닥치면서 일본에서 한국에 출장을 오는 거나 한국에서 일본을 가는 거나 싹 다 막혀버렸다. 주주총회도 인터넷 화상회의로 하는 시절을 맞이한 것이다. 옛날에는 1시간 하는 주주총회한다고 일부러 본사에서 사람이 오곤 했는데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도 주주총회뿐만 아니라 다른 출장도 이런 식으로 간소화되었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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