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입니다
2025년 1월 중순, 어느 날의 일기입니다.
지금 하는 아르바이트로 정식 근무를 하기 전에 12월 말 ~ 1월 초에 걸쳐 교육을 받았다. 이 알바는 특이한 게 한 달 내내 근무하는 게 아니라 근무 스케줄이 있을 때만 사무실에 나와서 일하는 방식이다. 내가 처리하는 업무는 고객사에서 받아온 일을 하는 형태이다.
그러다 보니 회사 입장에선 고객사에서 일을 줄 때만 나 같은 근무자들이 필요한 거고 최대한 비용을 줄이고 싶으니 회사에선 이 사람들을 상시 고용할 수 없어서 이런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일단 교육을 받고 테스트를 통과하고 2주가량 놀다가 드디어(?) 첫 번째로 일을 하러 나가게 된 것이다.
교육을 받을 때도 사무실에 9시까지 가야 돼서 오랜만에 출근하는 감각을 느껴봤다. 그래도 오랜만의 출근이라 그런지 나름 떨리지만 또 너무 오랜만이라 그래도 조금은 반갑다고 생각했는데 하루 출근해 보고 그 마음은 싹 바뀌었다.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나는 원래 월, 수, 금 오전 10시에 수영을 다니는데 알바 때문에 수영을 다 빠지게 생겨서 급하게 월, 수, 금 저녁 7시 타임으로 바꿨다. 다행히 이 수영장에서는 월중이어도 시간 변경을 허락해 줘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수영장이 아르바이트하는 곳과도 가까워서 6시에 퇴근하면 바로 수영장으로 가려고 출근하면서 수영 짐에 점심 도시락에 이것저것 짐을 바리바리 챙겨 길을 나섰다.
오늘도 컴퓨터가 문제가 있어가지고 이거 일 못하는 거 아냐? 걱정했는데 다행히 1시간 정도 있다가 문제가 해결돼서 일은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교육할 때도 종종 컴퓨터 문제가 있었다. 인증이 안 됐네, 뭐가 안 됐네 하면서 한참을 기다리다 결국 해결이 되지 않아 나 같은 근무자들을 조기퇴근 시킨 적도 있어서 오늘도 출근하면서 마뜩잖았는데 또 이럴 줄은 몰랐지. 아무튼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각자 파티션이 쳐진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와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만 들리는 적막감이 감도는 고요한 사무실.
오전에는 그래도 할 만했다. 그런데 오후에는 정말 너무 지루하고 졸렸다. 다음날부터는 몰래 에어팟을 한쪽만 끼고 작업하기 시작했다. 이제 작업하다 보니 패턴이 손에 익어서 익숙하기도 했고. 슬쩍 보니까 나 말고 다른 애들도 에어팟 많이 끼고 있었다.
이곳은 6시 땡 하면 바로 퇴근이다. 버스를 한 번만 타면 바로 수영장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하차했다. 아무 버스나 타도 돼서 좋다. 급하게 출력할 게 있어서 수영장 앞에 있는 문구점에 들렀다.
그리고 수영장으로 가서 탈의실 들어가기 전에 집에서 삶아온 계란 하나 후다닥 먹었다. 그리고 탈의실 키를 받아가지고 들어가서 수영을 했다. 매주 월요일은 오리발 데이라 오리발을 신고 수영을 했는데도 힘들었다. 아무리 아르바이트라도, 일을 하다 와서 그런가?
그렇게 지친 상태로 수영장에서 나왔다. 집에 가려고 버스 시간표를 보니까 다음 버스가 20분 뒤에나 온다고 나왔다. 버스가 지하철보다 좀 더 걸려도 타는 이유는 바로 집 앞에서 내려주니까, 인데 20분이나 기다리기는 싫었다. 오늘은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뭐가 됐든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집에 가서도 해야 할 일이 많아서 한시라도 빨리 가야 했다.
지하철을 향해 걷는데 지하철역이 이렇게 멀었나? 몸이 천근만근이다. 그렇게 겨우겨우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는데, 버스보다 고작 10분 정도 일찍 도착한 거 같다. 수영과 관련된 짐을 싹 치우고 급하게 국이랑 반찬거리를 데웠다. 그나마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무것도 없었으면 언제 반찬하고 밥을 하겠냐고요. 밥은 어제 미리 해놔서 국과 반찬이 다 데워지자마자 저녁을 후루룩 먹고 설거지까지 한바탕 하고 났더니 10시다. 밤 10시.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감을 놓지 않기 위해서는 중국어랑 프랑스어 공부를 매일 해야 한다. 피곤하지만 이 와중에 공부를 했다. 대단하다, 나 자신. 그러고 침대에 누우려고 하니 11시 반. 그런데 또 내일 출근이다.
아아, 이런 거였어. 9-6 사무직의 삶. 심지어 야근을 안 했는데도 출퇴근이 30분 거리로 집에서 매우 가까운 편인데도 왜 이렇게 힘들고 시간이 없는 거니. 나의 다음 행보가 사무직이 될지 야외에서 근무하는 일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사무직이라면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일하고 집에 와서 씻고 자기만 해도 시간이 훅 간다. 그 와중에 시간 내서 취미생활하랴, 운동 다니랴, 책 읽으랴 거기에 외국어 공부까지 하려고 하면 … 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이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시간 안에 나를 구겨 넣고 싶지 않다.
시간을 꽉 채운 밀도 높은 삶,
그렇게 살다가 뒤지겠다고요.
이제 그 짓거리,
그만하고 싶다고요.
큰맘 먹고 OTT 정기결제를 질렀으나 시간이 없어서 다른 건 손도 못 대고 <홍김동전>만 겨우겨우 보고 있는 상황이다. 아니, 호흡이 긴 드라마는 대체 언제나 볼 수 있는 겁니까? 눼?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는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회사에 출근하면 자리에서 돌아다니지 말고 딱 뽝 집중해서 9-16시 타임으로만 일하고 와도 살 거 같다. 9-17시 근무? 주 35시간제? 아냐, 아냐, 주 35시간도 너무 많아.
내가 짠 플랜대로 일이 돌아간다면 그런 비슷한 삶을 살아볼 수도 있을 거 같다. 아무튼 아르바이트로 정식 출근했지만 이제는 사무직으로 돌아가기 싫다는 것과 우리(나라)는 여전히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