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의료사고가 있었던 정형외과 방문기
이번 생에 처음으로 깁스를 하게 되었다.
사건의 시작은 11월 말의 일요일 오후였다.
엄마가 겨울 이불을 정리해야겠다면서 같이 하자고 했다. 창고에 쌓아두었던 각종 요와 이불을 방으로 날라 오고, 잘 접어서 압축팩에 넣고 공기를 빼면 끝이었다. 창고에 있는 엄마한테 이불을 받아서 방으로 날랐다. 그러다 보니 방 안과 방 입구 주변엔 이불이 가득 쌓였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방 문 앞에도 이불이 잔뜩 쌓여있다 보니 그걸 피해서 간다는 게, 발을 들다가 방문 옆쪽 문틀에 오른쪽 발을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으악! 악 소리가 절로 났다. 엄청 아팠다.
보통은 발가락을 손으로 잠시 감싸고 있거나 호- 불어주면 통증이 가라앉는데 이번엔 정말 세게 부딪혔는지 그렇게 한참을 해도 통증이 가라앉질 않았다. 게다가 이제 창고에서 이불을 다 꺼내왔기 때문에 정리를 시작해야 했다. 아픈 발가락을 부여잡고 엄마와 작업을 시작했다. 나중에 보니 넷째 발가락에 멍이 들어있었다. 그 작고 쓸모없어 보이던 네 번째 발가락도 걸을 때는 자신의 역할이 있는지 걸을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월요일이 되어 출근을 했다. 살짝 절뚝거리며 사무실을 걸어 다니니 왜 그러냐고들 물어본다. 그중 한 명이 병원에 가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당장 병원에 갈까 했는데, 가벼운 발걸음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는 내과와는 달리 정형외과로 향하는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비교적 간단한 진료를 하는 내과와 달리 정형외과는 엑스레이라는 커다란 기계에 내 신체를 찍어야 한다는 약간의 공포 때문인지 병원에 갈 마음을 먹는 것부터 심리적 허들이 생겼다. 게다가 그 날은 치마를 입고 와서 스타킹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엑스레이를 찍기엔 좀 불편한 상황이었다. 그럼 내일은 바지를 입고 와서 양말을 벗고 엑스레이를 찍기로 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니 멍도 가라앉고 통증도 처음보다는 약해져서 괜찮아지는 건가 싶어 병원에 가는 것을 자꾸 미루게 되었다.
멍도 많이 빠지고 통증도 약해지긴 했는데 여전히 통증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가서 괜찮다고 하면 다행인 거고 만약 안 괜찮다고 하면 치료를 받으면 되니까. 그때가 발가락을 다친 지 이미 열흘 정도 되었을 때였다. 그 날은 병원도 가야 했고 엄마를 만나 등산화를 사러 가기로 해서 오후에 휴가를 냈다. 그리고 회사 근처의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발가락을 본 의사 선생님은 아직 부기가 빠지지 않았다고 하면서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다시 얘기하자고 하셨다. 여러 각도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진료실로 갔다. 그랬더니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 주시면서 뼈가 부러졌다고 하셨다. 부러진 부위는 워낙 미세해서 잘 보이지도 않았는데 엑스레이 화면을 확대해서 보여주셨다. 한 달 정도 깁스를 하고 상황을 지켜봐야겠다고 한다.
마취를 하고 발가락 뼈를 맞춰야 한다고 해서 옆에 치료실로 이동해 침대에 누웠다. 마취할 때 따끔하다고 했다. 어느 부위든 마취 주사를 맞는 건 참 싫지만 그 순간만 버텨내면 이후에 받는 치료는 아프지 않으니까 나는 주사를 잘 참는 편이다. 그리고 나는 주사를 맞을 때 바늘이 살을 파고드는 그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기 싫어서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꼭 감고 있는 편이다. 그렇게 주사 맞는 부위를 쳐다보지 않고 주사를 맞았는데 네 번째 발가락에 주사 바늘이 들어간 게 맞나? 란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그리고 마취가 되려면 조금 기다려야 해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은 나갔다가 조금 뒤에 다시 들어오셨다. 그러면서 마취된 거 같냐고 물으시는데 마취가 된 느낌은 났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발 여기저기를 만져보시더니 하시는 말,
마취를 해야 하는 발가락은 네 번째인데 두 번째 발가락을 마취했네요?
미안합니다.
엥? 좀 더 큰 수술이었으면 어쩔 뻔했어? 엑스레이 사진 상에서 두 번째와 네 번째 발가락을 헷갈려서 그랬다며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아까 분명,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전에, 진료실에서 네 번째 발가락 보셨잖아요? 그런데 병원에서는 내가 고객임에도 마냥 강하게 의견 어필을 할 수 없는 게 그쪽은 전문가이고 나는 환자인지라 혹시나 내가 항의를 했을 때 감정이 상한 의사가 내 치료를 엉망으로 해줄까 봐(그렇게 해도 내가 조치를 취하기 어려우니) 세게 말을 못 하겠는 거다. 그나마 오늘 같은 일은 사소한 축에 끼지만 진짜로 큰 의료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진료 기록을 확보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했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누구나 '직업인'으로서 일을 하다 보면 매일이 반복되는 일상이니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 나는 매일 숫자를 보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사만큼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만드는 자료나 다른 사람에게 알려준 숫자의 영향력이 클 때가 있다. 그래서 나도 조심한다고 하는데 실수를 할 때도 있으니 이해는 한다. 그렇지만 이건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일이니 그래도 좀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하는 서운함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이 바로 사과하시긴 했지만 진짜 큰 수술이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며 뒤늦게 놀란 마음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병원에 들어왔을 때부터 직원들도 그렇고 의사 선생님도 친절한 편이어서 화를 내기가 애매했다. 아마 발이 나을 때까지 계속 이 병원에 와야 할 텐데 서로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아 화를 내지 않고 넘어갔다. 네 번째 발가락에 다시 마취 주사를 맞고 뼈를 맞추고 깁스를 했다. 그런데 발가락만 하는 깁스는 없다며 무릎 밑까지 내려와 종아리 전체를 감싸는 커다란 반깁스를 꺼내는 게 아닌가. 뼈가 붙을 때까지는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여행도 못해, 식당도 못 가고 있는데 이제 그냥 걷는 것마저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니. 자유의지를 뺏긴다는 사실에 무력감과 우울감이 밀려왔다. 여태까지 통증이 있는 상태에서 열심히 걸어 다니고 테니스 레슨도 가고 심지어 자전거도 탔다. 게다가 테니스 레슨은 이미 12월분을 등록했다. 참 멍청한 질문 같았지만 혹시 테니스를 해도 되냐고 물어봤다. 나는 이때까지도 깁스를 하고도 그전에 하던 것들을 그대로 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무지했다. 선생님은 움직임 자체를 최소화해야 된다고 했다. 운동은 당연히 할 수 없었고 출퇴근에 어려움이 예상되었지만 다음 주까지는 재택근무라 사무실에 출근할 일이 거의 없어 다행이었다.
그렇게 나는 갑자기 깁스 생활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