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첫 출근 전날, 도서관에서 반나절 보내기 (상)

by 세니seny

2025년 4월 중순, 어느 날의 일기.


급작스럽게 취업이 돼버려서 못한 것들도 여전히 많다. 하지만 근 1년간 쉬면서 대체로 미뤄뒀던 일들을 많이 했다. 다음 주 출근을 앞두고 그동안 백수일 때 못해본 것 중 하나를 해보기로 한다. 바로바로...


도서관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

지난주 목요일에 면접을 보고 바로 다음날 문자로 합격자 통보를 받았다. 신원조회 뭐시기 등 절차가 있다고 해서 원래 공고에 나온 대로 그다음 주 목요일이 되어야 홈페이지에 정식으로 합격자 발표가 난다고 했다. 다행히 신원조회 절차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정식 공고에 합격자로 발표되었다. 그러고 나니 바로 그다음 주가 출근이다.


정식 합격자 공고가 난 바로 다음날에 사무실로 나와서 합격자 등록을 하라고 쓰여있었다. 그런데 등록만 하는 거면 꼭 그날 가야 되는 건지 혹시 출근하는 날 같이 하면 안 되는 건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별다른 게 있는 건 아니니 출근하는 날 해도 된다고 해서 굳이 출근 전에 출근지에 가지 않아도 된다. 거기까지 가는데 1시간 걸리고 오는데 1시간이 걸리니 2시간을 시간을 벌었다.


그러고 났더니 주말은 마침 잡아놓은 일정이 있어서 후루룩 지나갔다. 일반적인 직장이라면 보통 월요일에 출근이지만 내가 출근하는 곳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주말에 열고 평일에 하루를 쉬는데 보통 월요일에 휴관이 많고 이곳 또한 월요일이 휴관이라 쉬는 날이었다. 그래서 나의 첫 출근은 강제로 화요일로 밀렸다. 그래서 갑자기 월요일 하루를 또 벌게 되었다.


원래 월요일 오전에 6개월마다 가는 병원 검사예약이 있어서 검사를 받고 오후에는 얌전하고도 순순하게 알바를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곳으로 취직하게 돼서 알바도 그만둔 상태다. 일반적인 경우처럼 월요일부터 출근하는 줄 알고 월요일이었던 병원예약을 금요일로 급하게 바꿔서 병원 검사도 이미 후다닥 받고 난 뒤였다. 그러고 나니 월요일이 풀로 남는다.


그러면 출근을 하루 앞둔 날에는 과연 뭘 해야 할까? 과연 무엇을 해야 이 시간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갈까? 그동안 못해봐서 아쉬운 걸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당분간은 이렇게 백수의 삶은 없을지도 모르니까.


1. 새로 생겼다는 강동 이케아 구경도 하고 드라이브를 할까?
2. 이사를 앞두고 짐정리를 시작해야 할까?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곧 결정했다.


지난 토요일에 이사 온 초창기에 몇 번 오고 나서 발길을 끊었던 동네 도서관에 우연찮게 다시 방문했는데 그 기억이 너무너무 좋았다. 가만 보니 내가 백수 시절에 안 했던 것 중 하나가 도서관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그동안은 계속 자격증 공부에다 외국어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공부는 도서관에서도 할 수 있긴 한데 내 공부 스타일이 혼자 떠들면서 하는 스타일이라 도서관에서 하면 조용히 입 다물고 공부를 해야 해서 개인적으로 공부를 할 때 도서관에 다니지 않는다.


어렸을 때도 친구들은 다 학원 다니고 자습실에 독서실을 다니던 고3 시절에도 나는 집에서, 내 방 책상에서 공부를 했다. 여름엔 더워서 도저히 방에서 공부를 할 수가 없으니 부모님이 에어컨을 사서 달아주시기도 했었다. 그러니 도서관에 와서 공부하거나 시간 보낼 생각을 하지도 않은 것이지.


일을 시작하고 난 뒤에는 평일에 쉴 테니까 그때도 도서관에 오겠지. 하지만 백수 신분일 때 오는 거랑은 기분이 다를 거다. 그럼, 가자. 아침부터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낼까 했으나 오전부터 가면 점심을 먹으러 나가야 하거나 점심을 먹기 위해 집에 왔다 갔다 해야 했다.


그리고 아무리 우리나라가 자리에 짐 놓고 돌아다녀는 게 안전하다고 해도 나는 자리에 짐을 놓고 오래 비우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오전엔 집에서 할 일을 해놓고 점심을 빨리 먹은 뒤 긴 오후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기로 결정했다.


오전에 일어나서 집 청소도 하고 원서를 소리 내어 읽는다던가 도서관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처리했다. 점심 먹고 설거지까지 싸악 치우고 쓰레기 버릴 거 들고 나와서 쓰레기를 버리고 그 길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햇살이 너무 좋다. (ㅎㅎ) 내일은 비가 온다는데 오늘은 완연한 봄날씨다. 겉옷을 뭘 입고 나올까 하다 작년에 유럽여행 갈 때 산, 부피가 작아 보이고 유럽은 한국보다 날씨가 좋으니까 얇아도 되겠지? 하면서 산 재킷을 입었다. 그런데 실제로 유럽에 갔더니 우리나라보다 더 추운 거다. 그렇다. 4,5월의 유럽은 아직 쌀쌀했던 것이다.


6월이나 돼서야 내가 가져간 옷들이 드레스코드에 맞았다. (거의 여름옷만 가져갔음) 심지어 6월 정도 돼야 야외수영이나 바다수영도 가능했다. 수영하겠답시고 야무지게 비키니도 챙겨갔는데 결국 바다 수영은 1도 못하고 실내 수영장을 찾아 겨우 수영을 하고 왔다. 다행히 유럽은 실내 수영장에서도 비키니 착용이 가능해서 수영을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이 얇은 쟈켓을 들고 다니면서 여행 내내 입어도 입은 거 같지 않고 추워서 개고생 했던 기억만 떠올라서 다시 입으려나? 했는데 사람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다. 이제는 추억이 된 1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지금 날씨에는 괜찮겠다 싶어 입기로 했다. 그러고 입고 나오니 지금 날씨에 딱이다. 다시는 안 입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기억은 희석된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