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첫 출근 전날, 도서관에서 반나절 보내기 (하)

새로운 시작을 향해, 그간의 1년 되돌아보기

by 세니seny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도서관에 들어와서 2층으로 올라갔는데 창가를 둘러싸고 놓여있는 1인석은 전부 만석(ㅋ)이다. 여길 차지 하려면 일찍 와야겠지. 하는 수 없이 3층으로 올라왔는데 여기는 여러 명이 함께 앉는 테이블석만 있어서 거기라도 자리를 확보해야 했다. 안 그러면 오래 앉으면 허리가 아픈 바bar로 된 형태의 자리에 앉아야 했는데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책만 읽으면 아무 자리에나 앉아도 상관없는데 오늘은 브런치글도 좀 정리할 겸 아이패드도 갖고 왔기 때문에 편한 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3층을 돌았는데 다행히 창가좌석이 딱 세 자리 있었다. 그중에 양 끝 자리는 아니지만 가운데 자리가 비어서 옳다구나, 이거라도 어디야, 하며 앉았다.


그래도 여러 명 앉는 테이블보단 훨씬 나았고 좁게 앉으면 4명이 앉을 만한 자리를 여유 있게 3명만 앉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대체로 이런 테이블은 좌석 확보를 위해 자리를 다닥다닥 붙여놔서 옆사람이 신경 쓰일 정도로 불편한데 이곳은 그렇지 않아 가운데 자리여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걸 설계하신 분이 누군지 몰라도 설계자, 칭찬해…ㅋ


그러고 자리를 잡으니 내가 살(‘buy’와 ‘live’ 둘 다임ㅎ) 수 없는 고급 아파트 단지의 풍경과 내가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연둣빛이 흘러넘치는 거리의 가로수들이 저마다의 연둣빛을 담고 있는 게 시야에 들어온다.


행복하다. 앞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이 도서관 자주 올 거다. 그리고 당분간은 언어 공부나 시험 공부 하는 것도 없으니까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거나 브런치 글을 퇴고하는 등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목표 중 하나가 브런치에 그동안 임시저장해 둔 글을 남은 8개월간 (5~12월) 계획을 세워서 마무리지어 가지고 브런치북이든 매거진이든 다 업로드해서 치워버리기로(ㅎ) 했기 때문에 이전보다 글을 정리할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


나는 브런치에 일단 글을 막 싸질러놓은(?) 다음에 고치는 과정을 둔다. 문단을 나누고, 중복되는 말들을 지우고, 이상한 표현을 고친다. 그리고 앞뒤 흐름을 고려해서 글을 수정하고 본문 배치를 바꾸는 등의 후작업을 하는데 이게 은근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그동안 저장만 해두고 발행하지 않은 글이 한가득 쌓였다.


회계팀 팀원일 때 그리고 팀장이 되었다가 퇴사하게 된 이야기까지 모두 1년이 지난 일들인데 아직도 글이 그득하다. 문제는 퇴고 과정에서 다시 그 글들을 마주해야 하는데 이미 현실에서 끝난 일을 계속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서 찜찜하다. 나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면서 동시에 근미래를 바라보며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글을 퇴고하면 할수록 계속 과거에 발목 잡히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큰맘 먹고 올해 안으로 오래된 글들을 싹 다 정리해 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회사에 다닐 땐 일부러 북카페도 많이 찾아갔었고 집에서도 글 정리를 많이 했다. 하지만 이제는 집 근처에 이렇게 북카페 느낌 나는 좋은 도서관이 있는데 굳이 다른 곳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또 앞으로는 주말에 일하고 평일에 주로 쉴 테니까 ‘관내 도서관 찾아다니기’와 같은 나름의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새로운 도서관 구경도 하고 그 김에 브런치 글도 정리해야겠다.


내가 브런치북을 발행한다고 해서 인생이 180도 바뀌고 텔레비전에 출연하거나 책을 내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확률이 아예 없진 않겠지만 낮다고 봐야지. 나는 그냥 나 자신을 위해서 나의 한 스텝을 정리하고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나 편하자고, 나 좋자고 하는 일이다.


아무튼 오늘은 백수 마지막 날. 마지막으로 다닌 회사를 퇴사한 건 서류상 날짜는 5월이지만 실제 마지막 출근은 4월 중순도 되기 전이었다. 마지막 출근을 하고 1주일을 겨우 쉬면서 살짝 재정비를 한 뒤 딱 1년 전 이맘때쯤 유럽으로 장장 두 달간의 여행을 떠났었다.


그리고 6월 말에 돌아와서 숨 좀 돌리고 7월부터 바로 자격증 공부에 돌입했다. 그동안 미뤄두기만 했던 수영 레슨도 다니기 시작했고 그동안 못 본 사람들도 만나고 다녔다. 9월엔 관통사 필기시험 보고 동생을 보기 위해 미국에도 다녀오고 10월 말엔 난생처음으로 일본 도쿄 여행을 갔다. 11월엔 중국어 HSK 5급 시험과 관통사 영어 면접시험을 치렀다.


12월 초에는 일본 나고야에 후다닥 다녀왔고 12월 중순에 관통사 최종합격 소식을 들었으며 짧게 하고 끝날 줄 알았던 알바를 시작하게 돼서 예년과 같이 12월 말일에도 출근을 하는 사태를 맞이하기도 했다. 여태 정규직일 때도 12월 말일에 출근은 기본이고 1년의 마지막 날이라고 남들은 다 일찍 집에 갈 때 (심지어 대체로 회사에서 이날은 일찍 들어가라고 권장하고 휴가 내고 안 나오는 사람들도 수두룩함) 나는 연마감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일찍 퇴근은커녕 정시 퇴근도 못하고 야근에 시달렸다.


그래도 12시 전에, 해가 바뀌기 전에는 집에 들어가자며-어차피 다음날이나 주말에 또 출근해야 함(ㅎ)-팀원들과 집에 들어갔다가 다음날 또 출근하는 그딴 시추에이션들을 겪어왔다. 그렇기에 올해만큼은 백수니까 12월 31일, 이 날 하루만큼은 얌전하게 집에서 보내야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무슨 박봉에 거지 같은 운명인지 결국 알바 때문에 1년의 마지막날에도 출근을 했지만 다행히 그날 일이 없어서 시급 주기 싫으니까 사측에서 오전만 일하고 들어가라고 해서 억지로나마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1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프랑스어 델프시험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으며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예능 프로그램 <홍김동전>이 종영 1년 만에 넷플릭스에서 부활한다는 아주 기쁜 소식을 들었다. 설연휴에는 가족이라기엔 여동생 빼고 엄빠를 모시고 다들 가족여행으로 한 번쯤 간다는 베트남 다낭에 다녀왔다. 2월에는 알바와 몇 번의 면접과 프랑스어 공부에 박차를 가했으며 2월 말에 구) <홍김동전> 현) <도라이버>의 방영이 시작되었다.


3월 초에 프랑스어 시험을 치르자마자 혹시라도 취직되면 주말에 근무하니까 주말에 진행되는 어학시험을 못 볼 거 같아 가장 빠른 4월 HSK 중국어 시험을 접수해 놓고 급하게 공부에 돌입했다. 그러면서 간간히 원서를 쓰고 3월 말부터는 갑자기 알바도 나오라 그래서 본의 아니게 계속 출근을 하면서 그 와중에 중국어 시험공부를 하고 곧 전세기간 만료라 미래의 세입자들에게 집 보여주느라 집을 지키고 있어야 했는데 그 와중에 겪지 않아도 될 별 황당한 일들도 겪었다. (이건 나중에 다른 글에서 풀려고 한다)


그 와중에 4월 초에 서류 한 군데가 통과되었지만 기대하지 않고 면접을 봤는데 합격 소식을 듣고 6개월 만에 재응시하게 된 중국어 시험도 무사히 치렀다. 그렇게 내일 다시 마지막 출근 이후로부터 1년여 만에 새 출근을 앞두게 된 거다.


전에 어떤 글을 쓰면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여태 나의 취업 패턴은 항상 가을에 출근하는 거였다. 왜냐하면 내가 대학생 때 1년(두 학기)이 아니라 반학기(1학기)만 쉬고 여름인 8월에 졸업을 해서 그렇기 때문이다.


첫 회사 : 10월 입사, 12월 퇴사
두 번째 회사 : 9월 입사, 9월 퇴사
세 번째 회사 : 9월 입사, 5월 퇴사


아무리 그래도 두 번째와 세 번째 회사의 시작은 분명 다른 계절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필 딱 그 타이밍에만 입사가 결정되는 게 참 재밌다. 아무튼 이번엔 봄에 그만두었고 다시 그로부터 1년 뒤 봄에, 다시는 겨울이 끝날 거 같지 않은, 저 차가운 땅속에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던 그런 겨울을 지나 어느새 연둣빛이 거리에 넘실대는 봄이 다가온 시점에, 라일락향이 코끝에 맴도는 이때에 네 번째 회사 출근을 앞두게 되었다.


오늘은 오후 내내, 2년간 살았던 동네를 떠날 때를 앞두고 좋아하게 된 동네 도서관에서 그동안 생각해 두었던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밀린 브런치글도 많이 고쳤다.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지는, 출근하기 전날의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