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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인센티브 트립으로 해외에 가다 (5)

자유시간에 시내 서점에 들러 원서를 구입하기

by 세니se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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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국제거리 근처에 있는 준쿠도 서점.


서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깨달았다. 여기는 1~3층까지가 전부 서점이었다. 여기는 분명 뭐라도 있겠다. 1층은 문구코너인 거 같아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 올라가자마자 역시 아날로그의 나라답게 우리나라 같으면 100% 책을 검색하는 컴퓨터가 놓여있었을 자리에 사람이 서 있었다.


서점 내부를 훅 둘러봤는데 아무래도 넓다. 이 상태에서는 혼자서 책을 못 찾을 거 같아 바로 직원에게 내가 찾는 책을 물어봤다. 그랬더니 책이 있기는 한데 다 ばらばら(바라바라/여기저기 흩어져있다는 뜻)라면서 원하면 찾아다 줄까?라고 물어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기다리란다.


조금 기다렸더니 다른 직원이 책을 들고 와서 (그런데 난 줄 어떻게 알았지? ㅎ) 이 책 맞냐고 물어본다. 응, 맞아요. 그런데 가져온 책 중에 하나는 속편인 거 같아서 계산 안 하고 싶었는데 갖고 왔길래 일단 받았다. 계산은 1층에서 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도 왔으니 서점이 어떻게 생겼는지 잠깐이라도 보고 싶어서 소설 코너가 어디냐 물어보니 저어기 앞쪽에 문예 코너로 가보라고 했다. 책이 정말 많다. 그런데 시간을 보니 벌써 10시 20분쯤이라 집합시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짐까지 들고 다시 걸어갈 생각을 하면 어휴... 그래서 구경은 거의 못 한 채로 아쉬운 마음을 접고 내려왔다.


1층에 오니 아까 책 가져다준 그 직원이 계산을 해주면서 여러 가지를 물어본다. 그런데 중간에 어떤 문장 하나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는 거다. 포인트 적립하겠냐? 비닐봉지 줄까? 이런 건 알겠는데.


몇 번을 되묻고서야 북커버를 물어보는 거 같다. 생각해 보니 일본은 책을 살 때 책커버를 씌워준다는 걸 어디서 본 기억이 있었는데 그건가 보다. 지금 그럴 시간도 없고 문고본이라 어차피 편하게 보는 책이기 때문에 필요 없다고 하며 얼른 계산을 끝냈다.


그리고 다시 집합장소까지 돌아가는 길을 검색해 보니 멀-다. 걸어가는 방법 말고 유이레일을 타고 갈 수도 있더라. 마침 유이레일 역이 바로 앞에 있었다. 한 정거장이지만 돈 내고 편하게 가자!! 싶어 역으로 고고씽.


그런데 역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표 자동판매기. 이거 좀... 불안한데?


보니까 스이카 카드(일본 교통카드) 아니면 결제가 안 되는 거 같다. 창구에 가서 물어보니 교통카드 아니면 무조건 현금으로만 표를 살 수 있단다. 아까 책 계산하면서 더 이상 현금 쓸 일이 없을 거 같아 5천 엔을 책 살 때 다 내버렸다. 심지어 책 한 권을 뺐으면 딱 4천 엔 정도라 현금도 남았을 테고 그럼 모노레일도 탈 수 있었다. 젠장.


이걸 예견한 듯이 아까 직원이 찾아준 책 중 속편인 책 한 권을 살까 말까 고민했던 걸까? 어쩌겠어. 그렇다고 몇백 엔의 교통비를 위해 만 엔을 뽑을 순 없었다. 길을 따라 쭉 내려오면 집합장소까지 딱 1km로 오히려 거리가 줄었달까. 어쩌겠어. 그럼 걸어야지.


그래서 역을 빠져나와 파워워킹을 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과도 마주쳤다. 제발 더 오지 마라 제발. 그래도 빨리 걸어가면 승산이 있었다. 그래서 정신없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걷고 있는데...


오른편에 유이레일(모노레일)을 두고 집합 장소까지 걸었다.

인도 오른편으로는 지상에 모노레일이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꼭 우리나라의 다리 밑 같은 풍경이었다. 그리고 왼편은 인도와 함께 작은 가게들이 있었다. 그중에 지나가다 우연히 본 어느 카페엔 조명이 굉장히 어두웠다. 그런데 그 안에 손님인지 주인인지 여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나는 양손에 짐을 무겁게 들고 바쁘게 걸어가는 중이었고 그 사람에게는 그냥 평일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겠지. 아침은 먹었을 거고 아직 점심을 먹기엔 이른, 카페에 앉아있기 딱 좋은 그런 시간이었겠지.


<기억에서 남는 세 번째, 마지막 풍경>

(사진은 없음)


그 광경과 마주한 순간 에드워드 호퍼 그림이 떠올랐다. 꼭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한 여자가 거기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순간 뇌리에 박혔다. 기록을 위해 사진을 찍을까? 생각했는데 그때의 나는 마음이 많이 급했다.


이제 막 모노레일 역에서 나와 발걸음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물건이 가득 찬 돈키호테 봉투 두 개를 양쪽에 들고 1km를 넘게 걸어야 했다. 아쉽지만 그 풍경은 눈에만 담고 고개를 돌려 다시 앞을 보고 직진했다.


막상 그렇게 급하게 갔는데 생각보다 1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나 빼고 온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그러면 아까 그 풍경 사진 하나 찍는데 30초도 안 걸릴 텐데, 그냥 찍을 걸. 대단한 구도를 잡을 것도 아니고 그냥 그 풍경을 간직하고 싶었을 뿐인데. 나란 인간. 아무튼 그게 서점에서 나오자마자 마주한 풍경이라서 더 뇌리에 남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밟았다. 단체로 비행기를 타는 거지만 체크인은 각자 했다. 모바일 체크인을 어제 밤늦게 했더니 앞쪽 좌석은 거의 다 나갔고 자동 배정된 게 맨 끝 뒷자리. 그나마 창가라서 그대로 탑승했다.


맨 뒷자리의 좋은 점은 의자를 뒤로 넘겨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에 극장에서 보다가 졸았던 <엘리멘탈>을 이번엔 제대로 보기로 했다. 영화 러닝타임이 비행기 운항시간과도 얼추 맞았지만 난 역시 이번에도 잠들고 말았다. 나는 대체 <엘리멘탈>은 언제쯤 제대로 볼 수 있을까? (ㅎㅎ)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나만(?) 재밌었던 점.


주말에 브런치에 글을 올려놓고 갔다. 브런치는 보통 글을 올리고 난 당일이나 다음날에만 주로 확인하고 잘 안 들어간다. 그런데 여행지에서 할 일도 없고 해서 슬쩍 들어가 봤다. 그런데 최근에 올린 글 조회수가 미친 듯이 폭발한 게 아닌가. 잘못 봤나? 싶어 다시 보니까 지난 주말에 올린 글이 다음 메인에 조그맣게 실린 거였다.


제목이 좀 어그로일 수도 있었지만 바로 '퇴사자의 징조'였다. 그런 징조를 보이고(숨기고) 있는 내가 인센티브 트립에 와서 그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 웃겼다.


그런데 이건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아는 사실. 그래서 여행지에서 혼자 외롭고 힘든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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