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의 이별은 예감하지 못한 때 찾아온다
2023년 시점의 일입니다.
몇 년 전, 만우절에 회사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팀장님이 팀원들을 불러놓고 '그만둔다'는 얘길 하셨는데 사실은 그날이 만우절이라 거짓말을 하셨던 것.
그래서 다음번에 팀장님이 퇴사한다는 말을 하면 그건 농담이 아니라 진짜일 거라고. 그리고 언젠가 그런 일이 일어나겠지,라고 썼었다. 물론 그전에 내가 먼저 관두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나는 그동안 계속 이직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실제로 이력서를 뿌린 건 올해 초부터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23년) 6월인데 결과는 보시다시피 상반기가 끝나가는 지금 이 시점까지도 아무런 소득이 없다. 이 기운이 얼마나 갈진 모르겠는데 큰일이다. 내가 이 팀에서 제일 먼저 나가는 게 목표였는데 팀장님이 퇴사 소식을 밝힘으로써 이 목표 달성은 실패다.
오늘 하루 종일 바쁘던 팀장님이 내가 퇴근하기 5분 전쯤, 할 말이 있다고 잠깐 보자시길래 방금 보낸 메일 때문인가 했다. 퇴근할 준비를 다 마쳐놓은 상태라 가벼운 마음으로 팀장님 자리에 갔다.
그런데 무슨 얘기를 하시려는지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계셨다. 그 시간이 꽤나 길게 느껴졌다. 엄청 큰 업무가 떨어졌나? 다른 부서와 갈등이 생겼나? 혹시 내가 모르는 조직개편이 있나?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엄청 무거운 얘길 들어버렸다.
나 퇴사해.
언젠가 이런 일이 닥칠 줄은 알았지만 최소한 지금은 아닐 거 같았다. 그리고 내가 먼저 이직한다면 이런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느슨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당황해서 아무 말도 안 나오더라.
나중에 집에 오는 길에서야 팀장님한테 이직하려는 곳이 무슨 회사냐, 어디 있는 회사냐 그런 거라도 물어봤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여기 오래 계실 거란 생각은 안 했다. 하지만 팀장님이 준비하고 있는 시험도 있으니 적어도 그 시험은 마무리하고 가시겠지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팀장님의 윗사람인 본부장님과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일들이 많아졌고(이건 초반부터 그러긴 했지만 요새 들어 더...) 처음의 총기랄까 패기랄까 팀장님 특유의 스타일을 잃어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능력도 있는 분이니 알아서 잘하시겠지, 언젠가는 이 회사를 떠나겠지란 생각은 했지만 그게 지금이 될 줄은 몰랐다. 떠나는 개인을 탓할 순 없다. 그런 마음으로 회사에 더 붙어있는 게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회사를 위해서도 좋은 선택지가 아니니까. 지금의 나처럼. 그러니까 더 오래 안주하다가는 나처럼 연차는 쌓였는데 필요한 업무 경력은 없고 고인물이 되어서 이직하기 힘든 상황이 될 테니.
마침 오늘 다른 팀원 두 명은 휴가여서 출근한 팀원이 나밖에 없었다. 이제 곧 본부장님께 이 소식을 말하러 들어갈 건데 그전에 나한테 먼저 얘기하신 거라고 했다. 새로운 팀장을 뽑을지 아니면 그 자리를 본부장님이 겸임하실지 나와 동료 중 누군가에게 팀장 대행을 시킬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일이 진행될지는 모르겠다.
본부장님이 직접 업무를 디렉팅 하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본부장님은 공평무사 평등주의자라 공무원 조직 같은데서는 딱일지 몰라도 사기업에서 자꾸 그러니까 오히려 분위기가 더 흐려진다. 지금 팀장님이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만한 부분인데 이상하게 본부장님과 일하다 보면 그런 부분들이 문제가 돼서 불만이 쌓인다. 만약 나랑 동료 중 한 명을 팀장 대행으로 앉힌다면? 그것도 불안하다. 내가 볼 땐 둘 다 팀장 할 만한 능력이 안 된다.
그렇다고 지금의 팀장 자리를 대체할 팀장을 뽑는다면 지금 팀장님과 달리 이제는 본인말을 거스르지 않을 사람 즉 본인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뽑겠지.
새로 온 팀장은 본부장님께 잘 보여야 하니 아랫사람들에게 답답한 스탠스를 취할 거고 그러면 나는 더 답답해지겠지. 4년 전에 위에 있던 상사가 이직해서 퇴사했을 때도 어떤 상사가 올지 궁금하고 걱정됐었지만 그때보다 지금이 더 걱정된다.
그나저나 난 언제 이직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