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헤어짐이 유독 서운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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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갈아입고 더 늦기 전에 팀장님한테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아까 입 밖으로 내뱉었어야 했는데 하지 못했던 말들. 카톡창에 쓰면 실수로 보내기 버튼을 눌러 보내버릴까 봐 메모장을 열고 메시지를 적어나갔다. 눈물이 후두두두두둑 침대 위로 떨어진다. 계속 훌쩍거리니 어깨가 들썩이고 화장도 안 지웠는데 화장도 같이 지워진다. 눈물이 줄줄 흐른다. 이불 위에 눈물자국이 길을 만든다.
팀장님한테 모진 소리를 들어서 운 적도 있었다. 속으로 '대체 왜 저래?'라고 생각한 적도 분명 있었지만 그래도 많은 걸 배웠다. 항상 더 많이 도와드리지 못해서, 내가 너무 못나서 미안했다. 나는 남들보다 예민해서 그런지 팀장님과 우리 팀을 둘러싼 관계성을 쓸데없이 많이 즉 과민하게 정보를 읽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정작 그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나까지도 같이 괴로워하는 타입이어서 그랬을지 모른다.
팀원으로서 팀장에게 싸가지없어 보일지라도 주 35시간 제로 일을 하고 싶다 같은 말을 턱 하니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팀장님이 솔직하고 가감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팀장님은 팀장을 부탁한다고 하고 가셨다.
솔직히 나가는 사람이야 남는 조직이 어떻게 되든 상관 안 해도 그만이다. 알아서 어떻게든 굴러갈 테니까. 그런데 이대로 본인이 나가면 분명 새로운 사람을 뽑을게 뻔하니 나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렇게 얽히면 뒤처리가 더 복잡하다. 나한테 해줄 조언은 물론이고 나와 직급이 같았던 동료도 달래야(?) 하는 등과 같은 일들이 부수적으로 주어지는데도 그걸 자처하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선 정리하고 가셨다.
이제 남은 건 나한테 달려있다. 내가 잘하면 그걸로 될 일이다. 그런 것들이 다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팀장님이 그만둔다는 얘길 들었을 땐 당연히 서운했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 좀 더 빨리 일어났구나 생각했다. 나도 얼른 정신 차리고 이직해야 하는데 팀장님 그만두시기 전에 뭘 더 물어봐야 하지 그런 생각만 했는데 마지막 날에 이렇게 서럽게 울 줄은 몰랐다.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눈물이 다 그친 줄 알았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엉엉 울고 있다. 나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무언가 물어볼 일이 있을 때, 조언을 구할 때, 가장 적절하고도 날카로운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더 이상 내 곁에 없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일들이 너무 막막하다. 어떻게든 닥치면 또 해 나가겠지만 그건 내 방식일 뿐 가장 적절하고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분명 쉽게 해결할 걸 더 꼬이게 하거나 더 어렵게 만들 뿐이지.
나이를 3n살 먹고도 아직도 이런 것들이 어렵다. 앞으로도 회사를 다니면서 여러 명의 윗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팀장님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팀장님과 나는 성별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팀장님이 퇴사했다고 해서 이렇게 미친년처럼 울었단 사실을 말하기가 참 그렇다. 괜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건 나만의 비밀로 두기로 했다.
아까 팀장님께 카톡을 보내놨는데 알림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답장이 온 것 같다. 이제 정신 차리고 답장을 보내야지. 그리고 혼자서도 잘 살아나가야지.
언젠가는 웃으면서 이런 걸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니, 오기는 올까? 지금은 모르겠다. 내가 먼저 그만두려고 했는데 왜 팀장님이 먼저 그만둬서 왜 이 사달을 내느냔 말이야.
이렇게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좋은 사람을 만나봤기 때문에 웃고 울고 할 수 있는 것이겠지. 만약 그저 그렇거나 별로인 사람을 만났다면 이런 기분은 전혀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래, 이것도 다 좋은 팀장님을 만났기 때문에 느끼는 거라고 생각하자.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냈음에 감사하자. 언젠가는 끝날 시간이었으니까. 전 직장에서처럼 회사에서 여러모로 안 좋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던 걸, 이번엔 유익하고 좋은 시간 보낸 거잖아. 그럼 된 거 아니겠어?
나도 찬찬히 내 길을 밟아서 이곳에서 빠져나와야지. 날 믿어준 팀장님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