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힘든 건 참아도 사람이 힘들게 하는 건 못 참겠다
물론 임신하는 것 자체가 절대 미안한 일이 아니다. 조직과 업무의 특성상 충돌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자면 개인이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말이야, 바로 며칠 전까지 새로운 업무를 하고 싶어 했고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던 사람이 갑자기 임신계획을 선포한다? 임신 안 해본 나도 아는 사실인데 임신하면 컨디션이 바뀌어서 아무리 건강했던 사람이라도 무리하면 안 된다. 하던 일도 줄이는 판에... 그럼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새로운 일을 맡는다고 했던 거지?
게다가 자기 딴에는 나한테 배려한답시고 만약 임신이 된다면 3개월 동안은 2시간씩 일찍 퇴근할 테니 그리 알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두 시간씩 못하는 일을 누가 대신하려면 사람 뽑아야 되지 않겠냐고도 했다.
일단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법대로 3개월 동안 2시간 일찍 퇴근하는 거,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을 추가로 채용할지 말지, 업무 분배는 어떻게 할지는 내가 결정할 일이라고요. 정직원 아니라고 알바라고 해서 그냥 쉽게 뽑는 줄 아나? 신입사원 뽑을 때 비용 절감한다고 배너공고도 안 올렸는데 알바 뽑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왜 본인이 팀장인 거 마냥 말하고 있지? 나에겐 미리 사람 뽑을 시간을 준다는 듯 선심 쓰듯이 말한다고 느껴졌다.
어쨌든 사람을 추가로 뽑는 문제는 위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니 상사에게 말은 해뒀다만... 자기 입맛에 맞게 회사를 나왔다 안 나왔다 하면서 사람까지 알아서 뽑아서 메꾸라고 솔루션까지 주는 너. 내가 '그래... 많이 힘들죠?'라며 공감해 주니 내가 우스워보이디?
어찌 됐던 직원이 임신하는 문제에 대해서 내가 조금이라도 잘못 말했다가는 피를 본다. 그래서 왈가왈부하기가 예민한 문제라 일부러 언급을 못할 걸 알고 아주 당당하게 자기 입장에서만 입을 씨부리는 것이다.
본부장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럼 그 기간만이라도 아르바이트생을 쓰라고 하신다. 업무 경력이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과연 우리 입맛에 맞게, 딱 월말 월초에만 끊어서 일하고 그런 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심지어 일정도 정해져 있지도 않은데.
그러려면 결국 상주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본인이 봐도 아르바이트생은 도움이 안 될 거 같으니 차라리 업무 경력이 있는 경력직을 뽑아야 팀원들한테 피해가 안 갈 거 같다고 의견을 낸다. 모성보호법이고 자시고 없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최소한 미안한 기색이라도 보였으면.
팀 사정은 생각도 안 하고 자기 마음대로 휴가는 다 쓰면서 월급은 월급대로 다 받아가고 자기 한 명을 위해서 사람을 채용해 달라고 너무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그녀가 어이없었다. 하지만 '야, 너 그거 너무 이기적인 거 아냐?'라고 말할 수 없는 내가 싫었다. 여기서 코멘트 잘못했다가는 감옥이나 벌금 엔딩일 테니.
일이 힘든 건 짜증나지만 그래도 할 만하다. 그런데 그 일이란 것은 결국 사람이 한다.
사람이 힘들게 하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왜 그렇게 자기 생각만 할까?
내가 임신을 해보지 않았으니 제도를 잘 모를 거라 생각해서 친절히 알려주겠다는 의도였겠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왜냐? 그간의 행동이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몇 개월간 무급휴직이라도 가라고 해야겠다. 정작 중요할 때 자리를 비우고 찔끔찔끔 출근하는 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본인도 마음이 편해야 임신이 잘되겠지. 안 그래?
본인 때문에 사람까지 뽑는 걸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회사 내의 그 어느 누구도 이 임신이라는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그 점을 악용하는 거 같다는 느낌이랄까. 이럴 거면 자기가 먼저 차라리 휴직을 하겠다고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이 정도로 휴가 스케줄이 플렉시블 하다면? 마음대로 휴가는 가면서 새로운 업무도 놓치고 싶지 않고 월급은 월급대로 다 받고 싶은 거지? 사람이 양심이 좀 있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