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그만둔다고 말하는 순간, 나의 위치는 애매모호해진다
그러면서 최근에 업무 때문에 경찰서에 참고인 조사 갔다 온 이야기를 하는데 막 울먹거리게 되는 거다.
제가 비록 참고인 조사지만 경찰서도 다녀왔다고요. 제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사실관계만 말하면 되는 거라는 거 알지만 그래도 경찰서 조사실이라는 그 공간이 주는 압박감과 무게도 무서웠어요.
그런데다 저는 그날 경찰서 조사받고 나와서 겨우 긴장 풀리고 있는 상태였어요. 그대로는 사무실에 들어가기 싫어서 근처 카페에서 잠깐 쉬고 있었죠. 그런데 아까 조사중일 때부터 임신한 동갑 팀원한테 자꾸 전화가 오더라고요. 그때는 조사실에서 안 나와서 전화를 못 받고 끊어졌었는데...
분명 제가 사무실 나가기 전에 경찰서 조사받으러 간다고 까지 말하고 나왔는데 그러면 전화 못 받는 상황이라는 거 알고 있는 거잖아요? 그럼 전화 연결이 안 되면 경찰 조사받는 중이라 전화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상식이잖아요? 그런데 계속 전화질을 했다고요. 이 X이. ('이 X이'는 속으로만 했다)
그런데 본인이 하혈해서 병원 가봐야겠다고 그 얘길 하려고 끝까지, 받지도 못하는 전화를 한 거였다고요. 아니, 전화를 안 받으면 문자 남겨놓고 가면 되지. 그동안 봐온 세월이 있는데 내가 전화 안 하고 갔다고 잡아먹니? 임신초기 3개월에는 두 시간씩 일찍 퇴근해야 된다는 건 당당하게 말하면서 대체 이런 건 왜 또 그러는 거야? 도대체 십몇년이나 회사를 다니고도 그런 거 하나 판단 못해가지고 사람 빡치게 하는지.
그래서 울먹거렸더니 팀장님이 혼자서 많이 힘들었구나... 하셨다.
보아하니 윗 상사도 도움이 안 됐을 거라며. 이분이 성정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전 팀장님처럼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다만 자기 방식대로 도움을 주는 거지. 내가 팀장이 됐으니 잔뜩 팀장이란 뭘 해야 하는가에 대한 책을 디립따 사서 넘겨주고 내가 아직도 사원 때처럼 명함을 칠렐레 팔렐레 들고 다니니 명함지갑을 사주시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래도 내가 팀원들 욕하러(?) 아니 하소연하러 가면 내 편 들어줬으니 그건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 나는 너무 화나므로 기말감사 끝나면 바로 1월 초에 이야기하고 회사 사정 봐주는 것처럼 관대한 것처럼 해서 3월 중순이나 3월 말까지 마무리하고 나올 계획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팀장님 왈, 회사한테 그렇게 시간 많이 줄 필요 없어.
그만둔다고 말하는 순간, 너의 입지는 줄어들 거라고. 회사 사람들도 '어, 얘 곧 그만둘 사람인데 어디까지 업무를 공유해야 하지? 이거 인볼브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래서 곤란하다고. 퇴사한다고 말하고 오래 머물게 되면 서로 곤란하니 그 시간은 가능하면 줄이는 게 좋다는 충고를 해주셨다.
나도 이미 여러 번의 퇴사경험을 통해 그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팀원이었을 때의 이야기로 나는 내 일만 넘겨주고 나오면 됐었다. 지금은 팀장을 맡고 있다 보니 회사를 더 배려한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기간을 길게 잡았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구나.
그만둔다고 말하면 붙잡는 척은 하겠지만(안 할 수도 있음) 결국 나의 결심이 확고한 것을 안다면 오래 버티지 못하겠지. 3월 중순까지는 재직하고 있어야 인센티브를 받는데 괜히 퇴사라는 단어를 빨리 말한 죄로 인센티브를 받기 전에 회사의 결정에 의해 괘씸죄로 쫓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안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