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자는 나를 책망하지 않고 다독거려 주었다
팀장님의 말은 백번 옳았다. 그래서 조금 더 참고 2월 초쯤이나 얘기하기로 했다. 너 그동안 그렇게 고생했는데 인센티브는 꼭 받아야 하지 않겠니, 하면서. 그러려면 확실하게 그때까지는 재직 중이어야 하니까 최대한 늦게 말하는 게 좋을 거라고.
보통 인수인계 기간은 그러니까 퇴사한다는 말을 하고 회사를 더 다니는 시점은 여유가 있다면 한 달에서 한 달반 정도가 max가 아닐까 싶은 거지. 그 기간이 길어지면 회사를 나갈 사람에게도,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에게도 도대체 곧 퇴사할 이 사람을 업무에 어디까지 얽히라고 해야 하지? 하는 이상한 문제가 생겨버리니까.
이미 엄마와 아주 친한 친구들에게는 내 상황을 내 감정을 모든 걸 다 얘기했다.
그래도 이 모든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고 이미 겪었고 나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었던(?)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람에게 터놓은 것이기 때문에 팀장님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남달랐다.
마음의 큰 짐을 하나 덜어낸 느낌.
팀장님은 나를 책망하지도 않았고 네가 연약하다거나 잘못했다거나 좀 더 해보지 그러냐, 와 같은 말들을 하지 않았다. 그래, 네 결심이 그렇게 확고하다면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니,라며 위로해 주셨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풀렸다.
내 이야기만 하느라 상대의 이야기는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더니 팀장님이 먼저 스스로 자기는 요즘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를 꺼내셨다.
팀장님도 새로 옮겨 간 회사에서 결코 편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마 팀장님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잘할 거 같은데?’ ‘아유~ 당연히 잘하겠지’라고 한결같이 말했을 테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팀장님은 때론 그런 말들이 부담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안다. 팀장님은 정말로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자기 페이스를 찾고 잘 해낼 사람이라는 걸. 팀장님도 그 회사로 자기를 추천했던 상사가 있는데 그분이 자기가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돼서 퇴사한다고 했다가 위에서 만류해서 휴직으로 변경했는데 결국 퇴사했다고 한다. 그래서 갑자기 상사가 없어져버린 상황이라고.
그래서 밑에 직원 두 명을 새로 뽑고 이제 팀을 좀 굴리고 있다고 했다. 내년 사업계획도 12월 초까지 일단 마무리했고 (그래서 나와 만나는 약속도 12월 중순이 된 거였다) 그래도 이제는 좀 적응한 거 같다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시험도 있는데 그 와중에 시험공부도 해서 붙었다고 하신다. 와, 정말 잘됐어요 팀장님. 역시 팀장님은 해낼 줄 알았어요.
이런저런 얘길 거의 두 시간을 하고 자리를 떴다. 원래 좀만 얘기하고 오려고 했는데 마음이 답답하다 보니 말이 길어졌다.
팀장님을 만나서 소득이 있었던 건 퇴사시점 노티스 부분이었다. 퇴사를 얘기하는 시점을 굉장히 고민하다가 차라리 빨리 1월 초에 말해버리자,라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는데 전 팀장님께선 인센티브 확실하게 받으려면 최대한 늦게 말하는 게 좋다고 결사반대를 해주셨다.
그래서 퇴사 통보는 내가 생각한 시점으로부터 3주 뒤 → 한 달 반으로 다시 미뤄졌지만 그게 확실한 거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도 인센티브 트립 앞두고 말하는 거 찜찜하기도 했고. 그리고 갔다 오자마자 1월 마감인데 마감하는데 이야기하는 것도 좀 그렇고. 그러니 마감 끝나면 바로 딱 이야기보따리 풀고! 미국으로 떠나야지.
아무튼 전 팀장님께 여러모로 죄송했지만 막 다그치지 않아 주셔서 감사했다. 그리고 보이는데 또 안 보이는데에서 그동안 나를 위해 신경 써주신 것도.
심정적으로는 이번 주 포함해서 딱 3주만! 그러니까 기말감사까지만 마무리 지으면 된다. 그 뒤로 남은 1월 동안 실무 나머지 얼른 넘겨야지. 그리고 인센티브 트립 갔다 오고 1월 마감하고 나서 퇴사통보를 하면 될 것 같다. 아무튼 퇴사하기 전에 회사에 퇴사 소식 다 전하고 나면 다시 한번 뵙고 맛있는 식사도 사면서 말씀드려야지.
자, 이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연마감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