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후, CDP로 앨범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듣다
퇴사하니 마음은 편하지만 나 같은 인간은 사회에서 고립되기 십상이다. 실제로는 남은 휴가 소진 중이지만 어쨌거나 전사에 '나 마지막 출근이오'하고 메일을 보낸 이유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회사를 다닐 때는 휴가를 가도 어떻게든 연락이 오는데 이번엔 정말 무서울 정도로 신기하게 연락이 뚝 끊겼다. 회사 고작 며칠 안 나갔다고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짜증이나 어깨통증, 잔기침은 사라진 듯한데 그것 만큼의 고독감이 생긴 것 같다.
오래된 시디플레이어에 시디를 갈아 끼우고 혹시 몰라 작동되는지 눌라보니 안되네?! 이제 보내줄 때가 된 건가. 혹시 몰라 배터리를 갈아 끼워보니 작동한다. 휴우. 의자에 깔고 앉을 등산용 돗자리와 핸드폰, 씨디피, 에어팟, 신용카드만 챙겨서 집 밖으로 나온다.
이쪽은 그동안 내가 살았던 동네랑 다르게 천변이 마치 공원처럼 의자가 많아서 좋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온전히 해바라기-해바라기처럼 해를 보면서 앉아있는 것-한 번 해보자.
권순관 1집을 좋아하지만 모든 노래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서 선호도가 조금 떨어지는 노래는 건너뛰려고 했다. 그런데 이노무 씨디피가 오래돼서 그런지 skip버튼이 눌러지지 않는다. 재생만 되는 것도 감지덕지. 그래서 일단 재생버튼을 누르면 그다음엔 무슨 버튼을 누르든 간에 홀드 hold 상태가 돼서 모든 버튼이 무용지물이 된다. 하는 수 없이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강제로 들었다.
지난주에 연락해야지 하고 놓쳤던 계열사 팀장한테도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이게 참 그런 것이 회사를 다니고 있으면 그걸 구실로 연결도 되고 더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데 상황이 바뀌고 나니 애매하다. 그래서 내가 회사 사람들하고 친해지는 게 애매한 것이 나는 친해졌다고 생각하면 회사뿐만 아니라 그냥 친구가 되는 건데 상대방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것에 있었다. 나는 그거 구분을 못하겠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메시지를 보내보았다. (그녀도 나랑 같은 마음이면 좋겠지만 어떨지 모르겠구나.)
아무튼 그래서 처음부터 회사 사람하고 안 친하게 지내기로 세팅을 해 버린 거지. 단 전제조건 하나는 일 할 때 협조적으로 잘해주면 인간적으로 호감이 생긴다. 그러면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대부분은 '친해져서 -> 일을 부탁하기' 루트를 타지만 나는 '안 친하지만 일로서 일을 부탁하기 -> 여기서 호흡이 잘 맞으면 ->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게 조금 다른 점이다.
권순관 1집을 찬찬히 듣고 집으로 돌아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