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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Jun 19. 2021

25년 만의 이사 (2)

물리적인 의미의 집 vs 감정적인 의미의 집

'25년 만의 이사 (1)'(https://brunch.co.kr/@lifewanderer/20)에서 이어집니다.



     엄마는 서울시 지도를 보고 한 동네를 짚었고 그중 아무 부동산에 전화를 해서 약속을 잡았다. 새 동네는 엄마의 직장과 가까운 편이라 엄마가 점심시간에 부동산에 잠깐 들렀다. 부동산 직원들과 눈도장도 찍고 대강 동네와 물건에 대해 설명을 듣고 왔으며 주말에 집을 보러 가자고 했다. 


     토요일 아침, 차를 타고 출발하는데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보려고 했던 집 중 하나가 계약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보러 가기 전 다른 부동산에서 온 사람들이 먼저 보고는 계약을 한다고 한 모양이었다. 부동산에 가서 다른 물건을 보고 우리가 가진 돈과 기타 등을 고려했을 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것 같아 계약을 하기로 했다. 이제 대강의 이사일도 정해졌다.


     전부터 1년에 한두 번씩 대대적으로 방을 치우고는 있었지만 이제는 진짜로 짐을 정리해야 했다.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건 버리기 시작했다. 이사를 해본 것 자체가 너무 오래되었다. 열 살 때 이사 올 때는 동네 슈퍼를 돌아다니며 박스를 얻어와서 집에서 직접 짐을 포장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트럭을 따로 불러 짐을 실어 이사를 했었다. 요즘은 다 포장이사를 하고 웬만한 건 다 포장이사 업체에서 알아서 해준다고 했다. 그래서 귀중품이나 CD 같은 것들만 따로 포장하기로 했다. 내 짐이 이렇게 많았나? 방에서 물건이 끊임없이 나왔다. 이사 가는 곳은 지금 사는 곳보다 평수가 작은 곳이고 그에 따라 방 크기도 현격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짐을 많이 줄여야 했다. 


     어느새 이사일이 되었다. 직원들이 와서 각자 구역을 맡아 착착 짐을 싸고 트럭에 실었다. 가구는 많이 버리고 가기로 했다. 부모님이 신혼 때 가지고 왔던 것들도 많았고 여기에 이사 오면서 산 것들이라 최소 10년 이상 대부분은 20년 이상 사용한 오래된 가구들이었다. 나도 책상, 침대, 옷장 등 모조리 다 버리고 가기로 했다. 새 집에 가서 새로운 가구를 들이기로 했다.


      이사를 오면서 집 내부도 변화했지만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우리 '동네'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절대적인 의미의 '우리 집'은 없어졌다. 그러니까 한 집에서 25년을 살아온 나는 여태 물리적인 의미의 집만이 집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집의 위치는 얼마든 변할 수 있었고 내가, 우리 가족이 머무는 곳이라면 어디든 집이 될 수 있었다. 


     여태까지는 물리적인 의미의 집과 감정적인 의미의 집이 동일했다. 그러니까 이전에는 '집'이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를 지닌 곳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었다. 그런데 아파트 주변의 객관적인 환경으로만 보자면 단연 새로 이사 온 동네가 훨씬 깔끔하고 좋다. 전에 살던 곳은 아파트도 오래되었고 단지도 작았으며 내가 'OO동 살아요'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긴 여행을 떠나 돌아갈 집을 떠올리면 바로 예전의 우리 집을 떠올렸고 그곳과는 바로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곳에는 아직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 동생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동생 역시 '집'이라고 하면 여전히 25년을 살았던 그 동네와 주소와 그 풍경이 떠오른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세 계약이 종료되면 우리 집과 주소와 동네는 또 바뀌게 될 것이다. 이제는 한 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레 생기는 끈끈함과 마주하기는 힘들 듯하다. 


     새 동네에 이사와 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농협 마트가 근처에 있어서 장을 보기도 하고 항상 뉴스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만 봤던 큰 꽃시장에도 가 볼 수 있었다. 전에 살던 집에서는 멀어서 가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집 근처에 있는 유명한 공원에도 가보고 전에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탔지만 이제는 가까이에 있는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이곳도 전에 살던 곳과 비슷하게 뒤쪽에 한강의 지류인 천이 흐르고 산책로도 있다. 예전 동네는 달랑 건물 두 동의 작은 아파트였는데 여기는 나름 대단지를 형성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라 그런지 단지 내에 많은 주민들이 돌아다닌다. 전에 살던 곳은 오래된 아파트라 지하 주차장과 아파트가 연결되지 않았었고 1층 로비에 안전장치도 없어서 아무나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사 온 아파트는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1층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새로운 동네에 오면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전에는 동네의 가장 큰 슈퍼가 어디에 있고, 우체국은 어디에, 목욕탕은 어디에 있는지 주요 장소의 위치는 물론이고 동네의 변화와 흥망성쇠 등 모든 걸 자연스레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새로 온 동네에선 어떤 장소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알아보고 찾아봐야 한다. 이런 변화가 낯설고 약간은 귀찮다. 심지어 집에 올 때도 이 버스가 맞는지 꼭 확인하고 타야 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그랬냐는 듯 익숙해질 거고 또 이 안에서 최적의 대안을 찾아낼 것이다. 



'25년 만의 이사 (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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