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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또다시 이사

집 보러 오는 이상한 사람들 2탄 : 말도 없이 사진은 왜 찍죠?

by 세니seny

그리고 다음날. 시간은 맞춰서 왔는데 젊은 여자애 혼자서 왔다. 확실한 건 나보다는 어려 보였다. 커플이나 부부는 아니고 혼자 살 집을 찾고 있는 듯했다.


보통은 현관 쪽에 있는 방부터 보기가 좋으니까 들어오면서 그쪽부터 보면서 들어온다. 내가 방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잘 치워놓기도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방 밖에서 보고 보통 방 안에는 잘 안 들어간다. 그런데 이 여자애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말도 없이 사진을 찍는 게 아닌가! 이 미친 X이.


참고로 내가 사는 집은 잡지에 나오는 거 같이 이쁘게 꾸며놓은 집? 절대 아니다. 짐은 좀 많지만 '그래도 치우고 사네'정도의 느낌이 드는 정도의 평범하고 무난한 가구들로 꾸며진 집이다.


나는 지난번에 이미 집 보러 온 이상한 사람 1탄을 겪고 부동산 아줌마에 대한 불신과 예의는 밥 말아먹은 집 보러 오는 인간들(aka. 미래 세입자)에 인간혐오가 오려고 하는 상태라 말이 좋게 안 나갔다. 보자마자 '사진 찍으시면 안 돼요!' 하고 한마디 날렸다.


그러고 나서 화장실이랑 여기저기 보는 거 같더니 하필 부동산 아줌마한테 이때 전화가 와서 아주머니가 전화 통화를 하는 사이 혼자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려니 했는데... 보통 화장실 보라고 문을 열어놔도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보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이 X이 또 들어가서 묻지도 않고 물을 틀어본다. 게다가 나한테 현관 옆에 있는 장까지 열어달라고 했다. 나는 이 집에 처음 올 때 여기 장이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그런 건 또 어디서 보고 온 건지. 그래, 이 정돈 오케이할 수 있어.


나가기 전에도 방 안쪽까지 굳이 들어가서는 책장이 놓여 있는 쪽까지 엄청 자세하게 보는 거다. 뭔가 좀 기분이 썩 좋진 않네? 집을 보는 게 아니라 내 짐을 보는 기분. 일단 이 X은 아까 카메라를 들이민 거에서 점수가 깎였더니 그 뒤의 행동이 모두 곱게 보이지 않는다. 지난주 빌런 1에 이은 빌런 2 임? 미친 거 아니냐고요?


살고 있는 사람한테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봤을 때 쿨하게 '찍으세요'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 대부분이 아니라고 대답할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집을 둘러보고 나갔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사진을 찍으려고 했던 게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신혼부부나 커플인데 같이 살 사람이 안 와서 보여주려고 그랬나? 싶었던 거다. 그런데 그건 네가 직접 본 느낌을 전달해 주면 되는 거고요. 요즘 직방 어플만 들어가도 웬만한 아파트는 VR로 내부를 잘 볼 수 있는데 모르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가스레인지랑 에어컨은 여기 두고 가는지와 같은 개념 없는 질문을 서슴없이 한다. 그딴 걸 왜 물어봄? 아파트는 이런 거 옵션 아니라고요. 두고 갈 거면 내가 알아서 먼저 다 두고 간다고 이미 부동산에 말해놓는다고요. 어디서 아파트도 못 살아본 사람들만 오는 건가. 하 진짜...


그래, 여기가 고오급 아파트도 아니고 그렇다고 혼자서 전세를 얻기엔 좀 무리가 있는 금액이다. 금액적으로만 본다면 두 명 분의 돈을 모은 예비부부나 신혼부부 정도가 적당할 수 있겠지. 혼자 비비기엔 거시기한 금액이지만 둘이 대출받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 그래도 비벼볼 만한 금액이니까.


뭐가 됐든 누구든 계약만 해, 제발. 집 보여줄 때마다 집에 있어야 하고 집 치우는 것도 귀찮다고요. 그나마 평일은 낫지만 토요일은 나도 일정이 있고 집을 비울 일이 많아서 싫다고요. 도대체 언제까지 집을 보여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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