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또다시 이사

이사 전날 : 옆집 할아버지께 인사드리기 (+경비실)

by 세니seny

내가 사는 곳은 복도식 아파트라 양쪽으로 옆집이 있다. 그중에 오른편 집은 마주친 적이 없어서 누가 사는지 모르고 왼편은 그 집에 사시는 할아버지와 몇 번 마주치면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래서 크게 교류는 없었지만 이사 간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생각난 김에 미리 사다둔 비타 500 한 상자를 드리려고 나가봤다. 옆집 할아버지는 집에 계실 땐 날이 추운 한 겨울 빼고 즉 봄에서 가을 사이에는 현관문을 살짝 열어 놓으신다. 복도 제일 끝 집이라 오가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건지 적적해서 그러 신건진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현관문이 살짝 열려있으면 집에 계신다는 뜻이다.


마침 짐 실으러 나가기 전에 보니까 옆집 현관문이 살짝 열려있어서 계신 김에 드려야겠다 싶었다. 내일 아침엔 이사하느라 정신없으면 못 챙길 수도 있고 또 그때는 집에 안 계실 수도 있으니까. 음료수 박스를 들고 노크를 똑똑한 뒤 '계세요~ 할아버지~ 옆집이에요' 했는데 안에서 소리가 안 나는 거다.


현관문이 열려있다고 해도 내가 함부로 열고 들어갈 수는 없지. 그래서 안 계신 건가? 아님 잠깐 집 앞에 나가신 건가? 해서 이따 드려야지 하고 다시 차에다 짐을 나르고 있는데 그렇게 집 앞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마침 외출하려는 옆집 할아버지를 마주쳤다.


잠깐만요, 할아버지!
저 옆집인데요,
내일 이사 가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음료수 한 박스를 드렸더니 뭐 이런 걸 주냐면서 얘기도 많이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세상이 아무리 삭막해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정도는 알고 지내는 게 좋을 거 같아 자기가 먼저 인사를 하고 말도 붙였는데 혹시 기분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자기처럼 교회 다니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 없다고 하시면서 갑분(?) 자식자랑으로 넘어가셨다. 나만한 자식들이 있다면서 세 명 다 공무원인데 이 근처에 살고 한 명은 서울의료원인가? 하여간 의사라면서 병원에 근무한다고 자랑을 ㅎㅎ 네네, 얼마나 자랑스러우시겠어요. 안 그래도 자식들이 자주 찾아오는 거 같더라고요. 옆집에 사람들이 찾아오면 복도를 통해 그 소리가 옆집인 저한테도 들리니까요.


나보고 어디 멀리 이사 가냐고 물으셔서 '예, 서울인데 다른 동네로 가요'라고 했는데 못 알아들으시는 거다. 그래서 몇 번을 다시 얘기했다. 알고 보니 귀가 잘 안 들리셔서 내가 아까 현관문을 두들겼을 때도 집에 계셨을 텐데 소리를 못 들으신 거였다.


아무튼 어디 외출하는 길이신 거 같은데 제가 붙잡아서 죄송하다고 얼른 가시라고 그랬다. 내가 짐 나른다고 계속 책 같은 거 들고 다니니까 어려 보여서(?) 그랬는지 공부 열심히 하라고, 잘 지내라고 하고 떠나셨다. 미션 한 가지 클리어.


덧).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지하주차장이 없는 구축아파트라 이중주차는 기본이기 때문에 차를 밀어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웬만하면 내가 하겠는데 요새는 대체로 큰 차가 많고 그것도 한 대 밀고 끝나는 게 아니라 두세 대를 밀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하는 수 없이 경비 아저씨(실은 거의 할아버지에 가깝다)들의 도움을 받았다. 경비실은 교대근무라 인원이 계속 바뀌지만 그래도 어느 분께 부탁드려도 항상 친절하게 잘해주셨던 기억이 나서 음료라도 드리기로 했다. 경비 아저씨 두 분 중 그나마 안면이 있는 경비 아저씨가 계실 때 드렸다.


그리고 이사 당일날. 베란다에 깔아 두었던 부피가 상당한 깔개(?)를 가져가려다가 갑자기 버려야 해서 곤란했는데 '원래는 폐기물로 잡혀서 돈을 내야 하는데...' 하시더니 저쪽에 두고 가면 알아서 처리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박카스의 힘이겠지? ㅎㅎ) 옆집 할아버지처럼 어디 멀리로 이사 가냐고 물으시더니 잘 지내라고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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