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전날 : 4년간의 독립생활 소감 그리고 마지막 일탈
이사 전날이라 그런지 베란다에 득시글대던 개미들도 어쩐 일인지 안 보이는 느낌. 다만 밤에 열 시 넘어서 쓰레기 버리고 들어오는데 띠리리릭 하면서 현관문을 여니까 어두운 복도로 집안의 밝은 빛이 확 비치는데 그 사이로 바바바바바... 바선생이... 후르르륵 지나가는 게 보이는 거다...! 식겁 식겁 대식겁. 꺄아아아ㅏㅏㅏㅏ 하면서 집안으로 들어올까 봐 문을 황급히 닫았는데 괜찮겠지? 그래도 하룻밤만 참으면 되니까 괜찮겠지? 마지막날에 이러기 있기 없기?!
2년간 살면서 여러 가지를 이루겠다고(?) 했던 거 같은데 그중에 실제로 이룬 건 퇴사 밖에 없네. 이것도 이뤘다기보단 가장 쉽게 실행할 수 있는 거여서 했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거니까. 다만 연애라든가 결혼이라든가 다른 사람과 얽히는 건 해보지 못하고 다시 엄빠와 함께 하는 삶으로 돌아간다.
참, 어젯밤엔 마지막 일탈을 했다.
일요일인 어제는 근무를 했다. 매주 월요일은 박물관이 휴관하니까 나에게는 일요일이 월~금 출근하는 사람들의 금요일과 같다. 게다가 내가 사랑하는 구) 홍김동전 현) 도라이버가 매주 일요일 오후 5시에 넷플릭스에 업로드된다. 업로드될 때는 근무 중이라 바로 못 보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 먹으면서 본다.
이사 가기 전에 냉파를 해야 됐는데 언젠가 사놓고 안 먹은 칠리새우 밀키트와 모둠튀김세트가 있었다. 칠리새우 밀키트 후기를 보니 양은 부족하지만 소스가 넉넉해서 떡이나 튀김 등을 추가로 넣어서 먹으면 맛있다는 후기가 많았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고 요리를 했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마셨던 화이트와인 한두 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에선 대놓고 와인 나발을 불 순 없으니 이것도 이사 가기 전에 정리하고 가야 했다. 평상시 같으면 2번 마실 분량이 남아 있었지만 다 먹고 치워야 해서 와인잔에 꼴꼴꼴 따라 칠리새우를 안주삼아 신나게 마셨다. 그러다 안주가 남기도 했고 뭔가 취기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추가로 캔맥주도 하나 땄다. 그렇게 시원하게 배불리 먹고 나니 졸려. 설거지는 내일 하기로 하고 설거지통에 담가놓기만 하고 이를 닦은 뒤 침대에 누웠는데...
핸드폰 하다가 어느 순간 눈을 떴더니 핸드폰은 저 멀리, 나는 침대에 이불도 안 덮고 대자로 뻗어서 누워있었다. 시간을 보니 핸드폰을 만지던 때로부터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게 나의 일탈이라면 일탈이다. 밖에서 술 먹고 뻗으면 위험하지만 집에서는 안 위험합니다. 이런 걸 아니까 밖에서는 자제하고 잘 안 먹는 거지만. 이제 부모님이랑 살면 이런 것도 못하겠지.
지난번 2년은 부모님 명의로 된 집에서 산 거였기 때문에 독립했다는 느낌이 조금 덜 들었다. 그래도 이번엔 내가 직접 부동산에 임차인으로 사인도 하고 전세권 설정도 했다. 임대차 계약을 마무리하기 위해 집도 내놓고 집도 보여주고 결국 전세금 빨리 안 돌려줘서 내용증명 보내네 마네 하다가 해결돼서 그래도 이사를 가게 된, 혼자서 전세 한 사이클의 삶을 지냈다.
이런 일련의 것들을 경험하면서 빨리 집을 사야겠다고 다짐했건만 7월부터 DSR 대출한도고 뭐고 다 줄어든다는데 지금 신분도 계약직이라 대출을 알아볼 수도 없는 상황.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지만 아무리 작아도 내 집을 사야겠다는 의지를 생기게 해 준 경험이기도 했다.
4년간 살림이랍시고 설거지, 빨래, 청소 등의 부수업무가 생겼고 처음엔 참 적응 안 됐지만 그래도 어찌어찌해 왔다. 이제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 집안일에선 당분간 해방이다. 야호! 그 시간을 앞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간으로, 소중하게 사용해야지.
4년간의 독립생활, 당분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