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이라는 위장막: 거래소, 검은 돈의 출입구가 되다

실물 없이 외환을 움직이는 법

by LIFOJ

1. 수출은 있었는데, 상품은 없었다

한 건강식품 제조업체가 외국 바이어와 수출 계약을 맺는다.
계약서도 있고, 인보이스도 있다. 수출신고까지 정상적으로 이뤄진다.
외화도 들어온다. 모두 ‘합법적인’ 흐름이다.

그런데 정작 물건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와 유사한 사례를 반복해서 봐왔다.
‘수출은 했는데, 창고에서 단 한 박스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무역들.
서류는 있고, 돈은 오가는데, 실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무역은 대개 ‘페이퍼 무역’, 혹은 ‘명목 수출’이라 불린다.
하지만 금융 쪽에서는 자금이동 목적의 수출입, 혹은 외환 송금용 위장 무역이라 부른다.


2. 돈을 위한 무역, 무역을 위한 돈

이 구조의 목적은 명확하다.
외화를 들여오고, 다시 외화를 빼내기 위해 '수출입이라는 껍데기'가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 법인이 홍콩 바이어와 수출계약을 체결하고,
바이어는 외화를 송금한다.
이 돈은 물품 구매 대금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한국 측 자금이 홍콩에 있는 제3자에게 ‘돌아가는 구조’다.

이런 거래는 대부분 자기 계열사 간 거래, 실물 없는 가상 주문, 선결제 후 미배송, 환불 조건부 수출계약 형태로 이뤄진다.
그리고 그 자금은 결국 거래소를 통해 다시 국외로 빠져나간다.


3. 거래소와 연결되는 자금 흐름

실제 사례 하나를 보자.
한국 A사는 ‘건강식품 수출’을 명분으로 30만 달러를 받는다.
하지만 물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외화는 바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로 입금되어, 비트코인이나 USDT를 구매하는 데 쓰인다.

이후 그 암호화폐는 해외 거래소로 이동한다.
그리고 현지에서 다시 현금화된다.

이렇게 해서 돈은 정상적인 수출을 통해 들어왔고,
투자 명목으로 나간 것처럼 위장되어 사라진다.

이 과정에서 수출입을 관리하는 정부기관, 외환을 통제하는 은행, 자금세탁을 감시하는 금융당국 모두가 구조적으로 놓친다.
왜냐하면 각 기관은 ‘자기 업무 안에서는 문제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4. 실물 없이 외환을 움직이는 법

이 위장 수출입의 핵심은 ‘정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류는 완벽하게 준비된다.
계약서, 인보이스, 포장명세서, 세관 신고서류까지 빈틈이 없다.

때로는 실제 제품 일부만 보내고, 나머지는 보내지 않거나, 다른 물건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혹은 창고에 잠깐 들어왔다가 나간 것처럼 문서만 남기기도 한다.

은행은 ‘수출 실적이 있고 외화가 들어왔으니’ 문제 없다고 판단한다.
세관은 ‘신고가 정상이고, 미반출신고가 없으니’ 통과시킨다.
그렇게 외화는 실물 없이 들어오고,
암호화폐를 통해 실물 없이 나가버린다.


5. 이 구조가 반복될 수 있는 이유

이 구조가 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무역과 자금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외환 시스템은 ‘실제 거래’를 추적하지 않는다.
‘서류가 있으면 실거래로 본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무역은 ‘실거래를 가장한 자금 흐름’이 너무나 쉽게 만들어진다.

거래소의 자유로운 입출금 구조도 여기에 한몫한다.
암호화폐는 신고 없이도 자금 이전이 가능하다.
그리고 어느 국가도 그것을 완벽히 통제하지 못한다.


6. 국가 시스템이 뚫린다는 것

이 구조는 단순히 ‘탈세’나 ‘자금세탁’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시스템이 뚫리는 지점이다.

수출입 통계는 왜곡되고,
외환 유입은 가짜 수치로 부풀려진다.
국내에 들어온 외화는 다시 암호화폐를 통해 나가고,
국가는 어디로 자금이 흘렀는지 알 수 없다.

무역은 존재하지만, 경제는 남지 않는다.
이런 구조가 누적되면,
국가가 가진 ‘경제 정보의 신뢰도’ 자체가 무너진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도 확인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마무리 질문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수출입 데이터’.
그 숫자 안에, 얼마나 많은 ‘상품 없는 무역’이 포함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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