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연습 일기 9

by winter piano studio

연습실의 공기는 건조하다. 겨울이어서 더 건조할까. 귀 마저 메말라버리는 기분이 든다. 바짝 마른 손에 보습 크림 조금 발라서 윤기를 더해보지만, 여전히 나뭇가지보다 더 버석하다. 이 악기도 이 공기를 느끼는 걸까, 건반의 액션이 덜그럭거린다. 음정도 조금 떨어져서 조율을 해야겠는데 아주 춥고 더울 때는 되도록 하지 않는 편이 장기적으론 나을 것이다. 오랜 시간 피아노 앞에 앉아있다 보면 직접 조율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지만, 악기의 수명을 위해선 가만히 두겠다. 이럴 때면 현악기 연주자들이 참 부럽다. 4개의 현으로만 모든 음을 낼 수 있다니. 피아노는 88개의 건반에 줄이 최저음부는 아주 두꺼운 현 1개부터 중음부부터는 한 개의 음에 3개의 현이 매여져 있으니.. 비 전문가인 내가 손을 대다간 더 큰돈이 들어갈 것이다. 얌전히 이 계절을 지나갈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 조율선생님과 약속을 잡아야겠다.

날씨도 흐리고 미세먼지도 가득한 하늘인데, 악기마저 먼지가 낀 것 같은 소리와 떨어진 피치로 오늘 하루 연습은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엎드려서 이 우울 감을 그대로 느끼고 있자니 청승이라서 예술로 승화시켜 봐야겠다. 물론 허상이다. 우울한 기분을 올려주려면 춤곡이 좋겠고, 그래도 우울하니 단조가 좋겠다. 쇼팽의 왈츠 op.64 no.2를 편다.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이라지만, 나의 구원자이자 그리고 나를 피아노의 소굴로 밀어 넣은 장본인이다. 쇼팽이 없었더라면 피아노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일면식도 없고 무덤 속에 있는 위인께 이런 말씀을 올리기엔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현생을 살고 있자면 악기를 한다는 것은 생존에는 필요 없는 일이나, 나의 생존을 위태롭게 한다.

쇼팽 op.64 no.2의 처음 도입부


다시 악보를 본다. 큰 구성은 3가지 파트로 나눠지며 그중 3번째 파트인 렌토 부분을 먼저 연습을 하겠다. 가장 좋아한다.

애정의 렌토

C# 마이너에서 Db메이저로 바뀌는 렌토. 피아노에서 보자면 C#과 Db는 이명동음으로 같은 소리이나 이름만 다를 뿐인데 악보상으론 샾이 4개에서 플렛이 5개로 바뀌었다는 지각대변동처럼 느껴진다. 오랜 시간 연주해도 이렇게 조표가 크게 달라질 때는 순간 헛갈려서 연습하면서 그냥 소리로 외운다. (참고로 상대음감이다. 슬프다.) 악보를 빨리 안 보는 편이 편하다. 슬픔의 끝에서 울음을 닦고 진정하는 렌토파트. 그러나 곧 다시 마이너 단조로 돌입하고 소용돌이 속에서 끝난다. 우울한 기분에 아주 적절한 곡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이나 지금처럼 여전히 사랑하는 프랑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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