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자생력
막상 그런 과거 스토리를 알게 되니깐, 정동진이 스타로 등장했다던 그 장면이 너무 궁금해서 안 볼 수가 없었다. 아직 드라마 시청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아니지만, 그 배경만이라도 잠깐 보고 싶어서 그 장면만 한번 찾아봤다. ‘모래시계’ 드라마에 동진이가 딱 한번 나온다고 해서 그 장면을 봤더니, 예전의 그 시절 모습으로 보이는 정동진이 실제로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마을이 정동진으로 등장하지 않고 내용상 다른 지역으로 나오는 것 같았는데, 왜 굳이 거기서 직접 촬영을 하지 않고 정동진을 배경으로 그 장면을 찍었는지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해당 부분을 직접 보고 나니깐 그 궁금증이 싹 사라지면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바로, 정동진이 고비를 넘기고 회생하여 완전히 스타급으로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그 이유와 별반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동진이 다시 살아난 이유가 혹시나, ‘누군가 동진이를 어여삐 여겨서 살려준 건 아닐까?’라는 그런 은연중의 추리 같은 추정을 내심하고 있었나 보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마을에 숨겨진 워낙 작은 동네라서 발견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엄청나게 히트 친 인기 드라마에 등장한 걸 보면 어쩌면 사전적인 기획이나 의도 중 하나로서 그런 구원의 손길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다 쓰러져가는 그 작은 마을이 너무 아까워서... 힘없이 초라해진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누군가 선의의 도움을 줬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그 배경을 모르는 나로서는 실제 팩트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막상 드라마에 등장하는 정동진의 모습을 보아하니 분명하게 느껴지던 것이 하나 있었다.
드라마의 앞뒤 내용 전개는 전혀 모른 채 해당 장면만 봐도 그런 느낌이 확 와닿았다. 어떤 지원 여부와 무관하게 정동진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도 다시 그렇게 살아날만한 매력적인 요소가 다분했고, 그렇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자생력’의 힘을 충분히 갖춘 곳이었다.
지금처럼 인공적인 플랫폼 형태들이 바다와 기차역을 구분하고 있지 않아서, 정동진역의 기찻길과 바다가 직접 닿을 수 있게 확 트인 모습으로 연결되어 있는 그 장면이 무엇보다도 제일 인상적이었다. 그런 흔치 않은 구조적 특성 때문인지, 아주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와 정동진역을 연결하고 있는 중간의 기찻길과 주변의 소나무까지 모두 합체되어 꽤 멋진 하나의 풍경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지금의 정동진역처럼 무언가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듯한 모습은 아니지만, 날것 그대로의 자연적인 모습들이 서로 하나가 된 것처럼 통합된 그 형태는 매우 독특한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매력적인 부분일 수도 있겠다.
그런 자연환경적인 조건은 아마, 여기 ‘정동진’만의 특색이 아닐까 싶다. 세차게 거대한 파도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멋진 배경을 이루고 있었고, 기차역과 바다 사이의 거리 위치도 가장 가까워서 그런 장면의 구도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카메라 한 컷에 그런 매력적인 광경들이 모두 한 번에 담아지는 그런 구도 말이다. 그 드라마에서 쫓기던 여주인공 고현정이 정동진역 소나무 앞에서 경찰한테 잡혀가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주변의 그런 자연 풍광들 덕분인지, 긴박하면서도 동시에 아름답게 보여서 묘하게 매혹적인 느낌을 잘 연출해 낸다. 국내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환경적 조건과 특색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 줄거리 상 다른 지역으로 나오는 장면을, 굳이 여기서 촬영했어야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동진이 스스로 내뿜고 있는 매력과 영향력 자체가 꽤나 크게 보이는 만큼, 정동진의 이런 모습에 반해서 카메라가 자석처럼 끌려왔을 것 같은 느낌이 더욱 크게 들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불쌍한 동진이를 구해주려고 애써 찾아와 준 덕분에 수동적으로 살아난 느낌 하고는 거리가 멀었다는 거다. 정동진만의 그런 독보적인 매력은, 드라마 촬영지로서 충분히 선택받고도 남을만한 가치가 있는 자연경관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아마, 정동진의 부활을 그저 전적으로 ‘드라마틱한 행운’으로만 보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여러 다른 종류의 작품들 중에서도 ‘모래시계’라는 명작 드라마를 만난 것 자체와 많은 화면들 중에서도 긴급했던 그 명장면의 배경으로 발탁된 것 자체는 기본적으로 행운적인 요소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시기에 폐광된 다른 석탄산업 지역들도 정부에서 여러 구제책을 시도하여 사방팔방으로 도움을 주려고 했었지만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서 수확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비하면,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정동진’은 정말 기적이라고 할 만큼 특별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즉, 다른 탄광촌들은 가만히 있다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해서 쓰러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란, 1969년~1973년까지 추진한 정책과 1988년~2005년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추진한 석탄산업 구조조정 정책이다. 일반적으로는 후자의 1988년부터 시작한 정책을 말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발생한 사회구조적 변화로 석탄 수요가 감소하자, 석탄산업의 연착륙을 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예상하지 못한 수준으로 폐광신청이 접수되면서 광업으로 번성하였던 도시들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경제적인 타격을 입고 쇠퇴하였다. 고작 수년만에 대부분의 탄광을 폐광시킨 결과 탄광촌으로 부흥하던 해당 지역의 경제는 회복불가의 심각한 추락을 맞았다. 폐광지역은 30년 이상 불황이 이어졌고, 보조금 및 합법적인 도박장에 경제를 의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책 하나 때문에 그야말로 지역 경제가 순식간에 괴멸되는 모습을 본 정부는, 나름대로 다양한 경제 살리기 대책을 내놓았으나 대부분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요 탄광이 밀집한 지역들 치고 교통이 편리하거나 우수한 인력 확보가 쉬운 지역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인데, 대부분이 산악 지대에 가까운 곳에 있고 대규모 시장이 될 만한 도시도 없다. 당연히 공장을 유치하려고 해도 입지니 인력수급이니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고, 관광 진흥을 하려고 해도 역시 주요 수요처인 대도시에서 너무나 거리가 멀어 사람들이 많이 찾기 어려운 근본적인 문제를 지금까지 안고 있으며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거리가 멀고 접근성도 좋지 않으니, 관광도 공장도 쉽게 유치하기 어렵다. 지리적인 약점이 관광 진흥 등 경제 부흥에 얼마나 불리한지 추가 설명이 필요치 않을 정도다.
다른 탄광촌 도시들을 위한 여러 가지 경제 살리기 대책들로서 주로 관광 진흥이나 공장 유치를 시도했지만 대부분 교통 문제 같은 지리적인 약점이나 인력 확보가 쉽지 않아서 실패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폐광된 다른 광산업 도시들도 관광 산업을 유치하려고 많은 노력과 여러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지역들을 위해서도 홍보를 위한 사진이나 영상 등 카메라 접근이 시도되었을 법한데도, 대부분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점을 추정할 수가 있다. 물론 가장 악조건은 교통 같은 지리적인 불리함이었을 것이다. 즉, 어떤 이유이든 간에 정동진보다 교통 측면에서 접근성이 좋지는 않았거나 혹은 경관의 매력도가 높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다른 탄광촌들은 경쟁력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불리한 상황들이어서, 거의 다 지역 경제가 무너지고 도시 자체가 회복 불능의 폐허 상태로 가깝게 되어버린 것이다.
한때 잘 나가던 광산업 도시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우르르 무너진 것이 너무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하다. 정책 시도를 할 때 탄광촌 사람들의 불안감을 완화해 주는 다른 방식을 사용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도 든다. 그들이 급하게 폐광 신청을 너도 나도 서둘러서 했던 주된 이유가, 나중에 늦게 신청하면 정부 보조금조차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컸던 것 같기 때문이다.
산업 자체도 쇠퇴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정부에 대한 신뢰까지 높지 않았던 상태가 겹쳤던 건지, 아니면 정부 정책이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탄탄히 이뤄졌어야 하는데 너무 근시안적으로 급히 이루어지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의 삶이 황폐화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서 목숨을 담보로 하고 일했던 탄광촌 사람들의 이런 애환은 참 마음이 좋지 않다. 쇠퇴한 도시에 대해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이 크게 드는 만큼 오히려 역으로 거의 유일하게 잘 살아남았던 정동진은 참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아니 솔직히 그냥 살아남은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평균점을 아주 확 뛰어넘어 버려서, 완전히 톱스타 급으로 급부상한 것 아닌가.
와우. 이런 너는 그만큼 얼마나 강한 것이냐. 너의 생명력은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고. 그것도 그냥 어쩌다 살아나는 우연성의 ‘생명력’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살아내는 ‘자생력’이 무엇보다도 더욱 돋보이는 너의 내공에 감탄할 따름이다.
더구나 동진이 너는, 처음부터 스타가 목적도 아니었잖아. 아니 목적은커녕... 그런 꿈조차도 꿀 수 없을 정도로, 너는 그저 생존만이 너무 목마른 상태였잖아. 탄광촌 사람들은 생업 자체가 생존을 걸고 하는 일이라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 말지 매일 불안함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삶이었는데도, 결국은 그런 생업의 판 자체가 날아가 버렸으니 말이야. 석탄 산업 자체가 사라져 가는 바람에 전체 삶의 기본 판이 엎어지게 되었으니, 폐광과 폐역의 갈림길에 서 있던 상태에서 생존밖에 더 생각했겠어? 그런데 어떻게 무슨 스타의 꿈이고 자시고야.. 그냥 목숨만 부지해도 다행이었겠지. 다른 광산업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그런데 너는 그래도 참 다행히도, 너만의 매력과 포텐이 좀 남달랐었네? 탄광촌 도시들은 대부분 외진 곳에 있어서 교통이 많이 좋지 못한 편인데, 기차역이 바다 바로 앞에 닿는다는 점은 정말 잠재력 높은 경쟁력이었네. 그저 탄광도시일 때는 그런 점이 그리 좋은 장점이었는지 몰랐겠지만, 이렇게 다른 종류의 고비를 겪게 되니깐 엄청난 경쟁력으로 떠오르게 됐잖아.
사람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그냥 서로 비슷하게 평범한 삶을 살고 있을 때는 자신의 엄청난 경쟁력이나 숨겨져 있는 잠재력 포텐을 잘 모르다가도, 어떤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거나 상황이나 판이 변동될 때면 오히려 눈에 띄면서 엄청나게 대단해지는 사람들이 있잖아. 우리도 누구나 다 조금씩은 그런 면을 가지고 있을 거야.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숨겨져 있는 보석 같은 무한한 잠재력 같은 거 말이야. 그러니깐 우리 모두 다 언젠가는 정동진 너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어. 그렇지? 미처 발굴되지 않은 잠재력이, 아직까지는 굳이 써볼 일이 없어서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니깐 말이야.
진짜 대단한 능력이나 기질을 가지고 있는 영웅일수록 오히려 난세에 그런 걸 더 발휘되어 발견되는 듯 말이지. 그니깐 우리 모두 자신만의 인생에서는 그런 영웅이라는 생각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해. 정동진 지금 너의 모습에서도 이렇게 깨닫게 되잖아. 모든 타인들이 추종하는 세계적인 영웅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인생의 영웅은 나 자신이 될 수가 있다는 사실 말이야. 내 삶의 힘든 고비를 스스로 극복할 때마다, 나를 구해주고 살린 내 인생의 영웅은 바로 ‘나 자신’이니깐 말이지!
그런데 정동진 너가 아무리 이렇게 접근성 좋은 교통의 장점이 있었어도, 만약에 그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매력이 없었다면 모래시계 같은 드라마가 카메라를 백번 들이밀어도 너는 과연 스타가 될 수 있었을까? 아니. 그러지 못했을 거야. 그만큼 너의 독보적인 태생적 매력이 제일 크고 귀한 자산이란다. 만약에 기차역 교통의 장점이 없었거나 중간에 폐역의 위기를 맞이했더라면, 너만의 그런 최고의 매력도 그냥 묻히고 말았겠지. 결국 지리적 이점의 잠재성과 너의 아리따운 매력이 둘 다 너를 아주 잘 이끌어주고 지지해 준 거 같네. 그것도 아주 아슬아슬하게 말이야. 둘 중 하나가 사라질 뻔한 적도 계속 있었으니 말이지. 그런 위기를 겪으면서 얼마나 중간에 가슴 졸이고 애가 탔을까... 정동진 너뿐만이 아니라, 너와 함께 하던 마을 사람들도 말이야.
그런데 그거 아니? 아무리 아름다워도 말이야, 과거에 그런 아픔이나 고충을 아예 겪어보지 못한 아름다움은 오히려 향기가 나지 않는 조화에 가깝단다. 그만큼 너는 내면의 향기까지 물씬 풍기는 그런 아름다움을 가진 스타 도시야! 이런 말이 좀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내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야. 해주고 싶은 응원이야.
그니깐 과거에 힘든 시절을 좀 아프게 겪어서 문득 슬픔이 올라올 때가 있을지라도, 너무 그 슬픔과 고통에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너를 보면서 더 그럴 수 있을 거 같아...! 너도 그냥 아름답기만 했다면 참... 너 자신한테는 아픈 기억 하나 없어서 ‘구김살 하나 없는 해맑은 아이’처럼 마냥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진귀한 향기까지 가진 꽃처럼 아름다운 마을이 되었잖아? 그저 향기 없는 인형 같은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깊고 진한 아름다움이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은 ‘해맑음’이라기보다는, 세파에 시달려도 언제나 자신의 색상만큼은 잃지 않고 꿋꿋이 지켜온 단단한 도화지의 바탕색 같은 ‘맑음’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런 맑음의 깊이와 두께라고 할 수 있어.
이렇게 자신의 향기를 가진 맑은 꽃은 생화라서 생명이 있는 존재이고, 향기 없는 조화나 종이 인형은 생명이 없는 존재야. 얼핏 겉으로 보기에는 둘 다 아름다워 보여도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네. 그래서 너한테서 유독 그런 뭔가 다른 숨결처럼, 살아 숨 쉬는 듯한 생명력의 기운이 느껴졌던 거구나! ‘토닥토닥...ㅜㅜ 그동안 너무 애썼다... 우리 동진이... 정말 수고 많았다...!’
그런 힘든 세월을 견딘 덕분에, ‘생존에 허덕이던 광부’들을 위한 역에서 이제는 ‘여가를 즐기는 관광객’들을 위한 역으로 생업 판이 바뀌었구나. 그 덕분에 너도 이제는, 생존 자체를 향한 두려움에 시달리던 그런 위태로운 판에서 벗어났구나!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그 불안함으로 가득하던 생존 판에서 극적인 탈출을 했구나!ㅠ 파도의 기운이 그렇게 세차고 강해서 그랬던 건지... 그 힘겹고 아픈 세월을 치열하게 잘 버텨서, 끝까지 살아남은 영화 속 주인공의 스타처럼 극적으로 잘 극복했구나!
지금까지 잘 버텨줘서 너무 고마워.ㅠ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우리 곁에 남아서, 다른 힘든 사람들도 더 많이 살려 주렴! 내가 너 덕분에 매번 더욱 잘 살아났듯이 말이야. 그게 바로 너의 독보적인 매력이자, 너만의 특별한 에너지야. 맑고 아름답게 강한 에너지! 그런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