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1단계는 심신이 지쳐있거나 피로한 사람들 혹은 마음이 다치거나 손상된 사람들에게는 가장 먼저 필요한 단계로서, 과거에 쌓인 마음속 먼지나 찌꺼기를 비워내는 과정에 해당된다고 했다. 이렇게 ‘비우기’ 단계라서 그런지, 나 또한 정동진에서 평온한 휴식 위주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숙소와 카페에서는 정말 푹 쉬면서 멍 때리는 시간도 편하게 가질 수 있어서 좋았고, 요 며칠은 멋스러운 안개 덕분에 정동진 주변을 거닐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로 인해 깊은 사색 타임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짬을 내면, 나 자신에 대한 중간 점검처럼 스스로를 보다 더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나랑 더욱 친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무언가 좀 뿌듯해지기는 한다. 그동안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잘 챙겨주지 못했던 미안함에 대한 부채감을 다소 좀 덜어내는 기분도 들면서, 한꺼번에 이렇게라도 나를 살뜰히 보살펴주면 무언가 보상 심리도 채우는 기분이 든다.
꼭 대단하게 아주 커다란 여행이 아닐지라도 이렇게 작게나마 내가 따로 시간을 내어, 비용을 내어, 마음을 내어, 나 자신을 돌보고 챙겨준다는 것이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마치 오랫동안 미뤄왔던 마음의 빚을 중간에 조금은 갚는 기분이랄까. 평소에 사랑 표현은 많이 못할지라도 내가 이렇게 널 아끼고 있다는 것을, 나 자신이 조금은 알아줬으면 하는 샤이(shy)한 마음이랄까. 나중에 진짜로 진짜로 잘해줄 테니깐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마음을 꾹꾹 누르다가 애써 조금 표현하는 마음이랄까. 그냥 무언가 한없이 미안해지다가도 이렇게라도 할 수 있다는 게 한없이 다행인 것 같은 마음이 동시에 교차하는 지점일 때가 있다. 1단계의 비우기 여행에서는, 애틋한 나 자신과 더욱 가까워지는 시간이라서 그런지, 이런 만감들이 교차할 때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이런 소중한 시간의 1단계를 어느 정도 거치고 나면, 뭔가 모르게 신기하게도 내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기본 에너지가 다시 충전되는 느낌이 든다. 원래의 디폴트(default) 기본 에너지 상태 말이다. 그조차도 나의 에너지 충전 배터리가 거의 다 떨어져서 바닥이 나던 상태에서 떠나온 여행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럼 그때부터는 이제 2단계의 ‘채우기’ 여행으로 들어가도 된다는, 신호의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다.
1단계에서 마음의 먼지와 찌꺼기 ‘비우기’를 하니깐 그렇게 마음속 불순물이 비워지는 자리에 새살이 솟아오르듯이 나의 바닥났던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면, 원래 상태 에너지로 거의 원상복구 되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복구된 기본 에너지를 쓰면서, 대신에 더 맑은 에너지로 채워 넣는 시간으로 가려고 한다. 그동안 휴식이나 사색하던 타임은 잠시 멈추고, 더 좋은 것들을 찾아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순간들의 시간 말이다. 말 그대로, 맑음을 충전하는 해피 타임.
다만 2단계의 ‘채우기’ 과정은, 시간적 순서로 작성하지는 않을 거다.
1단계의 ‘비우기’ 과정처럼 생각의 흐름이 앞뒤로 죽 연결되는 파트도 아니고, 각각의 관광지 별로 서로 완전 다른 스토리와 테마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방문했던 시간적인 순서대로 작성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크지 않으므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접근성으로 구성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우선, 정동진에서 가장 가까운 ‘썬크루즈 공원’부터 먼저 소개할 예정이고, 그 뒤로는 정동진을 조금만 더 벗어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근처의 강릉 관광지들을 더 소개할 것이다.
2단계는 현재의 시간을 맑음으로 채워가는 해피 타임이므로, 이는 곧 ‘즐거운 힐링’ 타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방문했던 주변 관광지 별로 소개하면서 그에 대한 느낌과 감성 위주로 작성할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번 여행에서는 각 관광지 별로, 더욱 힐링되는 테마들이 있었다. 각 관광지가 상징하는 주요 테마와 컨셉 이외에도,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던 또 다른 힐링의 테마들이 매번 각각 존재했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관광지에 대한 여행 느낌을 소개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던 힐링 소재들도 자연스럽게 함께 연결되어 표현될 것 같다.
그렇게 편안한 여행 일기처럼 작성될 부분이 바로 여기 2단계의 ‘채우기’ 파트이다. 마치, 여행 다이어리처럼 말이다. 전체 에세이 내용 중에서 가장 밝은 분위기로 무겁지 않게 접할 수 있는 부분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소개되는 관광지의 스토리와 여행 얘기는 즐겁고 맑은 요인들로 구성될지라도, 또 중간중간에 떠오르는 나의 사색 타임과 느낌 부분이 곁들여지면 역시나 ‘성찰(내면 여행)’ 에세이답게 좀 더 깊이 빠져드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손이 가는 대로 느낌이 오는 대로 자연스럽게 편안한 마음으로 써보고자 한다.
비우기의 1단계 파트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더 내면의 깊이와 넓이가 의외로 확장이 많이 되어버려서 나의 내적 탐험에 갑자기 확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역시 ‘비우기’ 답게 내면 여행에 너무 심취되어 버린 건 아닌가 싶다. 2단계 여기서는 그래도 여러 관광지들로 공간이 좀 더 확장되니깐, 관광지의 실제 여행과 나의 내면 여행이 반반 정도로 섞일 것 같은 느낌이다.
시간적 순서대로 열거되는 것이 아닌 만큼, 혹시라도 그대가 나중에 정동진 근처를 여행하게 된다면 그저 원하는 대로 자유로운 순서로 주변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꼭 방문해야 하는 필수 코스로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개인적인 힐링 타임으로서 너무 좋았던 곳들이라서, 가능한 좋은 장소와 좋은 느낌들을 알고 있는 것이라도 더 많이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담는 것이니깐 말이다.
1단계처럼 마음을 회복하는 수리 과정이 아니라, 2단계는 마음을 더 맑게 채우면서 조금이라도 더 빛나게 광을 내보는 즐거운 힐링 타임이므로, 기분 좋게 출발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다음 파트로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