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검은 숲

염색하는 날의 단상

by 안명심

검은 숲



정수리 위로 소리 없이 서리 내렸다


거울 속엔 부르지 않은 계절이 먼저 와 앉아 있다.

가리고 싶은 것은 흐른 세월일까

아니면 미처 다 살아내지 못한 미련일

독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어둠을 개어 머리칼 사이사이 꼼꼼히 바른다

살갗에 닿는 차가운 약물은

지나온 시간의 얼룩을 지우려는

가장 정직한 분장이다

​서글픔이 검게 물들어 가는 동안

문득 거울 너머의 눈동자를 본다

희끗하게 새어 나온 저 가닥들은

사실, 모진 바람에도 뿌리 뽑히지 않고

용케 견뎌낸 훈장이다.


검은빛으로 덮어버린 건 노화가 아니라

다시 한번 뜨거운 계절을 시작하려는

기특한 안간힘일 수도.










詩작 노트

'염색'이라는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이 불가피한 변화에 대한 서글픔과 동시에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담았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는 풍경이 아닐까

특히 거울 앞에서 발견하는 희끗한 머리칼은 시간의 흐름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징표다

단순히 외모의 변화를 넘어,
지나온 삶에 대한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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