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하는 날의 단상
정수리 위로 소리 없이 서리가 내렸다
거울 속엔 부르지 않은 계절이 먼저 와 앉아 있다.
가리고 싶은 것은 흐른 세월일까
아니면 미처 다 살아내지 못한 미련일까
독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어둠을 개어 머리칼 사이사이 꼼꼼히 바른다
살갗에 닿는 차가운 약물은
지나온 시간의 얼룩을 지우려는
가장 정직한 분장이다
서글픔이 검게 물들어 가는 동안
문득 거울 너머의 눈동자를 본다
희끗하게 새어 나온 저 가닥들은
사실, 모진 바람에도 뿌리 뽑히지 않고
용케 견뎌낸 훈장이다.
검은빛으로 덮어버린 건 노화가 아니라
다시 한번 뜨거운 계절을 시작하려는
기특한 안간힘일 수도.
'염색'이라는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이 불가피한 변화에 대한 서글픔과 동시에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담았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는 풍경이 아닐까
특히 거울 앞에서 발견하는 희끗한 머리칼은 시간의 흐름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징표다
단순히 외모의 변화를 넘어,
지나온 삶에 대한 성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