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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아레아 Mar 29. 2021

우리의 계절.

slow, slow.


 나름은 길게 일했던 회사를 관두고 갈피를 잃어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나는 출근 시간 맞춰 편의점에 앉아 사람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우유를 마시며 모두가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걸 보면서 내가 잘못 살아온 것 같은 기분과 실패한 인생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초라한 기분이 들었다.


제법 여러 날 아침 출근길 편의점을 반복해서 보냈었는데 결국 마지막으로 아침 편의점에서 멍 때렸던 날.

나는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맥주 한 캔을 원샷으로 마시고 구깃구깃 한 캔을 쓰레기통에 ‘깡’ 소리 나게 던졌던 기억이 난다.


9시가 되어가니 출근 전쟁에서 지각 전쟁으로 변하고 있었고 편의점 밖은 찐득한 여름이 느껴졌다.


같은  방향이라는 배열에서 나만 낙오된 느낌은 불안했고 그러면서 내가 원하는 미래는 도무지 뭔지 모르겠는 기분였다. 하던 일에선 찾아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직을 하기엔 절호의 커리어였지만 그림에서는 늦은 나이와 시작에 대한 막막함과 용기가 필요했다.


어째야 좋을지를 모르겠어서 고개를 들어 푸르른 계절을 올려다보았다.

속도 모르고 계절이 아주 푸르렀다.

그걸 보고 있자니 고개 숙였던 내 마음이 일렁거렸다.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을 등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각자 속도도 다 다른 거지 모두와 같을 필요가 있을까!

마음 한편에 해보고 싶던 게 있다면 그거만으로도 충분해 기죽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어느 초여름 그 날이 인생의 마지막 용기를 내보자고 다짐했던 날이었다.


사람들과 다른 속도로 살아가게 돼보니 나는 아주 느린 사람이었고 계절마다의 변화와 그 계절을 수놓는 꽃과 식물의 관찰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조바심을 내려두니 나 다운 게 보였고 그 덕에 느리지만 차곡차곡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계절과 사람, 이 둘은 서로 참 닮아서.



어떤 이의 계절은 벚꽃의 봄처럼 따뜻하며 어떤 이의 계절은 해바라기의 여름처럼 화창하다.

어떤 이의 계절은 코스모스의 가을처럼 청순하고 어떤 이의 계절은 동백의 겨울처럼 우아하더라.

 (지극히 주관적 단순 비유)


저마다의 모습으로 자신만의 계절은 아름다워.

그러니 모두와 사는 계절이 같지 않아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되고, 같은 시간으로 꽃 피우지 않았다고 해서 불안할 필요도 없었다. 편의점 안 출근길을 지켜보며 불안에 떨던 나에게도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푸르를 “나의 계절”이 올 테니 말이다.

나의 속도로 꽃이 피고 지고 다시 꽃 피울 준비를 한참 하고 있는 중일 테니 말이다!

누군가도 나처럼 불안하다고 느껴진다거나, 꽃 피울 차례를 기다리느라 지친다면 “느려도 괜찮다"라고 꼭 이야기를 건네보고 싶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자기만의 속도대로 잘해나가고 있다고. 계절은 누구에게나 돌아온다고. 이 재주 없는 글이지만, 걱정 말고 오늘 이 계절을 잠시 올려다보았으면.

Enjoy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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