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름 같은 삶에 대하여.
집 밖을 나서면 지난겨울들과 마주친다. 겨울은, 기다렸다는 듯 매섭게 기억을 들쑤시고는 기어이 시간을 초월하는 감각들을 안겨다 준다.
못 이기는 척 그 겨울들로 다시 돌아가, 너도 그랬을까 하는 의문을 왼편 어딘가에 떠올려두고 내 할 일을 해내려 발걸음을 옮겼다. 그 어쩔 수 없는 무게감에 결코 허덕거리는 것은 아니라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숨을 쉬어냈다. 그렇게 내버려 둘 수밖에.
지금 네 삶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앞으로 달라질 것도, 또 너무 멈춰있을 것들도 없을 거라고. 그렇게 위로할 수밖에.
언젠가 대여섯이 모인 술자리에서.
테이블 위에 쥐어지지 않은 술잔들처럼 동공이 텅 비어있는 꼴들을 봤지. 그러다 추잡한 행복에 겨워 우스워 실실 웃었지. 누구에게도 관심도 없다는 듯 저마다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눈동자 속을 헤집으려 해 봤자 무엇을 얻을 수 있었겠냐만은. 그래도, (한때 주장되었던 바와 같이) 그 거름 같은 삶에 대해 떠올리고는 그냥 내리 깔린 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기어코 시선과 귓가를 들추어 속에 있는 것들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려 했다. 하지만 답답하게도...
어느 겨울.
길모퉁이에 쌓여 있는 눈 덮인 폐지더미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 저 의미 있는 쓰레기 더미의 주인은 누구일까. 불현듯 허리 굽은 노파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노쇠함과 고단함을 한껏 짊어진 굽은 등허리. 응당 세월이라 일컬어야만 하는 노파의 삶의 무게가 과연 저 폐지더미 보다 의미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의심했다. 아무개들의 삶을 최소한 일주일은 거뜬히 책임졌을 그 폐지들의 원형은, 이제 다시 누군가의 하루치를 책임질 쓰레기더미가 되어 한겨울 밤의 눈을 노파 대신 짊어졌을 터였다.
노파의 삶.
그는 과연 거름과 같은 삶을 살았을까? 아니, 질문을 다시 해야 한다. 과연 그 노파의 세월 속에서 누군가는 그녀의 거름이 되어줬을까? 만일 그렇다면, 뿌려진 거름의 양분을 빨아먹고 자라난 노파의 열매는 왜 기형의 모습이 되어 그 허리를 굽게 만들었을까.
거름은, (적당한 파종 시기를 앞두고 한 달쯤이나 전에 미리 뿌려두는 게 좋다고 하던데.) 그네들이 얻고자 하는 열매가 무엇인지 당최 알 수 없다. 지금도 모르는 채로, 앞으로도 모를 날만을 기다린다. 한 계절의 적당한 때에 그저 뿌려졌을 테다. 파종의 때를 앞서 기다리며 새벽의 한기와 조각볕을 얌전히 머금었을 테다. 그때쯤 나라면 묻고 싶었을 테다. 너희들이 꿈꾸는 그 의미 있는 결과는 무엇이냐고. 그 의미는 어떤 것이냐고. 어떤 단어들로 엮어 답할 수 있느냐고. 하지만 주제넘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대화는 영 꺼림칙한 일이기에, 나조차 대뜸 그렇게 할 수는 없었을 테지.
"거름 같은 삶도 나쁘지 않아."
그때의 그 잘난 사상에 대해서, 돌이켜 보면 콧방귀를 뀌며 비웃음 서린 눈으로 답하고 싶다.
네게 모든 양분을 빼앗긴 너의 거름은, 이제 제 것이 아닌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결코 짧지 않은 청춘의 대가를 거둘 가을철 같은 때. 네 거름은, 네 수확물이 배 불리는 것이 비어버린 네 동공을 비추는 찰나의 것들이 아니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네 시선들로 감아 놓은 그 실타래 같은 것들은 네 동공 속에서 무엇을 감싸고 있는지?
한평생 남의 거름 같은 삶을 살아온 누군가는, 그가 쌓아놓은 폐지더미가 누군가의 발길에 치일까 또 거름처럼 걱정하겠지. 마찬가지로 너와 나의 거름이었던 누군가는, 어쩌면 노쇠와 배신으로 똘똘 뭉친 눈구름이 그 한을 펑펑 내리쏟을 때를 기다리며 폐지 같이 쌓인 것들을 마음속에 묵묵히 쌓아두고 있겠지.
그러니 주제넘는 말 하지말라고. 함부로 거름 같은 삶을 운운하지 말라고. 그렇게 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