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내게 아파트 단지는 곧 놀이터였다. 발에는 축구공을, 한 손에는 야구 배트를 들고 친구들과 공놀이를 했다. 자전거를 타거나 장난감 총을 들고 뛰어다니기도 했다. 어릴 때 많이도 뛰어다녀서인지, 체력이 많이 나빠진 지금도 조금의 운동 신경은 남아있다. 중학생까지만 해도 운동회 계주 대표로 출전도 하고 축구도 곧잘 했는데, 요즘은 조금만 달려도 숨이 찬다.
어려서부터 내가 끔찍하게 싫어한 운동이 있다. 물을 무서워했던 나는 수영만 생각하면 마음이 심란해지곤 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어렸을 때는 샤워기 물줄기가 얼굴에 닿기만 해도 얼른 한 손으로 얼굴을 비벼 물을 털어냈다. 내가 수영을 확실히 싫어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는데, 초등학교 여름방학에 근처 스포츠센터에서 수영을 배웠을 때의 일이었다. 가장 먼저 호흡법을 배웠는데, 물에 고개를 넣고 '음-', 고개를 들면서 '파-'라고 하면 되는 쉬운 과제였다. 세수한다는 생각으로 고개만 넣었다 빼면 되니까 어렵지 않게 해냈다. 그러나 영법을 배우는 단계로 넘어가면서 점점 무서워졌다. 아무리 발을 굴러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고 심지어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구간이 있었다.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을 챙기느라 나를 살뜰히 도와줄 여력이 없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못할 것 같아 수영을 일찍 그만두었다. 지금도 수영하는 느낌을 떠올리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래서 가끔 대형마트에 진열된 상품 물고기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쩜 저렇게 물에서 눈을 말똥히 뜨고 여유로이 헤엄칠 수 있을까?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거뜬히 해내는 누군가를 보면 저절로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하면 물고기들은 물 밖으로 나왔을 때 이리저리 괴로워하며 팔딱이다 이내 숨을 거둔다. 나는 물을 무서워하지만 물고기에게 물은 생명 유지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무서워하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삶을 지속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원이 되고는 한다. 과연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살기 위해서 내가 붙잡고 있는, 즉 나의 뇌와 심장이 간절히 요구하고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흔히 책이나 영화 등에서 주인공이 조난을 당하면, 웬만해서 죽지 않고 파도에 떠밀려 외딴 무인도에 도착한다. 그러고는 지나가는 배를 기다리거나 자신만의 방법으로 생존하려 애를 쓴다. 만약 파도가 없었다면 주인공은 무인도에서 정신을 차리는 것이 아닌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눈을 뜨게 될 것이다. 물론 자의로 파도에 몸을 맡긴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파도 덕분에 생존하게 된 것이다.
주류와 대세에 몸을 맡기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유행과 관습을 따라가면 몸과 마음이 편하다. 어떤 사회든, 어떤 모임이든,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나름의 규칙과 흐름이 존재한다. 조금 마음에 안 들더라도 유행에 몸을 맡기면 무난하게 살 수 있다. 그런데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세에 저항하고 반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흐르는 결에 몸을 맡기면 편하게 둥둥 떠내려갈 수 있는데 적극적으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물고기 얘기를 했으니 물고기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연어가 이와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연어는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간 뒤, 성체가 될 무렵까지 살다 산란기가 되면 다시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회귀 습성이 있다. 그 과정이 워낙 치열하기에 연어는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물고기 중 하나다. 연어가 죽음을 무릅쓰고 폭포를 거스르는 모습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에서나 거스름이지, 사실 연어에게는 자연스러운 삶의 트랙과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거스름도 일종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메이저한 흐름과는 정반대의 흐름이겠지만.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은 무난하고 편안하지만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파도에 몸을 맡긴다고 해서 반드시 환경이 좋은 무인도에 도달한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누군가 설계한 코스에 순응하며 따라가는 것은 어쩌면 가장 안전하고 현명한 방법일 수 있으나, 그것은 정해진 제품을 만드는 결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개성도 없고 발전도 없다. 모든 혁신은 주어진 틀을 깨부수는 자그만 일탈과 용기로부터 시작된다. 때문에 우리는 강압적인 흐름에 버틸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중력은 모든 것을 아래로 끌어내리지만, 심장은 중력보다 더 큰 힘으로 피를 정수리까지 보낸다. 흐름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흐름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한 것이다. 연어가 강을 거스르는 것이 치열한 이유다. 거스름에는 그만큼의 고통이 수반한다. 이런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힘없이 흐름에 맡겨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결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서는 안될 것들이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가라앉아서는 안될 것이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없다.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에 저항 하나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어떤 상황에도 감정을 꽉 붙잡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에 마음이 요동쳐서 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 그러나 우리에겐 거스르는 힘을 소유한 심장이 있다. 몸 구석구석으로 꿈과 혈을 보내는 강인한 심장이 있다. 우리의 심장을 믿으며 지속적으로 삶의 대책을 강구하고, 우리의 숨과 영혼이 일방적인 흐름에 길을 잃지 않도록 하자. 어색한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어느 순간 말이 뚝 끊기고 정적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대화는 끊겨도 문제없지만 우리의 심장박동은 결코 끊기거나 정적이 찾아와서는 안된다. 조금의 일탈도 불가능할 만큼 모든 의욕이 사그라지는 때가 찾아와도, 힘에 저항할 능력이 부족해 큰 불안이 엄습해도, 거스르는 힘이 멈춰서는 안 된다. 흐려지지 않아야 할 것이 흐려지지 않도록 말이다. 살기 위해 붙잡고 있는 나만의 가치가 흐려지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