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전후로 여러 명목의 선물을 많이 받았는데, 그중에는 꽃도 있다. 방 한편에 놓인 꽃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느낀 것이 하나 있다. 생화는 시들어 썩었는데 조화는 생생하게 때깔을 뽐내고 있었다. 고결한 생명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우리로서는 시든 생화가 더 의미 있다 여길 수도 있지만, 외적으로 분명하게 아름다운 건 영원히 빛과 색을 잃지 않는 조화였다.
생화와 조화의 차이는 뚜렷하다. 진짜냐 가짜냐의 문제다. 명품도 진품과 가품이 있지만 더 가치 있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진품이다. 살아있는 강아지와 강아지 인형 중 더 가치 있는 것은 당연히 살아있는 강아지다. 생명과 본질이 깃들어 있을 때 그것은 더 근본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시들지 않는 조화를 보면서 저것도 일종의 꽃이라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생화는 아름다움이 짧았지만 조화는 아름다움이 길었기에 조화가 생화보다 열등하다 말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질적으로 꽃은 아니지만 결국 인공적 손길을 거쳐 꽃의 모습을 지닌 것이니까. 생기도 향기도 없는 무근본 꽃이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으니 조화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을 수 있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모습이 조화 같다는 생각을 했다. 조화에게서 생화를 닮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화는 철저히 생화를 모방한다. 물론 생명체 특유의 촉감을 정확하게 묘사하지는 못하지만 겉으로는 확실히 닮아있다. 실제로는 꽃이 아닌데 꽃인 척하는 조화가 어떻게든 성격 좋은 인간인 척하는 나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은 꿋꿋이 비공개 상태를 유지하면서 겉은 인자하고 관대한 태도로 일관하는 작위적 모습. 그런데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조화처럼 살고 있을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되게 재밌는 일이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꼭 인형탈 알바들이 모여 사는 것 같다. 안에는 땀이 비 오듯 줄줄 흐르는데 밖에선 귀여운 캐릭터가 생글생글 웃으며 춤을 춘다. 내 모든 것을 보여주기에는 못되고 사악한 세상이라 그런지 필사적으로 탈을 사수한다. 상대가 누구든 관계없이 결코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단호한 자세를 유지한다. 있는 그대로의 진심을 보여주는 사람은 드물다.
나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굉장히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겉과 속이 달랐다. 물론 겉으로는 착한 척하면서 몰래 일탈이나 이중생활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그냥 가끔은 내 생각이 아닌 것을 내 생각인 양 살아가기도 해서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이게 아닌데. 생화를 따라 하고 싶지는 않은데. 현실과 타협하다 보니 자꾸 나의 모습을 꽃과 같도록 만들어가는 것 같아서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의 진실한 정체성은 아름다운 꽃이 아닌 그저 인공적인 종이나 천 조각 따위라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적발될까 두려웠고, 작위적인 모습에 실망하는 사람이 생길까 두려웠다.
근데 시들지 않는 조화를 보면서 조화도 충분한 자신만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꽃을 모방했지만 생화는 지닐 수 없는 장점을 가지게 된 것이니까. 아름다움이 짧은 뿌리 잘린 생화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니까. 어쩌면 조화의 모습은 가식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진실하고 본질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본질적으로 꽃이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조화가 된 것이다. 조화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한 것이다.
매일의 감정이 다르고 어느 하나 진실된 태도가 없지만, 사실은 그것이 당연한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더 신비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겉과 속이 다르지만 그렇기에 각자의 가면이 얽혀 재미난 하모니를 만드는 것 같다. 시든 생화보다 조화가 내 방에 더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서, 작위적인 인간들이 뒤엉켜 사는 세상이 더 매력적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조화로운 우리라서 조화로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