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초록 Feb 24. 2021

눈보라

20년 09월 18일 작성

이상해 이렇게 추운데

얇은 옷 하나 걸친 사람들

햇살 내리쬐는 화창한 날씨

새가 지저귀 평화로운 거리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 가락이 퍼지고

봄바람이 흔드는 풀내음에 다채로워진 거리


나만 꽁꽁 싸맨 채


'무슨 일 있나'를 가득 담은 시선이 몰리고

그 시선에 답하기도, 이러쿵저러쿵 설명 주기도 지쳐

풀린 눈으로 기계처럼 걸음을 옮긴다.


내 위에는 눈이 내려.

모두가 봄의 흥취에 심취해 들뜬 발을 옮길 때

하얀 눈 위에 비틀거리는 발자국이 찍혀.

여민 옷깃을 파고드는 세찬 바람에 표정을 찡그려.


목적지는 어디일까?

비틀거리는 발자국이 가리키는 곳은 어디일까?

이어진 자국이 눈에 덮여 방향을 잃었음에도

그조차 따라올 사람이 있을까?


눈이 그치길 간절히 바랬던 마음을 다시가지지 못할 만큼 

미친 듯 내리는 눈에 쓰러질 것 같아도 

걷지 않으면 나는 어디로도 갈 수 없어서. 

걷는다 해도 발자국 하나 제대로 남지 않을 

눈밭에 자국을 남긴다는 게 얼마나 쓸모없는 일인지 

앎에도, 몰랐으면 안 했지.


눈이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눈에 뛰쳐나오는 아이들.

뭐가 그리 신나는지 코를 훌쩍이며 신나게 뛰어다.

그러다 함께 모여 눈사람 만든다.

어디선가 가져온 나뭇가지로 팔을 만든다.

눈도, 코도, 입도 만들어준다.

아이들 표정을 똑 닮은, 활짝 웃 눈사람이 만들어졌다.

참으로 천진난만한 아이들이다.


세차게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나는 쓰러질 것 같은데.

바람 데.

뭐가 좋다고 저렇게 신이 났을까.

그러다 감기 걸려서 누워만 있으면 어쩌려고?

결국 걷지 못하면 어쩌려고?

어서 집에 가서 손 깨끗이 씻고 밥 먹는 게 나을 텐데.


또다시 걸음을 옮겼다.

부지런히 걷지 않으면 나 쓰러질까 봐.

걷고 걷다 언젠가 도착한 목적지에서 활짝 웃을 순간을 꿈꾸며

발자국의 끝이 어떤 따스한 곳을 향하기를 바라

걷고 또 걸었다. 


무시무시하게 쏟아지는 눈에 

다리는 한 발자국 내딛기도 힘겨울 만큼 얼어붙었다. 

주저앉고 싶었다. 

눈물도 얼어붙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눈사람을 기억했다.

어린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작고 귀여운

눈이 올수록 더 강해지는 눈사람

세찬 눈보라에도 웃음을 잃지 않을 눈사람


그대로 멈춰 서

허리를 굽혀 양 손 가득 눈을 퍼올려

뭉치고 뭉쳐 나뭇가지를 달아주고

눈도, 코도, 입도 달아주었다.


활짝 웃은 눈사람 자리에 세워두고 

끝없는 발자국을 다시 찍는다.


비틀거리는 발자국은 사라진 대도

나의 눈사람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나 가는 길에 활짝 웃은 눈사람 여러 개가

누군가에게 나 걷는 길을 알려줄 거야.


조금 느리게 걸어도 돼.

잠시 멈춰 눈사람 하나쯤 만들어도 돼.

웃음 머금은 눈사람 남겨 두고 그렇게 걸으면 돼.


겨울은 끝이 나고 따스한 봄이 올 거야.

눈사람은 녹아 사라져도 그의 웃음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짧지 않았던 겨울의 시간이 내 기억을 가두어도 그땐 내가 웃을 수 있을 거야.

눈사람의 변하지 않을 웃음을 그대로 이어받을 테니.


찡그리지는 않을 거야.

다시 겨울이 온다고 해도,

난 찡그리지는 않을 거야.





작가의 이전글 퍼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