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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초록 Feb 27. 2021

사랑

사람들은 사랑을 되게 좋아하는 것 같다. 노래 가사도 사랑에 대한 내용이 많고, 사랑을 주제로 한 책의 문장에서 위로나 공감을 많이 얻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에 관한 글을 꼭 써보고 싶었다. 사랑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걸까. 혹시 감성적인 문장으로 오글거리게 사랑을 예찬한다면 나도 누군가의 새벽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려면 주제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지금껏 주제를 정확히 설정하고 글을 쓴 적은 없었다. 난 부족함 덩어리고 모르는 것 투성이의 사람이다. 항상 글을 먼저 쓴 뒤에 어울릴 것 같은 제목을 억지로 갖다 붙였다. 솔직히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다. 아니 어쩌면 조금은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사랑의 사전적 의미를 나의 삶 속에서 알 수 있었던 경험은 있어도 사랑의 성립이 주는 심화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다.


온전한 사랑의 성립의 충분조건은 두 명 이상의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사랑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사실 그것도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기에 '나'와 '나'. 두 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생각한다면 역시 할 말이 없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랑을 주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동일인일 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 건네는 사랑을 '짝사랑'이라고 하고, 이것은 온전한 사랑은 아니다. 짝사랑이 꿈꾸던 온전한 사랑이 이루어지며 비로소 그 대상과 사랑을 주고받을 때 진정한 사랑이 된다.

 

그렇기에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나의 말은 정당화된다. 나는 여태껏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본 적 있었던가. 만약 그런 적 없었다면 난 과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나의 삶에서 사랑이 한 번이라도 이루어진 적 있던가. 사랑을 원하면서 사랑해본 적 없다니. 내가 여태껏 논하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난 지금껏 사랑을 너무도 많이 받았음에도 그 오묘한 개념이 주는 찌름을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무슨 말이었냐면, 난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을 진심으로 귀중히 여겨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내 모든 것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었다. 학교에 가기 위해 문을 나서며 부모님께 전한 사랑한다는 말은 그저 당신과 나의 끊어질 수 없는 관계가 무뎌지지 않게 유지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고, 고마운 이에게 주는 편지에 그려 넣은 하트는 그저 나의 진심 어린 글귀가 진실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보조 역할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친구에게 보여준 손하트도, 메신저로 보낸 하트 이모티콘도 다 비슷한 맥락이다.


사랑하긴 했지만 진심으로 전해본 적은 없었다. 언제나 마음에 품고만 있었고 말하지 않아도 관계 안에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온전히 전한 적도 없었고 받은 적도 없었다. 누군가로부터 내게 전해진 사랑은 과연 내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라고 의심하며 바보같이 왜곡했다. 도저히 사랑받을만한 구석 없는 너까지 사랑해준다는데, 거만하게 그 사랑을 의심하다니.


누군가에게 전하고픈 사랑은 또한 역시 내가 사랑할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의심하며 바보같이 감춰왔다. 사랑은 너무도 미끄러운 기름 바닥 위 얼음과 같아서 조금만 흔들려도 미친 듯이 움직인다. 그렇기에 사랑을 주고받고 싶지 않은 이가 원치 않는 사랑을 받았을 때는 갑작스럽게 그 관계가 힘을 잃는다. 그렇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더욱 신중해진다.


느낄 수 있는 사랑도 막아왔다. 너무나 어렸고 무지했기 때문이다. 안정을 원했고 흔들림의 가능성이 무서웠다. 그래서 아직도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껏 흩날린 나의 말들이 다 허구였을지도 모르겠다. 무식한 사람이 하찮은 신념을 나불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젠가 성숙해지고 그 정의 내릴 수 없는 감정을 음미할 수 있을 때, 그 행복한 감정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을 때, 사랑시에 담긴 쓸쓸하고도 생기 어린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생각했다. 그제야 사랑한다고, 사랑해왔다고, 사랑하겠다고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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