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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초록 Mar 03. 2021

약속

우리의 인생은 약속의 연속이다. 약속 없이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없다. 사회가 엉망이 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도 일종의 약속이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것도 어쩌면 당신이 당신과 맺은 약속이다. 당신이 오늘 밤 잠에 드는 것도 무언의 약속이다. 누군가 이미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까지 완벽하게 찍어놓은 약속이다. 약속에 의해 움직이는 우리의 삶은 이제 약속에 익숙해질 만도 한 것 같다.


수없이 많은 약속을 맺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어제 주문한 예쁜 스마트폰 케이스의 배송이 시작되었다는 일종의 '약속'을 받고 얼른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나는 그 설레는 감정을 느끼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약속은 설레는 일이다. 물론 약속의 대상이 내가 원하는 것이면 그렇다. 원하지 않는 약속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월요일이 반드시 돌아온다는 약속은 원하지 않는 것이기에 그 성립이 달갑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태어났으면 본래 정해져 있는 이 약속들이 우리에게 좋은 쪽으로만 작동하지는 않기에 그에 맞춰 유연하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약속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누군가는 행복할 수 있고 반대로 누군가는 불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누군가와 맺었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은 상대방에게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친구와 오후 4시까지 만나기로 했는데, 친구가 연락 하나 없이 해가 지도록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만큼 화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약속의 깨어짐이 기대에 부푼 누군가에게 큰 실망의 감정을 안길 수 있기에 우리는 꼭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해야 한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우리는 타인과 맺은 약속은 지키고자 최대한 노력하지만, 나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고는 하지 않는 것 같다. 약속 상대가 너무도 내게 편해서 그런 것일까. 어쩌면 굳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큰 상처를 받지 않고 혹 상처를 받더라도 적당한 회유로 달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은 꼭 일찍 자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매일 밤 스마트폰과 함께 새벽을 맞이하는 이유다. 내가 나에게 오늘만큼은 일찍 자자 약속했지만 생각해보면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되는 큰 문제가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청난 피곤에 시달리며 후회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니 약속의 무게와 상관없이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는 진부한 말처럼, 지키지 않기 위해 맺는 약속은 없다. 단지 그 무게가 해이해질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갑자기 약속이라는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로 개인적인 글을 쓰는 이유는 문득 나의 짧은 인생에서 맺었던 몇 가지 사소한 약속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이전까지만 해도 이별의 상황은 슬픈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같은 동네 아이들이었고, 조금만 연락이 닿으면 금세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졸업식 날, 지금까지의 학교 생활을 담은 영상을 친구들과 함께 볼 때도, 몇몇 아이들은 참던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어떤 아이들은 어색한 듯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지만 난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랑하고 고마웠다는 말이 난무하는, 손발이 자동으로 오징어처럼 오그라드는 영상을 보고 왜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정말이지 조금도 슬프지 않았다. 이사를 가서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다음 학년에 올라가서 또 만날 수 있는데 왜 우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고마웠어, 앞으로도 잘 지내, 이런 상투적인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다. 그것이 오글거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다시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말만 전했다. 이별이 아쉬워 울면서 질질 끄는 것이 참으로 어리석어 보였다. 난 그렇게 모든 이별의 상황에서 큰 주저함 없이 현장을 떠났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다. 다시 만나자던 친구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은 흐려졌고 미련없이 종결한 이별의 상황은 그리움로 남았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이별의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는지, 먹먹한 마음을 가지는지 알게 되었다. 무척이고 좋아했던 사람과의 눈맞춤, 대화, 악수, 하물며 함께 있던 곳의 분위기와 시간까지. 그것이 잊히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또한 그것은 내가 누군가를 무척이고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누군가와의 공존까지 사랑할 정도의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끊어진 약속이었다. 해이해지다 못해 사라져버린 새끼손가락이었다.


지키지 않기 위해 맺는 약속은 없지만 지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약속은 있는 것 같다. 물론 맺는 그 순간에는 지키고자 했던 약속이었을 것이다. 단지 지키지 않아도 될 것만 같도록 서서히 잊히는 것이다. 약속이 낯설어지는 것뿐이다.


고등학교 1학년의 마지막 날. 선생님이 종례를 끝내고 교실 밖으로 나가셨다. 친구들이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비록 짧았지만 재밌는 한 해였다. 나도 나가려고 하는데 반장이 말했다.

"우리 사진 찍어야 하지 않아?"

굳이 사진까지 찍어야 할까 생각했지만, 얼른 마음을 고쳐먹고 대답했다.


사진을 찍었다. 절대 지워지지 않을, 그것 그대로 남을 약속의 성립이었다.


다시 한번 새끼손가락을 걸고 싶다. 이제는 급히 고개 돌리지 않겠다고, 조금 천천히 멀어지겠다고 약속하고 싶다. 이별의 순간 속절없이 새겨진, 그러나 점점 사라져가는 글씨가 지우개의 문지름에도 기어코 사수하려 했던 내용을 다시 찬찬히 따라가며 읽어본다. 절대 지워지지 않는 희미한 연필 자국을 힘겹게 읽고 나서야 지난 것들의 마무리가 어떤 무게를 갖는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소중했던 것을 실없이 저버리지 않으려는 오글거림이 무엇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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