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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초록 Feb 27. 2021

유서

20년 11월 15일 작성

작은 옷을 입었을 때의 불쾌함이 있다. 무언가 조여 오는 듯한 답답한 느낌이랄까. 어쨌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참 재밌는 것은 비슷한 불쾌함을 하루에도 수십 번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세상에 자리한다. 내가 태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탄생과 동시에 한 사람을 둘러싼 환경이 작동하기 시작하고, 그로 인하여 자연히 학습되는 것들은 그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시키며 걸음을 옮기도록 만든다. 멈추면 낙오이고 그 낙오의 결과는 참담하다는 것을 주입하면서, 때로는 잔인하게 짐을 지우고, 때로는 친절과 사랑의 대명사가 되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더욱 잔인한 것은 사람을 가려가며 행동이 달라진다.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한다.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의 여러 죽음들은 그 생명의 무게는 동일하지만 까닭의 무게는 매우 다양해서 때로는 믿기 어렵기도, 허탈하기도 하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속속히 전해지는 많은 죽음의 소식을 보면서 조금 느끼는 것은, 죽음이 막연히 머나먼 미래의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미래에 무한한 믿음을 주는 경향이 있다. 다음 주 토요일 오후에 역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이 당연하게 성사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를 확장시켜 생각하면 기대와 걱정 따위의 것들은 모두 미래에 근간을 두고 있기에 또한 성사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너무나 많은 일들을 미루고 미루어 마치 보장되어 있는 것 같은 미래에 쉽게 맡겨버리며, 당연히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최상과 최악의 시나리오를 동시에 시뮬레이션한다. 너무나 쓸모없는 에너지 소모이다. 그렇게 미래라는 시간은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보험이 된다. 그러나 미래는 현존하지 않는 터라 우리의 기본적인 통념과 법칙을 가뿐히 파괴한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낮은 확률로(누군가에게는 꽤나 높은 확률로) 미래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꽤나 낮은 확률이 나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사실은 부정적 확률이 더 자주 일어난다. 기대했던 경품 추첨은 대부분 실패하며,야심차게 쏘아올린 화살의 과반수는 과녘을 관통하지 못하고, 선생님이 무작위로 고른 발표자 번호는 내가 된다.

요즘은 이상한 생각을 자주 한다. 그중 하나는 내가 죽었을 때 유서에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다. '우리 가족 사랑해요', '친구들아 고마워' 따위의 말을 적을 수도 있겠고, 나의 인생을 감히 함축하고픈 시의 한 구절 정도를 적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유서를 써야 한다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종이에 쓰고 싶다. 유서라는 것이 내가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마지막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와 향기가 마지막으로 종이 하나에 적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나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아마 세 장을 훌쩍 넘길지도 모르겠다. 단어도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단어만 모아 적을 것이다. 그것이 초라한 나를 가장 아름답게 녹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무슨 장렬히 전사할 사람처럼 말했지만 내가 내일 죽을지도 또 모르는 일이다. 오늘 적은 이 글이 어쩌면 훗날 유서가 되어 버릴 지도 또 모르는 일이다. 가끔은 교활한 미래에 속아 뺨을 맞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나의 하루가 가장 예뻤으면 한다. 오늘 하루가 나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작보다는 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릴 때는 연필을, 색연필을, 붓을, 볼펜을, 어떤 것을 이용해도 상관없다. 칼을 대도, 물감을 흩뿌려도, 가루를 흩날려도, 아무렴 아무 손을 대지 않아도 상관없다. 무엇이든 작품이 되기에 충분하다.


작은 옷을 입었을 때의 불쾌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어서 벗어버리고픈 조여옴을 견디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그 불쾌함을 하루하루 버텨내는 이유는, 의도치 않게 찾아온 끝을 어떻게든 웃으며 받아들이고 싶기 때문이다. 아직 넘기지 못한 책장이 남아있대도 갈피를 꽂을 수 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오직 나의 눈이 마지막으로 향한 책장 그 끝 구절이 가장 아름답기를 바랄 뿐이다. 벗을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 각자가 살아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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