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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초록 Mar 28. 2021

봄비 치고는 바람이 세다. 지금도 창문을 마구 흔드는 비바람이 계절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거리와, 적어도 그가 존재하는 주변을 아름답게 물들이며 만개했던 벚꽃이 거센 바람에 스러질 것 같다.


사람들은 봄을 좋아한다. 인생사를 계절에 비유하면서 고난과 시련 따위는 겨울에, 새 시작과 희망 같은 것들은 봄에 비유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겨울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봄을 향한 편애가 달갑지 않다. 나는 펑펑 내리는 눈을 좋아하고, 크리스마스 꼬마전구의 위로와 희망을 사랑한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봄이 훨씬 매력적이다. 콧물을 삼키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걷는 것보단 가벼운 옷차림으로 적당한 온도를 만끽하며 걷는 것이 더 좋은 것은 당연하겠다. 그런데 사춘기를 지나면서 약간의 반항심이 생겼던 것 같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계절 취향을 가지고 싶었고, 매번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겨울이 안쓰러웠다.

겨울 싫다고 하면 눈사람이 서운해요

왜 사람들은 겨울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랄까? 왜 겨울이 주는 아름답고 차별화된 분위기를 느끼지 못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에는 사실 어느 정도 답이 정해져 있었지만 확답을 남기지 않기로 했다. 겨울이 조금 더 슬퍼질 것 같았다.


그렇다. 봄은 아름다운 계절이 맞다. 무언가 간질간질한 온기가 느껴지는, 앙상한 가지에 꽃이 피는 모습이 매력적인 계절이다.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시작하고 만끽하기 좋을 계절이다. 바닥을 기던 온도계의 키가 조금씩 커질수록 사람들도 그만큼 들뜬다. 바닥을 향해 휘날리는 꽃잎들의 향연을 보며 미소 짓는다. 그런데 꽃잎의 입장에서는 그저 추락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깐 피었다 금세 떨어지고 밟히는 꽃잎이 문득 안쓰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 외출할 때면 항상 외투를 챙겼는데 이제는 아침저녁이 아니면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거리에는 개나리가 폈고 벚꽃은 말할 것도 없다. 잎이 양파껍질 같은 목련은 언제나 가장 먼저 피어나는 부지런한 봄의 모범생이다.


코로나로 인해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꽃을 눈에 가득 담기가 어렵지만, 전혀 외출을 하지않아 꽃이 피고 지는 줄도 몰랐던 작년과는 확실히 다르다. 일단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작년 봄과는 일상이 많이 달라졌다. 학교 뒤편 나무에서는 꽃이 활짝 펴서 학생들이 종일 몰려 사진을 찍기에 급급했다. 봄 외에는 어떤 계절도 줄 수 없는 색감과 분위기다. 리미티드 에디션이라서 더 놓치고 싶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 봄 하면 저마다의 한정판 추억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2019년의 봄을 기억한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일 때였다. "여기 놀러 왔어?" 따위의 말을 들으러 놀러 갔던 이전의 수련회와는 다르게 시설도, 풍경도, 콘텐츠도 수준이 높았다. 물론 그것도 좋았지만 버스 안에서 경주 시내를 바라보며 들었던 볼빨간사춘기의 '나만 봄'과 장범준의 '당신과는 천천히'를 잊을 수 없다.

무언가에 의해 되살아나는 기억이 있다.

지금도 이 노래들을 들으면 당시의 설렘과 아름다운 창밖 풍경을 있는 그대로 만지고 느낄 수 있다. 나와 같이 저마다의 '시선 사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 촉매도 있을 것이다. 마치 당시의 상황을 촬영하여 눈앞에 영사하는 것처럼 온전히 그곳의 분위기, 온도, 향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 기억들이 유난히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더는 느끼기 어려운 어린 시절의 순수한 감동이었기 때문이다. 한정판 추억이라고 표현한 이유이다. 


꽃은 한정판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아름다움은 연약해서 무겁고 냉랭한 것들에 손쉽게 삼켜진다. 짧은 만개를 위하여 사계절 내내 인내하는 나무. 고통과 꺾임이 무르익어 진하게 꽃잎에 남아서인지 꽃은 과시하듯 성숙한 우아함을 뽐낸다. 겨울 내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걸음을 옮기던 우리에게 희망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처럼 끝없는 색채미를 드러내면서 말이다. 위로하듯 우리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만 같다.


"꽃길만 걸으세요" 사람들이 누군가의 앞날을 축복하고자 할 때 전하는 말이다. 그러나 꽃밭 속 인생은 얼마나 행복하려나. 끝없이 만개한 꽃들에 평생을 둘러싸여 살아간다면 우리는 행복할까?

별로 행복하진 않을걸

처음에는 너무나 행복하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질 쯤이면 처음 같은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행복은 희소할 때 가치가 있다. 봄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잠깐이기 때문이다. 일시적 만개를 위한 긴 고통이 꽃잎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수명을 다한 꽃잎의 밟힘과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그대로가 아닌 찰나의 정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꽃이 지는 날 안녕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은 희망으로 돌아오고, 주저함 없이 고통의 시간에 돌입한다.


아직 고통의 시간을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겨울에 머물러 앙상한 자태를 드러내며 사는 사람들에게 봄꽃의 피고 짐은 질투의 대상일 뿐이다. 나는 이렇게 추운데, 이렇게 힘든데,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데, 인내 끝에 아름다운 결실을 맛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도 부러울 뿐이다. 그러나 계절은 반드시 돌아오고, 우리가 피기 좋을 순간은 찾아온다. 아직 꽃을 피우지 못했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자. 그러다 때가 되면 우리의 색과 향을 세상에 드러내자. 아주 잠깐 피었다가 거센 봄비에 떨어져 죽자. 사람들은 그 죽음마저 황홀하게 누릴 테니까.


나는 우리가 아주 가끔 꽃길을 걷기를 바란다. 한정판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모든 시간을 든든히 견뎌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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