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로 사는 길
"제가 해보겠습니다.”
학교에서 주관하는 태국 해외봉사 프로그램, 20명의 대학생 단원이 선발되었고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첫 공식모임인 오리엔테이션 자리, “팀장은 누가 할건가요?” 라는 지도 교수님의 질문이 있었다. 침묵이 이어졌다. 재차 질문이 나왔다. “자, 누가 여기서 제일 나이가 많지?” 봉사단 팀장에 도전해보고 싶지만 저기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 있다. 마음과는 달리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 흐름을 거스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자연스레 그 형이 팀장으로 결정되기 직전, ‘에라 모르겠다.’ 하며 꽉 움켜쥔 주먹을 들었다. 주위 단원들의 눈초리가 따가웠다. ‘쟤는 누군데 저렇게 나대?’ 라는 비아냥이 들리는 듯 했다.
이렇게 용기를 낼 수 있던 건 직전 학기에 과 학생회장을 경험했던 덕분이었다. 2학년 종강 후 자주 가던 허름한 순대국집 다락방에서 전임 과 학생회장이었던 선배가 말했다. “내년엔 네가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좋은 경험이 될거야.” 당시 과 학생회장 자리는 인기가 높지 않았다. 후보는 한 명일 경우가 태반이었고, 찬반투표로 결정되는 식이었다. 원체 사람들 앞에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결국 선배가 두 번째로 얘기를 꺼냈을 때 해보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이미 두 명의 후보가 더 나와 있었다. 용기를 낸 것도 모자라 추가로 경쟁까지 해야 했다. 일이 커진 것 같아 잠깐 후회도 했지만 이미 저지른 일, 포기하고 망신당하는 건 더 싫었다. 주변 사람들의 응원 덕분에 투표에서 1등을 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며 시작하기도 전부터 고민만 많았던 일들이 막상 부딪쳐보니 술술 풀려가는 걸 겪으며 <최대한 나답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즐거움을 알아가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 때부터 ‘도전’은 나에게 무척 매력적인 단어였다. 내 오랜 콤플렉스 중 하나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었다. 게임 말고는 별다른 취미도 없었고 뭔가에 빠졌다가도 금방 싫증을 내는 성격이었다.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게,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물어오면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쉽게 주눅들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어딘가엔 반드시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무언가가 존재할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를 찾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가리지 말고 최대한 다양한 일을 겪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성적인 나에겐 이런 새로운 경험들이 하나하나 모두 도전이었다.
그렇게 대학생 때 딱 10 가지의 아르바이트를 거쳤다. 아르바이트를 구할 땐 해봤던 일보다는 무조건 새로운 일을 택했다. 수능 직후 일식 전문점에서 홀서빙을 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양손 가득 식기를 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뛰어다녔더니 2개월차 시급이 2500원에서 3000원으로 뛰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게 내게 큰 만족감을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보드게임카페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설명하는 요령을 배웠다. 사무보조 일은 수월했지만 재미가 없었다. 콜센터에선 신규고객을 유치하는 일을 했다. 고객 유치에 성공해도 전혀 기쁘지 않았고 오히려 전화를 서둘러 끊으려는 사람들을 붙들면서 시간을 자꾸 뺏는 것 같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연스레 내 성과는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그릇 창고를 이전하는 아르바이트에선, 예상보다 많은 작업량에 야간작업까지 자청해서 3일 일정을 2일만에 끝냈다. 보너스를 받은 것 보다 사장님이 진심으로 해주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더 뿌듯했다.
길고 짧은건 대봐야 했고 물에 빠져봐야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었다. 실제로 물에 풍덩 뛰어들어서 가라앉는지 뜨는지 느껴봐야 했다. 덕분에 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분야의 일에 흥미를 느끼는지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그치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여기서 다시 물불 가리지 않고 새로운 일을 경험한다고 한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어떤 녀석인지 좀 더 또렷이 보일까? 아쉽게도 대학생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충분히 길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 가지 중요한 힌트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단 한 가지에 푹 빠져 사는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경험을 하는게 낫지, 하나만 너무 깊이 파고들기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두 달간 몰입했던 해외봉사단 활동은 그 굳어진 관념을 조금씩 말랑하게 바꿔줬다. 발을 깊숙이 담글수록 그만큼 더 가치있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발을 깊이 담근다는 것은 단지 시간을 많이 들인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그 일에 흠뻑 젖어 매분 매초 고민하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맞장구치고 다투며 지낸, 그 일과 사람과 내가 자발적으로 뒤엉켜 보낸 시간이 두텁게 쌓여있음을 의미했다. 지금까지 수십 개의 수박을 두들겨보느라 안에 있는 빨간 속살을 제대로 맛 볼 수 없었다면, 이제는 본능적으로 끌리는 수박 몇 개를 골라잡고 숟가락으로 파보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해외봉사단 활동을 마치고 친구들이 써준 롤링페이퍼는 지금도 방 한 켠에 보물처럼 모셔져 있다. <처음에 팀장한다고 나서길래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보려고 했는데, 잘해서 봐줬다>, <맨 늦게까지 남아 술을 마셔주고 아침에 가장 일찍 일어나 우리를 깨워줘서 고마워요. 잠은 대체 언제 잤나요?>, <얼굴은 이기적으로 못생겼는데 팀에는 너무 이타적이더라> 등 고생 많았다는 위로와 칭찬의 말이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이 친구들과 모여 추억과 서로의 삶을 나눈다. 그 중 여자 팀장을 맡았던 친구는 내 아내가 되었고, 아이 엄마가 되어주었다. 이렇듯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그 순간도 즐겁고, 결과도 흐뭇하며 내 삶 전반에 좋은 영향을 주는 과정 같은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