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운전대를 다시 잡기까지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by Light of Life

이 이야기는, 한겨울 미국의 외딴 도로에서 갑자기 멈춰버린 시간에서 비롯되었다.

생의 경계에서 간신히 돌아온 나는, 그날 이후로 많은 것을 잃고 또 새로 배우게 되었다.

이 글은 20대의 내가 겪었던 사고 이후, 회복의 시간 속에서 만난 사람들, 기억들, 그리고 변화된 나의 삶을

마흔을 앞두고 조용히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많은 것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전히, 가장 두려운 것이 있었다.

바로 운전이었다.


사고 당시의 기억이 없던 덕분에 외상 후 스트레스는 없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속도를 내는 차를 타거나, 옆 차선에서 대형 트럭이 빠르게 지나갈 때면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가 온몸을 덮쳤다.

직접 운전을 한다는 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한 번, 큰마음을 먹고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하지만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로, 운전대를 다시 잡는 데에는 꼬박 7년이 걸렸다.


회사에서 미국 주재 근무 기회가 생겼다.

혼자 생활하려면, 운전은 필수였다.

운전 때문에 이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시 용기를 냈다.

‘괜찮을 거야. 그 큰 사고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이까짓 거.

삶을 잃을 뻔한 것도, 되찾은 것도… 언제 내 의지였던가.

그렇다면 이번에도, 하늘에 맡기고 일단 해보자.’


운전석에 앉아, 천천히 엑셀을 밟았다.

그렇게 다시 도로에 나섰고, 드디어 면허를 땄다.


하지만 진짜는, 그다음이었다.

이제는 실제로 미국 고속도로를 달려야 했다.


당시 나는 4시간짜리 급행 도로 연수를 막 끝낸 상태였다.

그리고 그 직후, 엘에이 공항에서 어바인까지

시속 120킬로미터로 달리는 고속도로를

직접 운전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망설였다.

우버를 탈까? 그냥 포기할까?

비행기 안에서도 마음이 몇 번씩 오락가락했다.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캘리포니아의 푸른 하늘과 뜨거운 태양,

그리고 시원하게 부는 바람이 상쾌했다.

차들이 쏟아내는 경적 소리 사이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문제라면, 지금이 그때일지도 몰라.’


핸들을 잡았다.

차를 출발시켰다.

그 순간부터 어바인에 도착하기까지의 한 시간 남짓,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도착했을 때,

나는 조용히 핸들에서 손을 떼었다.


해냈다.

내가 미국에서 운전을.


그날 이후,

운전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다시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

그건 나에게

다시 삶을 온전히 살아도 된다는 허락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