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했던 말들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by 연한보라

아주 솔직히, 최애가 나에게 탈덕을 강요하는 것 같은 기분을 받는 요즘이다. 이제는 한계에 다다른 것 같기도 한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아직 마음이 크게 남아있으니 그런 것이겠지. 여기까지 오고 나니 나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가? 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엔, 내가 내뱉은 말들을 지키려고 했던 것 같다. 사랑한다는 말, 아낀다는 말, 있는 존재 그대로를 엄청나게 응원한다는 말 같은 것 말이다. 그런 말들을 정말 쉴 새 없이 많이 했다. 왜냐하면, 정말로 그렇게 느끼고 있었고 그걸 표현하지 못해서 안달이 났기 때문이다. 내가 주는 사랑이 1등은 아니어도 적어도 20등, 30등 아니 한 100등 안에는 들기를 바랐던 것 같다.


코로나도 겪고, 군백기도 겪으면서 덕질을 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현실의 사람이 아닌 과거의 사람을 좋아하고 탐구하고 봤다. 그리고 그 과거를 통해서 만든 나만의 해석인 그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에, 어쩌면 난 진짜의 사람을 좋아하지 못했던 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들을 사랑했다. 완전히 똑같을지는 몰라도 화면 뒤의 사람과 화면 앞의 사람이 꽤나 비슷한 진솔한 사람이라서 좋아했고 그리고 그는 때때로 정말로 이상하리만큼 솔직해서 그게 너무 웃기고 재밌었다. 그런 사람에게 숨겨야 할 비밀이 생길 때는 어떨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아주 불쾌한 깨달음의 시간이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주는 사랑이 100번째 정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 뒤에는 그 사람도 우리를 그것과 똑같이는 못해도 그에 상응하는 마음으로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사랑의 크기로 따지자면 난 100번쯤 될지는 몰라도, 사실 내 마음에 있어서는 그 사람은 아주 큰 1이었기 때문이다. 나 하나를 1로 생각해주진 않아도, 우리의 팬덤 단체를 큰 1로 생각해주었으면 싶었는데 그건 크나큰 욕심이었던 것 같다.


웃기게도 꽤 오랫동안 최애가 나중에 가정을 꾸리고 아기를 낳고 사는 그런 모습까지 다 보기를 희망했었다. 그것은 어떤 치기 어린 반항심 같은 게 아니라, 나는 그가 아주 좋은 아빠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때가 되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모습도 아주 근사하고 멋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최애가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전제 뒤에는, 1) 그 사람이 멋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과, 2) 그가 만나는 사람도 멋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3) 그 결혼이 무언가를 이룬 멋진 사람의 것이길 바랐던 나의 마음을 발견한다.


미안하지만, 내 최애는 아직은 엄청나게 큰 성과를 이룬 사람 같지는 않다. 아니, 많은 좋은 일들을 하고 성과가 있었지만 앞으로도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한창 달려야 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믿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지 최애는 그토록 오래도록 주장했던 '일에 대한 진심'을 잃은 것 같았고, 그걸 잃은 최애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멋진 사람이 되지 않는다. 잠깐의 방황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가 변한 것 같은 기분을 받고 있고, 이렇게 금방 무너질 만한 마음이었다면 이 사람의 성공과 성과도 여기까지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슬프다. 나는 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가 심어줬는지 내가 키웠는지 모를 확신이 있었고 그것을 위해 함께 달려가고 싶은 의지도 있는데, 2만 명이 함께 달리는 그 레이스에서 선두가 멈춰버리는 경험을 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그를 움직일 능력이 아예 없고, 혼자서 뛰는 건 의미도 없다. 그래서 나는 그와 함께 멈춰 서거나, 다른 곳으로 가서 달리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다.


바랐던 것은, 내가 내뱉은 말들을 지켜내기 위해 계속해서 인내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그도 그가 내뱉은 말들을 지키기 위해 일하고 집중하고 신중해 줬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진심이 아니고 비밀이 있다고 해도 이전에 해놓은 말을 지키려고 노력이라도 해줬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크게 실망하지 않았을 것 같다.


조심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탈덕을 얘기할 때, 다들 어설픈 응원을 해주거나 때가 됐다고 하거나 붙잡거나 뭐 여러 가지 반응인데 나의 마음을 관통한 반응이 하나 있었다. '그렇게 너에게 큰 사람이었나 봐' 하고 말해주던 사람의 말이었다. 그렇다. 나는 이 말을 하기까지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탈덕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솔직히 언제 탈덕할지 모르겠고, 아직도 그를 보면 좋은 마음이 들어서 괴롭다.


이 일방적 사랑이 쉽지 않았기에 접는 것도 너무 어렵다. 나는 그 길을 아주 천천히 조금씩 미련을 뚝뚝 흘리며 가고 있다. 나쁜 말을 뚝뚝 내뱉으면서도 혹시라도 상처받을 까봐 걱정하는 바보 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진짜 지독한 사랑을 겪고 정리하려고 하고 있다. 잘 되지를 않는다. 정말 맘대로 되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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