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도 하나의 결정이기에

조건 없는 사랑은 없다

by 연한보라

최애를 좋아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사랑하려고 했다. 거창하게 말해서 그렇지, 솔직히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최애는 본업을 잘하는 잘생기고 멋진 사람이고, 타고난 입담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의중을 재빠르게 눈치채는 영민함과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갖고 있다. 자주 최애를 닮고 싶다고 여기저기 말하곤 했는데, 그 사람이 나보다 어려도 삶을 대하는 태도나 능력치가 높아서 그 모습들을 실제로 닮고 싶어서 그랬다.


그렇다고 최애가 완벽했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가끔 너무 팩폭을 날려서 주변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것 같으면 걱정이 되기도 하고, 본인만의 고집을 부릴 때는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 싫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맘에 들지 않는 모습보다 멋지고 좋아하는 부분들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에 그것들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기 때문에 여태까지 잘 지내 왔다. 조건 없는 사랑을 주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지만, 그런 형태를 나도 모르게 띠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난번 최애에 대한 글을 쓰고 며칠 후에 최애가 새벽에 장문의 버블을 남기고 갔다. 굉장히 혼란스러운 글이었고,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저마다 다르게 해석했지만 받아들인 바로는 1) 상처를 주게 되어서 미안하고 늦게 사과해서 더 미안하다 2) 그러나 너무나 큰 비난과 오해들이 있어서 버티기 힘들고 무섭고 슬프다 3)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뭘 원하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비문과 오타가 넘실대는 눈물 젖은 텍스트였다.


4년 동안 덕질을 하면서 최애의 이런 모습은 처음 봤고, 이전 행보들도 열심히 공부했던 성실한 팬이었기에 그의 커리어 통틀어 최저점을 본 게 아닐까 싶다. 그룹 내에서도, 본인에게도 논란과 어려움은 시시때때로 있었지만 이토록 팬과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는 모습은 처음이다. 과거에는 팬의 마음에 대한 확신은 없어도 본인에 대한 확신은 있었는데, 지금은 본인에 대한 확신도 팬에 대한 확신도 없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모습이다. 아직도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팬으로서 정말로 속상하고 나 또한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글을 읽고 며칠을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


처음에는 이 버블 편지가 반갑기(?)까지 했는데, 이유는 2년간 그가 보여주지 않았던 진심의 정점을 보여줘서다. 이전 글에도 언급했지만 최애는 매우 솔직하고 진솔한 사람이라서, 그게 좋아서 입덕했는데 군대에 갔을 때부터는 그런 모습들이 적거나 인위적으로 느껴졌었다. 본인의 마음이 달라졌는데 이전에 본인이 했던 모양을 따라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그의 노력으로 받아들이고 참고 있었는데, 이번 글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던 진심을 보게 된 것 같아서 안도가 되었다. 적어도 처음에 사랑에 빠지게 했던 진솔한 모습이 변하지는 않았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쁜 마음은 아주 잠시였고, 그 뒤로는 한참 걱정이 되다가 이제는 좀 화까지 난다. 이유는 저 버블을 보내고 1주일째 또 아무 곳에도 드러나지 않고 잠수를 탄 것만 같은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그냥 평소처럼 올까요' 하고 물어보던 것은 사실 선택지가 아니었다는 듯이 그는 또 우리에게서 숨어버렸다. 힘들고 버틸 수 없다는 사람을 다그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큰 폭탄을 우리에게 던져놓고 갔다면, 그에 대한 그의 결정도 들을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주말이 오고 기약도 없이 기다리는 것을 계속하다가 보니 이제는 지친다. 군대를 들어가서부터 제대하고 8개월이나 지난 지금까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한 것은 답이 없고 변한 최애가 무엇인가를 들고 오길 기다린 것뿐이었다. 물론, 앞으로 우리에게 계획된 콘서트와 앨범 활동이 있지만 그것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 긍정적인 기대가 적다. 당연한 것은 없지만, 이미 받았어야 했던 지연된 활동들에 대해서는 높은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고, 그 기대를 채워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최애가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어봤을 때 나는 '너만 행복하면 된다'라고 대답을 남겼다. 그 말은 '네 맘대로 해' 라기보다는, 네가 내리는 결정에 책임을 져달라는 말이었다. 우리와 소통하고 즐겁게 지내는 아티스트 생활을 계속할 것이면, 그걸로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고, 더 이상 못하겠으면 그 선택에 대해서도 책임지고 행복하게 잘 살라는 것이었다. 좀 극단적 이어 보일 수도 있는데 정말로 그가 가수 생활을 그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어서 그렇게 말했다.


그가 가수 생활을 그만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나는 그가 그냥 정신을 차리고 다시 조금씩 팬들과 라포를 쌓고 복귀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이 억지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걸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하는 일이 아니길 바란다. 그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응원하는 것은 정말로 절대로 할 수가 없다. 연애를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그것만 하고 싶다면 어쩌겠는가 나는 가수로서의 그를 놓아주고 팬 생활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그를 존중할 수는 있다. 인생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살 수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러한 엄청난 결정을 하는 사람을 좋아했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해야 하기 때문에, 하고 싶지도 않은데, 우리가 무서워서, 돈을 벌어야만 해서 이런 이유로 그냥 하고 싶지 않은 가수 생활을 영위하는 그는 절대 보고 싶지도 응원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다 티가 나기도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을 계속 응원하고 기다릴 수는 없다. 그래서 1주일 정도는 못 기다리냐고 물어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 기다림이 2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나가는 매우 긴 기다림이기 때문에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고 대답할 것이다.


여태까지 내가 했던 실제 사람과 연애, 짝사랑, 덕질을 통틀어서 가장 어려운 사람이 지금 최애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주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는 점에서 정보의 불균형이 있는 덕질상 어쩔 수 없는 구조이지만, 조건 없는 사랑까지 주려고 노력했던 팬에게는 솔직히 너무 가혹한 일이다. 1주일 가까이 침묵을 하는 것도 그가 내린 하나의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는 우리에게 이미 결정을 말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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