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사랑한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나는 믿을 수가 없다

by 연한보라

최애에 대해 브런치에 쓴 글들을 다시 읽어봤는데 내가 써 놓고도 내가 쓴 게 맞을까 싶게 interesting 하다. 평소의 나는 엄청난 F 참가자인데, 이곳에서만 극 T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X(구 트위터)에 최애에 대한 좋은 반응들이 없어서, 원래는 열심히 활용하지 않던 계정을 열심히 굴리기 작한 게 6월 말이라는 것을 읽으며 다시 깨달았다. 그때도 X까지 열심히 하는 건 참 무리스러운 일이라고 썼는데, 3개월 뒤의 나는 여전히 무리하고 있다.


무리라고 하지만, 관심받는 걸 좋아하는 관종이니깐 내가 올린 글이 많은 알티를 타거나 하트가 눌리고, 팔로워가 늘면 소소하게 기쁘다. 그게 뭐 엄청난 반응은 아니지만, 작은 반응 하나도 나한테는 크게 다가오니깐. 그리고 나쁜 말만 주목받는 곳이라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좋은 여론에도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그 숫자가 나쁜 말에 비해서는 좀 적어서 바이럴 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좋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면 만족이다.


6월 말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7월 말에는 10주년 기념 콘서트를 했는데, 거창하게 홍보한 것과는 달리 적은 세트리스트와 운영에 많이들 불만을 표했고, 콘서트 이후에는 원래 기수제로 운영하던 팬클럽을 상시제로 변경해서 팬들의 원성을 샀다. 우리 팬덤이 그렇게까지 결집 능력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는데 화환총공부터 시작해서 해시태그 총공까지 엄청나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입덕하고 나서 처음 보는 단합이었다.


보통 총공은 멤버들이 너무 가혹한 스케줄을 하거나, 앨범 발매가 너무 늦어져서 혹은 멤버 중 하나가 논란을 일으켜 탈퇴를 원할 때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우리 팬덤은 소속사를 향해 팬들에게 제대로 하라고 총공을 했다. 아주... 흥미롭게 보는 지점이며 우리 팬덤을 설명하는 지표 같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상처 주고받고, 결국 멤버들을 욕하고 그랬다. 사랑한다면서 왜 그렇게까지 계속 멤버들을 욕 해대는지 모르겠다, 진짜 멤버들이 너무나도 가엽다. 이런저런 과정 이후에 탈덕도 꽤 많았는데, 그걸 또 탈덕 브이로그로 찍어 우수수 올렸다.


덕질하기 지옥 같은 시간들의 연속이었는데, 그 와중에 난 부산도 가고 공주도 가고 일본 콘서트도 가고, 최근 컴백에는 어렵게 어렵게 공방 사녹도 갔다. 갈 수 있는 모든 스케줄을 무리해서 연차를 써서라도 발로 뛰며 다녔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간단하지만, 정말 모든 스케줄을 가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다시 가겠다고 마음먹고 난리도 아니었다. '다시는 가지 말아야지' 했던 일본 콘서트도 다녀오니깐 너무 좋았어서 스스로가 웃기지만, 나는 아직도 최애를 사랑하고 있다.


운이 좋고 감사하게도 최근에 갔던 스케줄들은 자리가 좋아서 그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다. 왜 사람들이 기를 쓰고 돈을 쓰고 앞자리로 가는지 알게 되는 시간들이었는데, 최애는 정말로 무대를 즐기고 무대 위에서 우리를 보고 즐거워하는 게 느껴졌다. 거짓말도 꾸며낸 행동도 아닌 그의 눈에서 나오는 진심을 보고 오면 정말로 버티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 수고(?)했던 것들에 대한 보상 같기도 했고, 행복해하는 멤버들을 보며 더 큰 행복을 느꼈기에 후회하지는 않는 시간들이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되기까지 겪은 수많은 어려움과 불안함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그래서 또 그들을 보러 가고 싶은 욕심이 이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도달했다. 얼마 전에 제일 친한 친구가,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면서 덕질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며 조금 이성적으로 생각할 단계가 온 것 같다고, 나의 덕질 인생을 다 지켜봐 준 친구인데 그런 얘기는 처음 해줘서 조금 정신 차려야겠다 싶기도 하다.


친구는 나의 '최애를 향한 불안'을 보았다. 내가 이렇게 열을 내고 좋아하고 쫓아다니면서도 그 기저에는 최애가 또 뭔가 발각되지는 않을까, 말을 실수해서 또 비난을 받지 않을까 마음 졸이고 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었다. 일련의 스캔들과 사건들을 잘 이겨낸 것 같지만 결국 나도 너무나도 큰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가 마음 한켠에 남아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속에 우러나와 좋은 말들을 하고 있지만, 다시 상처받게 될까 봐 예민하고 웅크려 들어있는 마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슬프다. 원래도 불안이 높은 사람이라, 누군가를 좋아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한 번 믿기 시작하면 충성하며 오래가는 편이다. 이건 비단 덕질뿐 아니라 현실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최애는 그 많은 시간을 겪으며 뭔가 탄탄한 믿음과 신뢰를 쌓아온 것 같은데, 모든 것을 다시 의심해야 하는 것 같은 상황이 피로하다. 그러니 친구의 말처럼 나를 지키기 위해 좀 덜 하는 것을 고려하고 노력하는 것도 맞는 것 같긴 하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열심을 안 하는 건 결국 나에겐 그냥 안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아직은 마음이 너무 크기 때문에 안 할 수는 없다.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할 거면 제대로 한다는 마음이 이곳에 너무 크게 작동하고 있어서, 최애를 좋아하는 한, 열심히 하고 싶다. '언제쯤 그만 좋아하게 될까', '언제쯤 그만하게 될까' 이런 생각은 그냥 안 하고 마음 닿는 데까지 해보기로 했는데, 친구의 말에 내가 의지적으로 좀 거리를 더 두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어제 상담을 다시 신청했다. 최애가 군대 갔을 때 너무 힘들어서 신청했었던 상담이다. 억지의 이별 때문에 상담을 했었다면, 이번엔 의지적 이별을 위해 하는 상담일까. 이별이라는 말도 너무 웃기다, 나는 그와 사실은 아이돌과 팬 그 이상의 어떠한 관계도 아닌데 말이다 :) 이별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치고는 너무나도 열렬히 사랑하고 있어서 그것도 너무 웃기다. 그냥 상담을 좀 받고 싶다. 마음을 터 놓을 곳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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